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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6일 16시 08분


월드사커 2011. 8. 4호 No.344

안토니오 콘테 (유벤투스 신감독) 1969-7-31 : 생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감독으로서 유벤투스로 돌아 오겠다.

이 발언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게 7년... 안토니오 콘테가 정말로 돌아왔다. 현역시절 클럽의 황금기를 지냈던 원주장이 바라보는 목표는 단 하나. . .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유벤투스 선수가 막 되었던 안토니오 콘테를 처음 인터뷰 하였을때, 나에게 있어 무엇을 감추었는가?
1991년 11월 1일 (2 일 이었을지도 모름 ...), 콘테는 레체의 GM에 끌려가(?) 계약서에 사인하기 위해서 유벤투스 클럽 사무실에 왔다.

그 자리에 같이있던 것은 소수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심하게 긴장한 표정이었다.

프로빈챠(지방의 중소 클럽)의 레체에서 돌연 유베에 온 현실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막상 피치에 서면 누구보다도 믿음직했다. 유베를 떠난 2004년까지 13 년간 어그레시브한 퍼포먼스로 승리와 승리에(?) 공헌한 것이다.


유베에서 획득한 타이틀은 스쿠데토 5 회 (94/95, 96/97, 97/98, 01/02, 02/03), 이탈리아슈퍼컵 4회 (95년, 97년, 02년, 03년),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95/96), 인터콘티넨탈 컵 (96년), UEFA 컵 (92/93), UEFA 슈퍼컵(96년), 코파이탈리아 (94/95)가 각 1회.

유베에서의 통산 성적은 412 경기출장, 43 득점. 이전에는 이탈리아 대표로도 활약, 94년 미국 월드컵과 EURO2000에 참전했다.


몇 년 동안 주장으로서 팀 동료를 고무하고 스탠드의 유벤티노들을 열광시켰던 콘테. 그런 그가 현역을 물러나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 때의 첫마디는 이랬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감독으로서 유벤투스로 돌아 오겠다"


생각했던대로(예상했던대로?) 그 발언은 7년의 시간을 지나 현실의 것이 되었다. 클럽 OB그래서 발탁 되었다? 틀림없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바리와 시에나를 세리에 A로 승격시킨 실적이 높게 평가 된 것이다. 이렇게, 콘테는 실력으로 지금의 지위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인터뷰를 전달하기 전에 콘테의 축구 인생을 간략하게 돌이켜보자.


출신은 레체에서 아버지는 코시미이노 렌터카 회사의 사장이라하고 가정에서 길러졌다. 아버지가 구단주 겸 감독인 주니어 팀

[유벤티나-레체]에서 축구를 시작한 안토니오 소년(!?)은 당시부터 열광적인 유벤티노에서 10 세의 나이에

로베르토 벳테가(전 이탈리아 대표 FW. 유베에서 69~83년에 활약)의 초상화를 그려, 회화 콩쿨에 응모했다는 일화도있다. (어엌ㅋㅋㅋㅋㅋ)
이후 콘테는 85년 레체에서 프로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 톱 팀의 감독이었던 에우제니오 화세티에 재능을 인정 받아

약관 16세에 세리에 A에 데뷔하면 명석한 두뇌와 풍부한 스태미너를 살린 플레이 메키메키(플레이메이킹 뜻하는 듯)와 두각을 나타냈다.

프리마베라(U-19)의 시합에서 다리를 복합 골절당했을때, 한번은 선수 생활에 위기가 왔지만, 특유의 근성으로 부활.

그 멘탈터프니스는 공부에도 힘을 발휘하였고, 당시 다니던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증거없음. -ㅁ-ㅋㅋㅋ 콩진요 하죠!!)
레체의 밑바닥 생활을 거쳐 유벤투스에 입단 한 것이 22살 때. 아직은 어린 아들과 떨어져 사는 것을, 어머니는 심하게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해소 해 준 것은

당시의 회장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에게서의 전화였다.
"부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안토니오군이 보게될것은 가정적인 따스한 환경입니다. 모두가 그를 도와주려하니까요."
콘테에게 행운이었던 것은, 팀을 지휘하고 있던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선수 개개인에 맞는 대응을하는 감독이었다는 것이다.

포텐셜의 높이에 눈을 맞춘 트랍(트라파토니의 애칭)이 이MF에 부과 한 스페셜 메뉴는 '1인랠리'였다.
벽을 향해 오른발로 찬 공을 다음은 왼발, 그 다음은 오른발로 차 반환하는 식으로 집합시에도 이 '1인 랠리'는 계속되었다.

이 연습을 계속하게된 덕분에 콘테는 더 정확하게 볼을 컨트롤 할 수있게되었다. 트랍 후에는 마르첼로 리피, 카를로 안첼로티, 그리고 또 리피 감독이되었지만, 누구라도 납득시킬만한 힘을 키웠던 것이다.
사실 콘테는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아리고 사키 (재임기간은 91~96 년)와 디노 조프 (재임기간은 98~00 년)도 잘맞았다.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피치의 지휘관으로서 존재감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감독이 된 후에도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있다. 05/06 시즌 시에나의 조감독을 맡은 후, 아레초(세리에 B)의 감독으로 취임.

[승점 -6]의 페널티를 부과받은 팀을 장악하지못해, 2006년 10월에 빠르게 해임되지만, 다음 해 3월에 다시 부름을 받아 돌아온 마지막 7경기에서 15점을 벌었다.

잔류라는 결과는 이루지 못했지만, 콘테의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좋은인상을 남겼다.
바리에서는 취임 2년째의 08/09 시즌 4경기를 남겨 세리에A 승격을 결정지었고, 다음 시즌 세리에 A에서는 아탈란타에서 별 결과를 내지 않았지만,

시에나를 이끈 10/11시즌은 바리때와 같이 마지막 경기를 기다리지 않고 A 승격을 확정지었다.

과연 11/12시즌 유베에서 어떤 수완을 발휘하련지, 명문 부활을 목표로 지휘관 콘테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피치위의 감독으로 유베의 황금기를 지냈던 콘티. 기백넘치는 플레이는 유벤티노의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다.

'내 축구에서 중요한 측면 선수. 기술과 체력, 그리고 무엇보다. . . .'



번역 : 유베당사 '풍사'



네 인터뷰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 

다수의 의역있습니다. 펌도 좋아요. 다만 출처와 번역자는 남겨주시기 바랍니다.(굳이 퍼가요 안남기셔도 됩니다.)

원출처는 2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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