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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2일 20시 40분

셈프레 넬 꾸오레:알레와 리키를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

  유벤투스를 응원한지 어느 정도 된 팬이라면 알레와 리키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또한 경기에 앞서 선수나 팬들이 그들에게 헌사를 바치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번 주에도 이 비극을 추모하는 날이 다가왔다. 이런 행사를 가지는 것은 아마도 수 년간 비안코네리를 지켜본 팬들도 이 안타까운 이야기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담 딕비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2006년 여름 유베가 29번째 타이틀을 따내고 기념적인 피파 월드컵(많은 유베 선수들이 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에 출전할 당시, 칼치오폴리가 터진 후 스쿠데토와 우승은 사라졌다. 강등이나 축구계 추방, 감점에 대한 우리 의견이 무엇이든, 유벤투스의 팬들은 스포츠의 불공평함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잃게 되었다.  

  6월 27일 지안루카 페소토의 자살 시도는 심히 충격적이었지만, 암울했던 그 해 11월 5일 클럽의 연습 구장에서 일어난 사건은 더욱 우리를 침울하게 했다. 프리메베라 연습에서 돌아온 뒤, 어린 선수들은 알레시오 페라모스카(17세)와 리카르도 네리(16세)가 옷과 가방을 라커룸에 남겨둔 채 사라진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토리노 소방대 소속 다이버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비노보의 클럽 하우스 주변 인공 호수에서 인양해야 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빗물을 저장하려 설치된 15m x 9m 크기의 호수에서 알레시오와 리카르도는 호수 위의 플라스틱 커버 위에서 축구공을 찾으려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들을 구조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알레시오는 저체온증과 심장마비로 즉시 사망했고, 체온이 20℃까지 떨어졌던 리카르도는 병원으로 후송되 밤늦도록 소생술을 받았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유벤투스는 즉시 체세나와의 세리에 B 경기를 취소했지만 당일 경기가 열리는 게 결정되었고, 반면 모든 유스 섹터는 2주 가량 어떠한 경기도 갖지 않았다.


  조사관은 두 소년은 강가에 서서 잃어버린 공을 잡으려다 커버 위로 넘어진 것이라고 발표했고, 두 명이 함께 빠진 것인지 아니면 한 명이 먼저 빠지고 그를 구조하려 한 것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팀메이트 이전에 친구였던 故 알레와 리키

 

  재능있던 두 선수는 단짝이었고, 베레티(지금은 해체된 U-17 팀)은 순위표에서 5점을 리드하고 있었다. 알레시오는 그 해 여름 부친이 회장으로 있던 아마추어 클럽 아틀레티코 미라피오리에서 유벤투스로 왔던 촉망받는 미드필더였다. 학교에 등록하기 불과 3개월 전 그는 클럽에서 17번째 생일을 맞이했었다. 

  리카르도는 더욱 뛰어난 선수였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2년 전 엠폴리에서 토리노로 왔고, 페루쟈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PK를 선방하는 등 6월 지오바니시미 니지오날리(U-15) 팀을 스쿠데토로 이끌었다. 또한 베레티와 프리마베라에서도 주전으로서 입지가 굳어있었다. 리키는 전 유베 선수이자 퍼스트팀 골키퍼 코치였던 미켈란젤로 람풀라를 떠오르게 했다. 람풀라가 말하길,

리키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 그 해 우승을 하고 피지컬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잘 성장했다. 비아레죠 이후 그를 A팀에 합류시켜 개인 훈련을 받게 할 예정이었다.

  그 당시 부폰의 뒤에 있던 골키퍼는 키멘티밖에 없었다는 걸 보면 이 말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그런 끔찍한 사건으로 운명을 달리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더 친숙한 얼굴이 되었을 것이기에 더욱 그럴 듯 했다. 알레시오와 리카르도의 합동 장례식은 토리노 대성당에서 천 명이 넘는 조문객과 함께 진행되었고, 몇 명의 퍼스트 팀 선수 클럽 매니저, 다른 팀의 대리인들과 학교 및 유스팀에서 함께 지냈던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다. 

  여전히 남아있던 충격과 슬픔은 리카르도의 하얀 관이 그의 1번 유니폼과 두 개의 스카프(비안코네리와 그가 좋아하던 피오렌티나의 보라색)에 싸여 들어올 때 더욱 커졌다. 당시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던 지안루카 잠브로타도 참석을 했으며, 이어 피레모스카의 관이 제단으로 향할 때 매우 침통해보였다.

  유벤투스는 그들을 기릴 것이란 뜻을 분명히 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리마베라의 홈 구장은 ‘캄포 알레 에 리키’라고 명명되었고, 지역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피비가 제작한 큰 모자이크화가 경기장 옆에 자리잡았다. 

서포터들 또한 정기적으로 같은 일을 해오고 있으며,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있었던 밀란과의 경기에서 22,000명의 팬들이 황금 깃발을 흔들었다. “알레시오 페라모스카 & 리카르도 네리 재단”에서 또한 그들을 기리기 위해 많은 행사를 연다. 자선 디너쇼가 열렸고, 2007년 클럽은 비노보에서 U-15 팀이 참가하는 ‘Ale & Ricky Sempre nel Cuore’ 대회의 계획을 발표했다. 

  치로 임모빌레는 보르도와의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을 가진 후, 2010 비아레조 토너먼트에서 10골을 넣어 MVP가 된 것을 두 소년에게 헌사했다. 두 소년의 팀 메이트였던 그는 알레와 리키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결승에서 임모빌레는 골을 넣었고, RAI 스포츠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승리를 알레시오 페라모스카와 리카르도 네리에게 바칩니다. 그들은 우리의 가슴 속에 있고 언제나 함께할 것이며, 그 곳에서 우리의 승리를 도울 것입니다. 이 비아레조 토너먼트는 팀을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그들 때문에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극의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알레와 리키는 모두에게 기억되어 유산으로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엉뚱한 곳으로 갔던 패스 실수 하나, 어둠, 미끄러웠던 땅과 차가운 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 밝음과 희망을 줄 것으로 보였던 공 하나는 비극으로 그들을 묶어버렸다. 알레시오와 리카르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수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채워주던 공 하나를 쫓다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우리는 그들은 절대로 잊혀져선 안될 것이다.

 


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Indonesian at JuventusClubIndonesia.com, translated from the original English (© Adam Digby).


http://juventiknows.com/sempre-nel-cuore-why-ale-ricky-must-never-be-forgo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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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20-21 써드아케 Lv.52 / 87,162p

Win the 57th match.
제 글은 당사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추천 자제좀ㅠ 알림이 너무 많이와요..

댓글 1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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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벌써 시간이 꽤 흘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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