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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86 유벤투스
트랍으로부터 유베로의 마지막 선물
text by Luigi ROGNONI
photo by GUERIN SPORTIVO
트라파트니가 유베에서 마지막으로 획득한 스쿠데토의 추억. 그것은 동시에 지금은 잉글랜드 대표를 이끄는 스벤 요란 에릭슨의 오랜 세리에A 감독 생활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스쿠데토에 대한 쓴 추억이였으며, 리그 종료 직전까지 이어진 "치열한 경쟁"으로서 세리에A의 역사에 남는 스쿠데토 이야기이다. 이 시즌은 마지막까지 이어진 치열한 수위 싸움을 펼친 것은 유베와 로마였지만 스쿠데토의 열쇠를 쥔 것은 빠른 단계에서 세리에B 강등이 결정되었던 레치였다는 사실도 축구계의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시즌 베로나가 가져간 스쿠데토 획득을 향해 유베는 대규모의 전력 보강을 실시했다. 획득한 선수는 DF의 파베라, 루프, 장래가 유명했던 CF의 알도 세레나. 한편 로마는 유베로부터 보니에크를 획득, 안첼로티, 토니뇨 세리죠 젊은 시절의 "왕자" 쟌니니로 황금 중반을 결성했었다.
유베의 스타트 데뷔는 압권이였다. 1라운드부터 8라운트에 이르기까지 8연승을 기록하여 획득한 승점은 16. 제 2라운드 코모전에서는 스토퍼인 브리오의 골로 1-0으로 승리, 제 4라운드의 베로나전에서는 라우드럽의 멋진 골이 결승점이 되었다. 토리노와의 더비는 세레나의 결승점으로 2-1로 신승, 제 7라운드 홈에서의 바리전에서는 플라티니가 해트트릭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둔다. 스팩타클이 결여되었다고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견고한 수비로부터의 카운터 어택이라는 "이탈리아식 축구"로 트랍은 어웨이에서의 싸움에서도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85년 11월 3일, 유베의 질주에도 "끝"이 왔다. 이때까지 어웨이에서 발휘하였던 압도적인 강함이 나폴리전에서 그늘에 가려져버린 것이다. 이 시합에서 플라티나와의 "10번 대결"에서 이긴 것은 젊은 날의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해가 떠오르는 기세로 "천재" 마라도나가 화려한 FK에 의한 "무적" 유벤투스의 9연승을 저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1주일 후 토리노에 로마를 불러들인 유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유벤투스는 3-1로 로마를 물리쳤다. 이 패배는 로마에게 있어서는 큰 타격이였다. "미숙한 에릭슨이 이끄는 로마는 스쿠데토 경쟁이서 완전히 이탈했다"라고 누구나가 생각하는 내용이였다.
그 후 12월 8일 도쿄에서 열린 인터 콘티넨탈컵 (도요타컵)에서 PK 승부까지 가서 알헨티노 쥬니오르스를 물리쳐 유벤투스는 세계 챔피언의 술에 취했지만, 산 시로에서 열린 밀란전에서 0-0으로 비겨버리고 만다. 하지만 상위를 노리던 나폴리와 삼프도리가가 패배, 인테르도 코모에 발목을 잡혀 1위의 자리는 내주는 결과에는 이르지 않았다.
겨울 스쿠데토(전반기 종료시 챔피언)은 26포인트로 유베, 2위는 20포인트로 나폴리 그리고 3위에는 18포인트로 로마와 인테르라는 결과로 전반전을 종료했다. 이 시점에서 승점은 겨우 6포인트 세리에B 강등이 확실했던 리체가 시즌 종반전에서 뜻하지 않은 "주역"을 펼칠거라고는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86년은 멕시코 월드컵의 해이기도 해서 스케줄 소화를 서둘리는 리그는 후반전 첫 시합을 1월 5일에 시작했다. 어웨이의 아베리노전에 무승부를 기록한 유베에게 있어 86년은 불길한 시작이 되었다. 피로를 보이기 시작한 유베는 홈에서 코모와 어웨이에서는 피사와 비겨 신년에 연속 3시합 모두 한단계 아래인 상대에게 무승부를 기록하고만다. 스쿠데토 경쟁으로부터 크게 후퇴하고 있던 전 시즌 챔피언 베로나를 상대로 어떻게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어지는 아탈란타전과 토리노전에서 또다시 연속 무승부. 명확히 "이기지 못하는"유베는 고전하고 있었다.
반면 1월 5일은 로마 대폭팔의 시작이 되었다. 에릭슨의 전술을 충분히이해한 자로로소는 이 날 아탈란타전을 보니에크의 2골과 (이 시즌 19골로 세리에A 득점왕이 된다), 바르시오의 골로 4-0으로 압승. 크리스마스 휴가로 체력과 기력을 완전히 되찾았는지, 다음 우디네세전에서도 승리를 거두어 1월 12일 시점에서 2위로 급상승한 것이다. 로마는 유럽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리그전만을 집중하면 되는 큰 강점이 있었다. 실제로 "로마가 유베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로마의 강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예정되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 축구계의 "상식'이다. 부르시오의 골로 2번이나 리드를 뺏었지만 로마는 베로나에게 2-3으로 역전패를 하고만다.
반면 유벤투스는 이 시즌이 유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는 트라파트니가 필사적으로 팀을 일으켜 세울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트랍은 다음 시즌부터 인테르를 지휘하는 것으로 거의 결정되어 있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트랍의 생각과는 달리 3월 19일 챔피언스컵에서 바르셀로나에게 패배, 리그전에서도 홈에서 나폴리와 무승부, 직접 대결의 로마전에서는 패배를 하고 말았다.
이 시합은 에릭슨이 로마를 이끌어서 싸운 시합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게임이였다. 열혈한 로마니스트로 매워진 경기장 아래, 그라시아니에 부르시오에 토니뇨 세리죠에게 골을 허용해 "귀부인"은 얌전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승리로 1위 유베와의 승점차를 3으로 좁힌 로마는 남은 5시합에서 스쿠데토 획득을 걸기로 했다.
스쿠데토 경쟁으로의 라스트 스파트. 부진에 빠진, 유베와 호조를 지속하는 로마. 이탈리아는 유베와 로마라는 클럽을 통해 그야말로 북과 남의 대결이 되었다. FIAT사의 거대한 자금력으로 세리에A를 지배한 유베. 그리고 야당 기독교 민주당의 정치를 물리친 회장 디노 비오라가 이끄는 로마라는 대비. 북부의 산업 특히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는 유벤투스와 농업, 관광을 상징하는 로마라는 대비. 유베와 로마의 수위 싸움은 북과 남의 정치경갱의 대립이라는 측면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탈리아 중이 칼치오의 열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남북전쟁을 연상시키는 싸움에 쓴 소리를 하는 자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아주리 감독이였던 베아르조트이다. "이런 치열한 스쿠데토 싸움을 하면 선수가 지쳐버린다. 리그 직후의 월드컵에서 스페인에서의 쾌거는 재현할 자신이 없다"라고 까지 말해버린다.
4월 6일 이때까지 절정의 컨디션을 유지해오던 로마에게 피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림피코에서 삼프도리아전 겨우 후반 30분에 그라시아니가 골을 넣어 승리르 거두었지만, 이전까지의 싸움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렇지만 다음 주 어웨이 피사전에서는 선취골을 뺏은 뒤 2골을 허용하고, 그 뒤 3골을 뺏았는 치열한 공방을 이겨내고 겨우 승리를 손에 넣었다.
한편 수위의 유벤에는 숙적 피오렌티나가 앞을 막고 있었다. 유베를 증오하는 비올라가 집결한 스타디오 코무라노.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비안코네리는 가진 힘의 반도 못내고 파사렐라, 그리고 니콜라 베르티에게 골을 서용하여 피렌체의 땅에서 잠겼다. 로마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 차는 드디어 승점 1까지 좁혀졌다. 다음 4월 13일 어웨이 삼프로디아전에서 타코니의 선방으로 패배는 면했지만 손에 넣은 것은 승점 1. 그 결과 유베는 로마와 함께 1위 자리에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남은 게임은 2시합. 그리고 4월 20일, 이 시점에서 이미 세리에B 강등이 결정되 의욕을 잃은 레체가 스타디오 올림피코에 모습을 보였다. 우승기분에 들뜬 로마니스트는 시합전부터 스쿠데토의 꿈을 부풀리고 있었다. 적어도 플레이오프로 갈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우승을 건 플레이오프....이탈리아의 긴 축구 역사안에서 단 1번 뿐. 1984년 볼로냐와 인테르가 승점 동률을 이루어 결과 볼로냐가 우승한 플레이오프 뿐이다.
하지만 역사에 "로마 전설"을 세울려고 했던 꿈은 단순한 망상으로 끝났다. 이 날 로마는 "예상되로" 쉽게 선취골을 넣었다. 킥오프 7분만에 그라시아니의 골이 들어간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변했다. 로마는 리듬과 밸런스를 무너트리고 디 키아라의 동점골을 허용해 그 후 바르바스에게 연이어 2골을 허용해버리고 만다. 시합 종료 직전에 부르시오가 1골을 만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로마는 그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를 한 것이다. 홈에 무적 밀란을 맞아 도중까지 고전을 했던 유베는 결국 라우드럽의 결승골로 귀중한 승점2를 획득해 스쿠데토에 크게 전진했다.
그리고 맞은 리그전 마지막날. 이론상으로 에릭슨이 이끄는 자로로소는 플레이오프의 기회가 남겨져있었다. 하지만 이미 따라잡는 기력은 남겨져있지 않았다. 어웨이 코모전에서 0-1로 패배. 유베도 웃기게도 로마의 꿈을 무너트린 레체에게 3-2로 패배하여 스쿠데토를 손에 넣었다. 유베 황금시대를 이룩한 스랍은 유벤투스의 감독으로서 6번째 스쿠데토를 남기고 토리노를 떠났다.
text by Luigi ROGNONI
photo by GUERIN SPORTIVO
견고한 카운트 어택으로부터 얻어낸 겨울의 스쿠데토 |
●1985 - 86 시즌 성적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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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는 1승이 승점2 |
트라파트니가 유베에서 마지막으로 획득한 스쿠데토의 추억. 그것은 동시에 지금은 잉글랜드 대표를 이끄는 스벤 요란 에릭슨의 오랜 세리에A 감독 생활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스쿠데토에 대한 쓴 추억이였으며, 리그 종료 직전까지 이어진 "치열한 경쟁"으로서 세리에A의 역사에 남는 스쿠데토 이야기이다. 이 시즌은 마지막까지 이어진 치열한 수위 싸움을 펼친 것은 유베와 로마였지만 스쿠데토의 열쇠를 쥔 것은 빠른 단계에서 세리에B 강등이 결정되었던 레치였다는 사실도 축구계의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시즌 베로나가 가져간 스쿠데토 획득을 향해 유베는 대규모의 전력 보강을 실시했다. 획득한 선수는 DF의 파베라, 루프, 장래가 유명했던 CF의 알도 세레나. 한편 로마는 유베로부터 보니에크를 획득, 안첼로티, 토니뇨 세리죠 젊은 시절의 "왕자" 쟌니니로 황금 중반을 결성했었다.
유베의 스타트 데뷔는 압권이였다. 1라운드부터 8라운트에 이르기까지 8연승을 기록하여 획득한 승점은 16. 제 2라운드 코모전에서는 스토퍼인 브리오의 골로 1-0으로 승리, 제 4라운드의 베로나전에서는 라우드럽의 멋진 골이 결승점이 되었다. 토리노와의 더비는 세레나의 결승점으로 2-1로 신승, 제 7라운드 홈에서의 바리전에서는 플라티니가 해트트릭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둔다. 스팩타클이 결여되었다고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견고한 수비로부터의 카운터 어택이라는 "이탈리아식 축구"로 트랍은 어웨이에서의 싸움에서도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85년 11월 3일, 유베의 질주에도 "끝"이 왔다. 이때까지 어웨이에서 발휘하였던 압도적인 강함이 나폴리전에서 그늘에 가려져버린 것이다. 이 시합에서 플라티나와의 "10번 대결"에서 이긴 것은 젊은 날의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해가 떠오르는 기세로 "천재" 마라도나가 화려한 FK에 의한 "무적" 유벤투스의 9연승을 저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1주일 후 토리노에 로마를 불러들인 유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유벤투스는 3-1로 로마를 물리쳤다. 이 패배는 로마에게 있어서는 큰 타격이였다. "미숙한 에릭슨이 이끄는 로마는 스쿠데토 경쟁이서 완전히 이탈했다"라고 누구나가 생각하는 내용이였다.
이 시즌 스쿠데토를 획득한 유베는 플라타니와 마라도나의 "10번 대결"이 많은 관중을 매료했다. |
그 후 12월 8일 도쿄에서 열린 인터 콘티넨탈컵 (도요타컵)에서 PK 승부까지 가서 알헨티노 쥬니오르스를 물리쳐 유벤투스는 세계 챔피언의 술에 취했지만, 산 시로에서 열린 밀란전에서 0-0으로 비겨버리고 만다. 하지만 상위를 노리던 나폴리와 삼프도리가가 패배, 인테르도 코모에 발목을 잡혀 1위의 자리는 내주는 결과에는 이르지 않았다.
겨울 스쿠데토(전반기 종료시 챔피언)은 26포인트로 유베, 2위는 20포인트로 나폴리 그리고 3위에는 18포인트로 로마와 인테르라는 결과로 전반전을 종료했다. 이 시점에서 승점은 겨우 6포인트 세리에B 강등이 확실했던 리체가 시즌 종반전에서 뜻하지 않은 "주역"을 펼칠거라고는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반전 고전하는 유베와 쾌속 질주를 이어가는 로마 |
86년은 멕시코 월드컵의 해이기도 해서 스케줄 소화를 서둘리는 리그는 후반전 첫 시합을 1월 5일에 시작했다. 어웨이의 아베리노전에 무승부를 기록한 유베에게 있어 86년은 불길한 시작이 되었다. 피로를 보이기 시작한 유베는 홈에서 코모와 어웨이에서는 피사와 비겨 신년에 연속 3시합 모두 한단계 아래인 상대에게 무승부를 기록하고만다. 스쿠데토 경쟁으로부터 크게 후퇴하고 있던 전 시즌 챔피언 베로나를 상대로 어떻게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어지는 아탈란타전과 토리노전에서 또다시 연속 무승부. 명확히 "이기지 못하는"유베는 고전하고 있었다.
반면 1월 5일은 로마 대폭팔의 시작이 되었다. 에릭슨의 전술을 충분히이해한 자로로소는 이 날 아탈란타전을 보니에크의 2골과 (이 시즌 19골로 세리에A 득점왕이 된다), 바르시오의 골로 4-0으로 압승. 크리스마스 휴가로 체력과 기력을 완전히 되찾았는지, 다음 우디네세전에서도 승리를 거두어 1월 12일 시점에서 2위로 급상승한 것이다. 로마는 유럽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리그전만을 집중하면 되는 큰 강점이 있었다. 실제로 "로마가 유베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로마의 강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예정되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 축구계의 "상식'이다. 부르시오의 골로 2번이나 리드를 뺏었지만 로마는 베로나에게 2-3으로 역전패를 하고만다.
반면 유벤투스는 이 시즌이 유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는 트라파트니가 필사적으로 팀을 일으켜 세울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트랍은 다음 시즌부터 인테르를 지휘하는 것으로 거의 결정되어 있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트랍의 생각과는 달리 3월 19일 챔피언스컵에서 바르셀로나에게 패배, 리그전에서도 홈에서 나폴리와 무승부, 직접 대결의 로마전에서는 패배를 하고 말았다.
이 시합은 에릭슨이 로마를 이끌어서 싸운 시합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게임이였다. 열혈한 로마니스트로 매워진 경기장 아래, 그라시아니에 부르시오에 토니뇨 세리죠에게 골을 허용해 "귀부인"은 얌전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승리로 1위 유베와의 승점차를 3으로 좁힌 로마는 남은 5시합에서 스쿠데토 획득을 걸기로 했다.
트라파티니로부터 유벤투스로의 6번째 선물 |
스쿠데토 경쟁으로의 라스트 스파트. 부진에 빠진, 유베와 호조를 지속하는 로마. 이탈리아는 유베와 로마라는 클럽을 통해 그야말로 북과 남의 대결이 되었다. FIAT사의 거대한 자금력으로 세리에A를 지배한 유베. 그리고 야당 기독교 민주당의 정치를 물리친 회장 디노 비오라가 이끄는 로마라는 대비. 북부의 산업 특히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는 유벤투스와 농업, 관광을 상징하는 로마라는 대비. 유베와 로마의 수위 싸움은 북과 남의 정치경갱의 대립이라는 측면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탈리아 중이 칼치오의 열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남북전쟁을 연상시키는 싸움에 쓴 소리를 하는 자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아주리 감독이였던 베아르조트이다. "이런 치열한 스쿠데토 싸움을 하면 선수가 지쳐버린다. 리그 직후의 월드컵에서 스페인에서의 쾌거는 재현할 자신이 없다"라고 까지 말해버린다.
4월 6일 이때까지 절정의 컨디션을 유지해오던 로마에게 피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림피코에서 삼프도리아전 겨우 후반 30분에 그라시아니가 골을 넣어 승리르 거두었지만, 이전까지의 싸움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렇지만 다음 주 어웨이 피사전에서는 선취골을 뺏은 뒤 2골을 허용하고, 그 뒤 3골을 뺏았는 치열한 공방을 이겨내고 겨우 승리를 손에 넣었다.
한편 수위의 유벤에는 숙적 피오렌티나가 앞을 막고 있었다. 유베를 증오하는 비올라가 집결한 스타디오 코무라노.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비안코네리는 가진 힘의 반도 못내고 파사렐라, 그리고 니콜라 베르티에게 골을 서용하여 피렌체의 땅에서 잠겼다. 로마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 차는 드디어 승점 1까지 좁혀졌다. 다음 4월 13일 어웨이 삼프로디아전에서 타코니의 선방으로 패배는 면했지만 손에 넣은 것은 승점 1. 그 결과 유베는 로마와 함께 1위 자리에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남은 게임은 2시합. 그리고 4월 20일, 이 시점에서 이미 세리에B 강등이 결정되 의욕을 잃은 레체가 스타디오 올림피코에 모습을 보였다. 우승기분에 들뜬 로마니스트는 시합전부터 스쿠데토의 꿈을 부풀리고 있었다. 적어도 플레이오프로 갈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우승을 건 플레이오프....이탈리아의 긴 축구 역사안에서 단 1번 뿐. 1984년 볼로냐와 인테르가 승점 동률을 이루어 결과 볼로냐가 우승한 플레이오프 뿐이다.
하지만 역사에 "로마 전설"을 세울려고 했던 꿈은 단순한 망상으로 끝났다. 이 날 로마는 "예상되로" 쉽게 선취골을 넣었다. 킥오프 7분만에 그라시아니의 골이 들어간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변했다. 로마는 리듬과 밸런스를 무너트리고 디 키아라의 동점골을 허용해 그 후 바르바스에게 연이어 2골을 허용해버리고 만다. 시합 종료 직전에 부르시오가 1골을 만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로마는 그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를 한 것이다. 홈에 무적 밀란을 맞아 도중까지 고전을 했던 유베는 결국 라우드럽의 결승골로 귀중한 승점2를 획득해 스쿠데토에 크게 전진했다.
그리고 맞은 리그전 마지막날. 이론상으로 에릭슨이 이끄는 자로로소는 플레이오프의 기회가 남겨져있었다. 하지만 이미 따라잡는 기력은 남겨져있지 않았다. 어웨이 코모전에서 0-1로 패배. 유베도 웃기게도 로마의 꿈을 무너트린 레체에게 3-2로 패배하여 스쿠데토를 손에 넣었다. 유베 황금시대를 이룩한 스랍은 유벤투스의 감독으로서 6번째 스쿠데토를 남기고 토리노를 떠났다.
85년 유베가 챔피언스컵을 획득하여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승리를 거두어 세계 챔피언의 칭호를 얻은 해였다 |
번역 : Pixy10
원본 : Calcio2002
※ 번역글에 대한 무단펌은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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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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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잘 봤습니다 ^^
VR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