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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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6일 23시 54분


01/02 시즌 유벤투스는 많은것이 변했습니다.

 

팀의 간판스타이던 지네딘 지단, 필리포 인자기등이 팀을 떠났고

 

파벨 네드베드, 릴리앙 튀랑, 지안루이지 부폰 같은 새로운이름들이 팀에 합류했습니다.

 

이런 대대적인 스쿼드개편속에 델 피에로의 역할은 분명했습니다.

 

돌아온 리피감독의 무한한신임아래 안토니오 콘테의 뒤를이어 팀의 새로운주장으로서

 

새로운선수들을 이끌며 97/98이후 계속된 3년간의 무관을 떨치고 스쿠뎃토를 탈환하는것.

 

이게 새로운 시즌을 앞둔 지상과제였습니다.

 

 

 


01/02 시즌은 팬들의 관심을 엄청나게 끌어모은 시즌이었습니다.

 

유벤투스의 2년연속 아쉬운준우승이 모든 비안코네리 서포터들의 우승을 향한 갈망을 높였었고

 

돌아온 리피, 부활한 델피에로, 징계에서 돌아오는 다비즈, 완전히 바뀐 팀스쿼드 등 유벤투스 서포터들의 흥미를 끌수있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 토리노와의 더비에선 64,764명의 관중동원으로 역대최다관중기록을 세우기도했습니다.

델레알피가 축소된 지금으로선 이기록이 최종레코드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다비즈 얘기를 따로 풀어보자면 다비즈는 경기가끝난뒤 하는 무작위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옴에따라 5개월 출전정지를 받았었습니다.

유베에서 유일한 징계자였으며 타팀에선 쿠투가 대표적인 선수입니다. 8명의 적발자가 나왔습니다.

복귀후 폼이 예전같지 않자 유벤투스는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다비즈를 제외했고, 이에 항명한 다비즈는 클럽으로부터 벌금징계를 받습니다.

이게 다비즈를 리피, 그리고 유벤투스와 틀어지게한 결정적인 계기가됩니다)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의 리더가 어떤역할을 해야하는지 잘 알고있는 선수였습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무언지 잘 알고있어요.

 

단순히 골로 말하는 자리가 아니란것도 좋은플레이로만 말할수있는 자리가 아니라는것도 압니다.

 

이 주장완장이 의미하는 바는 충분히 느끼고있어요. 그렇지만 그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진않겠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01/02시즌이 개막합니다.

 

프리시즌기간중 지단의 공백이 우려되었지만 시즌이 시작되고나서 본 유벤투스의 MF진은 강력했습니다.

 

금발머리를 휘날리는 새로운 공격의시발점 네드베드를 필두로

 

리그 탑 클래스 자원으로 확고히 올라서 측면MF, 중앙MF, 수비형MF 가리지않고 뛰어준 잠브로타가 있었고

 

만년 로테이션멤버일줄 알았던 타키나르디 역시 한클래스올라서며 주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비즈역시 초반에 잠시 삐걱댄후 다시 완벽한 폼으로 돌아와 팀의 상승질주에 힘을 보탰습니다.

 

몬테로가 세계최고의수비수라 불리울만한 모습을 보여준 수비진역시 걱정은 없었습니다.

 

물론 알렉스가 신임주장으로서 라커룸을 잘 이끌어준 공을 빼놓을순없겠죠

 

 

 

시즌전, 그리고 시즌초 유벤투스가 지적받던 가장 큰 부분은 무게감없는 공격진, 그에따른 화력에 대한 물음표였습니다.

 

팀의 No.9인 인자기를 떠나보낸후 마땅한 보강이 없었던게 우려의 원인이었죠

 

이적시장내내 노리던 비에리의 재영입은 결국 실패했고

 

막판에 칠레의 El Matador(현재는 카바니의 애칭이죠) 마르셀로 살라스가 합류하긴했지만

 

밀라노로 떠난 인자기의 자리를 매꿔줄수있을거란 기대는 적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살라스가 시즌초에 장기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이런 우려를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결국 시즌내내 주전은 델피에로, 트레제게의 조합이었는데

 

복귀후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지못하고있는 델피에로가 과연 97/98같은 스코어러의 모습을 찾을수있을지에 회의적인 시각이있었고

 

소포모어 징크스의 시즌을 맞은 아직 신예에 불과한 트레제게와의 조합은 유벤투스의 위험요소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디어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트레제게는 24득점을 기록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스쿠뎃토 탈환에 큰 역할을 해주었고

 

(* 84/85시즌 플라티니이후 첫 득점왕배출이었습니다.)

 

 

델 피에로 역시 지난시즌 후반기부터 이어진 좋은흐름을 계속 이어가며 16득점을 기록 (8어시스트)

 

기존의 어시스트 능력외에 스코어러로서의 면모 역시 완벽하게 부활했음을 알렸습니다.

 

 


둘은 리그에서 무려 합작 40득점, 공격포인트 50포인트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시즌 유벤투스의 리그 전체 득점이 64득점이었습니다. 공격포인트의 80%를 이 두명이 기록한것이죠.

 

더구나 당시 세리에A는 지금처럼 38경기가아닌 34경기라는것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대단한수치입니다.

 

마지막라운드역시 이둘의 득점으로 짜릿한 역전우승을 차지할수있었습니다.

 

(* 델피에로/트레제게 조합은 훗날 07/08시즌에 합작 41골을 기록하며 6년만에 기록을 갱신합니다.)

 

 


01/02시즌은 정말 명승부였습니다.

 

3년간 무관행진으로 절치부심하던 유벤투스

 

축구황제 호나우두의 복귀로 천군만마를 얻은 인터밀란

 

또다른 황제를 보유하고있던 세리에A 2연패를 노리는 로마

 

이 세팀은 모두 완벽한 전력을 선보이며 시즌시작부터 끝까지 피말리는 경쟁을 이어갔습니다.

 

 

 

로마가 윈터 스쿠뎃토 (= 전반기1위)를 차지하며 기분좋게 후반기를 맞이했으나

 

인터밀란이 바로 순위를 뒤집은후 33라운드까지 선두를 질주했습니다.

 

그리고 시즌막판 무서운 상승세를 탄 유벤투스는 결국 종료 1R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로마를 뒤집고 2위로 올라섰으며

 

마지막라운드에서의 승리로 끝내 스쿠뎃토를 탈환하는 위업을 달성합니다.

 

32R 3위, 33R 2위, 34R 최종 1위 라는 드라마틱한 역전 우승이었죠.

 

3년의 무관을 떨치는데 이보다 짜릿한 드라마는 없었을겁니다.

 

(* 호나우두의 눈물로 유명한 올림피코에서벌어진 라치오 vs 인터밀란의 마지막라운드는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나았습니다.

1위 인터밀란은 스쿠뎃토를 따기위해 라치오원정을 나섰고

라이벌 로마에게 2연패를 허용하기싫던 라치오팬들은 홈에서 인터밀란을 응원하는 진풍경을 보여줍니다.

이게 오히려 라치오선수들을 악에 차게만든걸까요. -네스타 이적의 결정적 계기가된 경기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좋지않던 시즌을 보내던 라치오는 이날만큼은 포보르스키와 시메오네를 앞세운 완벽한플레이로 홈에서 인터밀란에게 일격을 가해버렸고

이에 최종전을 앞두고 2위였던 유벤투스가 역전우승, 3위였던 로마가 2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알렉스는 지난시즌 비난의 중심에 그를 가져다놓았던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맹활약하며 그에대한 찬사들을 이어갔습니다.

 

1차 조별리그에서 포르투를 상대로 골을터뜨리며 팀을 16강리그로 이끈것을 비롯해 총 4골을 터뜨리며 모든 비난여론을 잠재웠습니다.

 

비록 팀은 그후 레버쿠젠,데포르티보,아스날이라는 죽음의조에서 16강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지난시즌 그에게 집중되던 비난은 사라졌습니다.

 

유벤투스의 골든보이는 3년간의 암흑기를 뒤로하고 확실히 부활했습니다.


(* 암흑기를 딛고일어난 델 피에로의 인기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쉽게 알려줄수있는 자료를 소개해보자면

이때 이탈리아에서 개인의 이름으로 최고액의 소득을 기록한사람은 연간 6000만달러의 조르지오 아르마니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바로 아래 위치한 이름이 3000만달러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입니다.

연봉과 각종초상권, CF출연, 방송출연등으로 1년동안 천문학적인 액수의 수입고를 기록한거죠.

이탈리아 최대기업이라는 피아트의 회장이자 구단주인 지아니 아넬리조차 2400만 달러로 알렉스의 아래였으며

수상이자 이탈리아 최대재벌이라는 베를루스코니조차 연간수입 750만달러로 알렉스의 1/4밖에 되지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베컴이며 델피에로 천하였습니다.)


 

 


델 피에로의 상승흐름은 유벤투스에서만 국한되지않았습니다.

 

비록 로마의 왕자 토티에게 No.10을 양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주리에서 그는 핵심선수였습니다.

 

02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꾸준히 좋은모습을 보여주며 팀에 공헌했으며

 

이탈리아에게 월드컵 본선티켓을 안긴 선수는 토티도 비에리도 아닌 바로 델 피에로였습니다.

 

아주리가 헝가리를 상대로 고전하던 와중

 

알렉스는 본선진출을 확정짓는 멋진 프리킥 결승골을 터뜨리며 이탈리아를 월드컵으로 이끌었습니다.

 

더이상 아주리에서도 그를 비난하는 미디어는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 그리스전에서 월드컵티켓을 가져온 베컴의 프리킥과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 델 피에로의 아름다운 or 우아한 드리블 이라는 제목의 유명동영상이 나온것도 이 헝가리전입니다)

 

(* 델 피에로 본인은 이 01/02시즌이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몸놀림이 가벼웠던 시즌중 하나라고 회고합니다)

 

 

 

다시금 완벽하게 정점에 오른 델피에로는 4년전의 아픔을 씻기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러나 당시 아주리 감독이던 트라파토니는 최상의 컨디션과 월드컵예선에서의 좋은모습

 

그리고 개최지였던 일본홈팬들의 열광적성원에도 불구 델 피에로를 중용하지않았습니다.

 

로마의 왕자 토티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이며 오직 그를 중심으로 전술을 가져갔고

 

델 피에로는 유로2000과 마찬가지로 벤치에서의 조커역할만이 돌아왔을뿐이었습니다.

 

미디어들은 트라파토니에게 토티,델피에로,비에리의 3각편대를 요구했지만

 

트라파토니는 셋의 공존은 리스크가 크다며 최적의 조합으로 토티-비에리를 주장하며 미디어를 일축합니다.

 

 


이에 알렉스는 첫경기에 교체투입되어 15분의 플레이시간을 부여받았을뿐이고

 

그나마도 2차전은 결장하고말았습니다.

 

그리고 팀이 1승 1패로 탈락위기에몰린 조별리그 3차전 멕시코전 역시 델 피에로는 벤치에서 대기했습니다.

 

멕시코의 보르게티에게 이론상으로 설명할수없는 헤딩슛을 허용하며 리드를 빼앗긴 아주리.

 

탈락이 현실로 다가올 시간대인 후반 33분이되자 결국 트라파토니 감독은 델 피에로를 필드로 내보냅니다.

 

 


그리고 몇분 후 델 피에로는 몬텔라의 아름다운 크로스를 받아

 

머리로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내며 이탈리아를 탈락의 수렁에서 건져냅니다.

 

모든 팀동료들과 언론들은 경기후 델 피에로에게 찬사를 보냈으며

 

이에 고집쟁이로 유명한 트라파토니마저 고집을 꺾고 그를 16강전에 선발로 출장시키기에 이릅니다.

 

비록 그가 교체아웃된후 팀이 역전패를 당하며

 

델피에로 본인이 가장 최상일때 참가한 월드컵이라는 대회는 그렇게 끝나게되었지만

 

메이저대회의 연이은 부진에따른 마음의 짐을 드디어 털어버린 델 피에로가 한결 부담을 덜었음은 두말할필요가 없을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온 02/03시즌

 

시작은 시끄러웠습니다.

 

유벤투스가 꾸준히 노려온 네스타와 칸나바로가 여름이적시장에 매물로 나왔지만

 

전시즌 너무 많은 자금지출을 감행했던 유벤투스는 이들의 이적료를 감당할수없었습니다.

 

이에 리그최소실점팀 타이틀을 갖고있던 유벤투스는 무리를 감행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하에 이 경쟁에서 빠졌으며

 

결국 국가대표 수비수 두명을 밀라노의 양클럽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에 시즌시작전부터 우려섞인 시선을 받았었으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 그야말로 델 피에로를위한 시즌이었습니다.

 

파르마에서 2시즌간 60경기 35골을 터트린 디바이오의 가세로

 

공격진의 새로운 경쟁체제를 예상하는 미디어도 많았지만 알렉스는 언터처블이었습니다.

 

 

 

월드컵의 좋은 폼을 클럽으로 이어온 델 피에로는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슈퍼컵에서 당시 이적직전이던 디바이오와의 맞대결에서 2골을 터뜨리며 승리

 

팀에게 오랜만의 슈퍼컵타이틀을 선사했습니다.

 

시즌개막후부터 리그에서 11경기 7골이라는 골사냥을 이어가며

 

개막후 8경기 무득점에 그치던 3000만불의 사나이 디바이오를 완전히 벤치로 보내버렸습니다.

 

알렉스는 원맨쇼를 보여주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디어로부터 '유벤투스는 델 피에로 원맨팀' '다른선수들은 축구장에서 자고있나' 소리까지 나오게 됩니다.

 

몇년간 그를 사냥하던 미디어들의 이런보도들이 낯설정도였죠

 

 

 

 

이런 평가가 절정에달했던건 최약체인 모데나전 이후입니다.

 

델 피에로는 챔피언스리그를 위해 체력안배차원에서 벤치에서 대기하며 스타트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스가 없던 팀이 시종일관 답답한 경기를 펼치자 리피는 결장예정이었던 알렉스를 후반에 교체투입하였고

 

델 피에로가 이에 화답하여 투입되자마자 바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에 귀중한 승점 3점을 가져옵니다.

 

이에 미디어들은 델피에로없는 유벤투스의 졸전을 비판하고, 알렉스의 물오른 득점감각을 칭찬할 따름이었죠.

 

 


다음날의 헤드라이트는 '델 피에로 원맨쇼' 였습니다.

 

 

 


전임 주장이던 콘테가 인터뷰에서


"난 델 피에로가 모든 비난의 중심에 있을때도 그를 믿었다.

 

확실히 요즘 그의 활약은 눈이부실 정도다.

 

그렇지만 팀의 성공은 모든 팀원들의 공이며 우리는 알렉스에게만 의지하는 그런팀이아니다"

 

라고 밝혔어야 했을 정도로 알렉스에대한 칭찬은 끝이없었습니다.

 

 

 

(* 그당시 알렉스의 위치가 어떠했는지는 유벤투스와의 경기를 앞둔 타팀선수들의 발언에서도 알아볼수있습니다.

데포르티보의 마카이는 유벤투스전을 앞두고 "작년과는 다른시합이 될것이다. 유벤투스에는 슈퍼에이스 델 피에로가 있다.

그를 넘지않고서는 힘든경기가될것" 이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잘나가던 델피에로는 시즌중반 5주짜리 부상을 입게 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연전에 결장하게됩니다.

 

98/99 이후 4년만의 8강진출을 노리던 유벤투스로서는 뼈아픈결장이었죠.

 


 

이에 리피감독은

 

"그가 보통선수가 아니라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우리팀의 다른선수들도 마찬가지에요.

 

알렉스없이 우리팀이 어느정도의 레벨인지 증명해보일필요가있습니다. 운동화끈을 더 조여매야해요"


 

라는 인터뷰를 남기고 결의에차 시합에 임했지만

 

팀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의 2연전에서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알렉스의 결장때문인지 당시 토리노에 몰아닥친 유행성 독감의 원인인지는 알수없지만요.

 

 


결국 그후 델피에로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었습니다.

 

알렉스의 복귀전에는 간만에 델레알피에 많은관중들이 들어차 델피에로 콜을 보내기도했습니다.

 


부상회복후 다소간 폼을 회복하지못하던 시기도있었으나

 

시즌후반으로 달려가면서 알렉스는 다시 완벽한 폼으로 돌아왔습니다.

 

팀이 인터밀란과의 6점차를 유지하며 우승을 7부능선을 넘은 와중인

 

4월 28일 브레시아전에서도 2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이끌었고

 

유벤투스는 이 승리에 힘입어 타구장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2위 인터밀란과의 격차를

 

무려 8점으로 벌리며 리그 종료 4게임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이 시즌 델피에로는 2달간의 부상결장으로 겨우 24경기 출장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16득점으로 팀내 최다득점을 기록했으며

 

리그 전체를 살펴보아도 그의 이름위엔 비에리,무투,인자기 세명밖에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 알렉스의 커리어를 통틀어도 이 02/03의 게임당 0.67골, 118분당 1골이 가장 좋은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에 유벤투스는 계약만료가 다가온 델 피에로에게 400만유로의 4년계약을 선물하며 화답했습니다.

 

비록 그전의 계약갱신때처럼 세계최고연봉액 선수로 불리울수는 없겠지만

 

4년이라는 기간과 400만유로라는 금액은 그에대한 팀의 신뢰를 충분히 확인할수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역시나 02/03시즌의 백미는 레알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델 피에로는 짜릿한 복수에 성공합니다.

 

97/98시즌 결승에서 자신에게 부상을 입히며 월드컵까지의 악몽을 가져왔던

 

레알마드리드의 전설인 이에로를 개인기로 완벽하게 농락하며 결승골을 터트린것이죠

 

그리고 그의 활약은 다시한번 유벤투스를 챔피언스리그 결승무대로 복귀시킵니다.

 

비록 올드트래포드의 경기에서 게임메이커인 네드베드의 결장속에 라이벌 AC밀란에 승부차기끝에 아쉽게 패했고

 

코파이탈리아 역시 신예 미콜리에게 무너지며 탈락하고말았지만

 

그들의 02/03시즌이 실패였다 말하는 이는 아무도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성공한 시즌을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공의 스포트라이트는 델 피에로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어메이징한 활약을 보였던 팀동료 네드베드가 시즌중후반부터 폼을 끌어올리더니

 

누캄프원정에서 골, 레알마드리드전 쐐기골을 기록하는등 챔피언스리그에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이고

 

리그에서도 9골을 기록하며 미들라이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

 

발론도르를 수상하며 세계최고의선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트레제게마저 장기이탈했던 이 02/03시즌 리그우승의 1등공신이

 

델 피에로라는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것입니다.

 

(* 가제타, 투토를 비롯 주요언론들은 유벤투스의 리그우승 리뷰에서 델피에로를 1등공신으로 꼽았습니다.)

 

(* 전반기는 델피에로의팀, 후반기는 네드베드의팀. 이라 단정짓는것도 무리가 없다 생각될 두선수의 활약이었습니다.)

 

 


판타지스타는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부활한 판타지스타와 함께 유벤투스도 9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악몽을 떨치고 다시 명실상부 이탈리아 최고의 클럽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리전에서 돌아온 판타지스타는 이 02/03시즌까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이 상승흐름은 멈추지 않을것만 같아보였습니다.

 

 

 

계속해서 모든것이 순탄할것만 같아 보이던 03/04시즌

 

레그로탈리에, 미콜리라는 리그에서 주목받던 신예들이 가세하며 3연패의 기대감을 높여주었고

 

95/96우승후 3번째 준우승만 차지하던 챔피언스리그의 한을 풀 적기라 여겨졌습니다.

 

기대대로 시작은 나쁘지않았습니다.

 

델 피에로 역시 바로 골사냥에 성공하며 리그 3연패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즌중반이 되고 후반으로 넘어가며

 

다비즈의 항명부터 불거진 조직력문제와 주전들의 연이은 줄부상 속에

 

 

유벤투스는 지난시즌의 영광을 뒤로한채 거짓말처럼 주저앉고맙니다.

 

윈터브레이크 기점까지 선두와 유벤투스의 승점차는 단 3점이었으나

 

밀란이 우승을 확정하던 그날, 유벤투스는 강등권인 페루자에게도 패하는 씁쓸한 경기를 펼칠뿐이었고

 

두팀의 최종승점차는 13점차 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때 유벤투스의 조직이 얼마나 맞아돌가지 않았는지 잘 보여주는건 디 바이오의 인터뷰입니다.

"감독은 내게 아무런 전술적 움직임을 지시하지않았습니다. 공을 잡으면 델피에로나 네드베드에게 넘겨라.

그둘이 다 알아서해줄것이다. 그게 나한테 하는말의 전부였죠." )

 

 

 

델 피에로는 좋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바로 부상을 당하며 좋던 흐름을 날려버렸으며

 

그후 잦은부상을 반복, 시즌내내 잔부상을 달며 컨디션유지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알렉스는 겨우 22경기 출장에 그쳤고, 8득점이라는 저조한 기록을 남기며 팀의 몰락을 막지못했습니다.

 

더구나 팀의 리더로서 무너진 팀을 끝내 일으키지 못한점 역시 델 피에로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 03/04시즌 코파이탈리아와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경기 3득점 / 5경기 3득점의 좋은모습으로 시즌전체스탯은 31경기 14득점입니다)

 

(* 이 시즌에 대해서는 딱히 코멘트를 남길만한 이슈거리도 장점도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갈피조차 잡을수없을정도로 팀의 전체적인 스피릿이 무너져버렸습니다.

델 피에로와 네드베드라는 두 중심축이 돌아가면서 부상으로 아웃되고, 컨디션난조를 겪었으며

카모라네시만이 유벤투스의 군계일학이었습니다.

기대를 모으던 차세대 판타지스타 주자였던 미콜리는 부상에 시름하던 델피에로의 자리를 매워주지못했고

레그로탈리에가 가세한 수비진은 부폰을 힘들게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시즌 유벤투스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데포르티보에게 2연패를 당하고 16강에서 씁쓸히 물러났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마저 라치오에 밀려 준우승에 그치며 무관을 기록

 

98/99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 이시즌 유벤투스가 건진 유일한 수확은 눈오는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뿐일것입니다)

 

(* 델피에로 개인의 유일한 수확이라면 3월 FIFA 창립 100주년 기념 최고의 선수리스트에 선정된것이겠죠)

 

 

이렇듯 최악으로 기억되는 시즌이 지나가고 다시 메이져대회의 기간이 돌아옵니다.

 

4년전 자신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던 유로대회가 다시 열리게 된것이죠.

 

감독은 역시나 월드컵에이어 트라파토니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2년전과는 달랐습니다.

 

트라파토니는 월드컵후 토티, 비에리외에 델피에로 역시 핵심자원으로 인정했고 꾸준히 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알렉스 역시 유로의한을 풀기위해 웨일즈전을 비롯해 여러골과 좋은장면들을 보이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해왔었습니다.

 

이탈리아내에서도 지난 10년간 가장 강한 대표팀이라는 말이 나왔었고

 

유로2004에서 아주리대표팀은 토티,비에리,델피에로를 앞세워 프랑스와함께 우승후보 0순위로 분류되었습니다.

 

조편성도 덴마크,스웨덴,불가리아라는 무난한 편성표를 받아들며 더더욱 기대감을 높여만갔죠.

 

 

 

그러나 아주리는 샴페인을 터트리지못했습니다.

 

첫 경기인 덴마크전에서 중원의 페로타-자네티 라인이 압살당하며 시종일관 졸전끝에 무승부에 그치고 만것이죠.

 

(* 당시 새내기였던 피를로는 스쿠뎃토 중원인 자신과 가투소를 기용하지않은 트라파토니의 패착이라고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대표팀의 핵심이었던 토티가 상대선수 폴센에게 침을 뱉은 사실이 비디오판독으로 적발돼

 

팀의 구심점이었던 에이스마저 첫경기에서 잃고맙니다.

 

그래도 아직 아주리는 명장 트라파토니 감독을 비롯 화려한 멤버들이 건재했고

 

이에따른 여전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그 모든것이 2차전 스웨덴전에서 무너집니다.

 


 

 

당시 스웨덴과의 경기를 앞두고 모든 기대치를 모았던건 델 피에로입니다.

 

토티의 부재로인해 더욱 비중이 높아진것과 더불어

 

유로 2000에서 바로 이 스웨덴을 상대로 멋진골을 터트렸던걸 모두 기억하고있었으니까요

 

메이져대회에서의 부진도 02 월드컵으로 씻어낸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알렉스는 그 모든 기대에 부응하지못했습니다.

 

토티의 부재로 익숙치않은 포지션인 트레콰티스타, 즉 바로 토티의 자리에서 플레이하게되었고

 

본인이 선호하지않던 위치인만큼 좋지못한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 델 피에로는 트라파토니 체제의 아주리에서 레프트 윙포워드로 역할을 부여받아왔었습니다)

 

(* 이탈리아 칼럼니스트들은 유벤투스식 투톱전술로 델피에로를 살려주었어야한다는 비난을 가했습니다.)

 

 

그런 와중 아주리는 이브라히모비치의 말도안되는 슛에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며 또다시 무승부를 기록하고 탈락위기에 몰리게 되었고

 

시합이 끝난후 델피에로, 비에리같은 핵심선수들은 자국내의 비난여론을 피해갈수없었습니다

 

결국 마지막경기를 앞두고 자력진출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이르렀고 불가리아전을 이기더라도

 

덴마크와 스웨덴이 2:2 이상의 스코어로 무승부를 기록하면 3팀의 승점동률속에 다득점에서 탈락하는 사태를 맞습니다.

 

이탈리아의 모든선수들, 자국의 모든언론들이 두 국가를 향해 페어플레이를 압박했고

 

델 피에로 역시

 

"2:2는 한팀이 이기는것 혹은 0:0, 1:1 보다도 훨씬 어려운결과다. 양팀의 공정한 시합을 기대한다" 라고 코멘트했으나

 

두팀은 끝내 종료를 얼마 남기지않고 2:2를 만들어버리며 사이좋게 8강에 올라갑니다.

 

(* 카싸노가 불가리아전 결승골을 기록한후 환호하다 타구장소식을 듣고 울어버린 장면은 유명합니다)

 

(* 스웨덴마크연합국 이라는 신조어를 탄생한 이 두나라는 나란히 8강에서 탈락합니다)

 

 

 

결국 팀의 핵심 프란체스코 토티의 출장정지속에 아주리 전체가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못하며 아주리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98월드컵, 유로2000 이 끝난후와 같은 높은수위의 비난은 없었지만

 

03/04시즌 소속팀 유벤투스의 믿을수없는 부진까지 더하면 델 피에로에겐 안개가 낀듯한 1년이었죠

 

델 피에로가 전성기라 할수있었던 메이져대회인 02월드컵과 유로2004는

 

그렇게 두번 모두 토티의 퇴장속에 씁쓸히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던와중 최악의 시즌을 보낸 유벤투스는 또다시 감독교체를 단행합니다.

 

알렉스의 은사인 명장 마르셀로 리피감독이 다시 유벤투스를 떠나게되었고

 

파비오 카펠로가 델 피에로의 유벤투스 4번째 감독으로 부임해옵니다.

 

(* 카펠로의 유벤투스 감독취임소식은 아주리대표팀의 유로를 앞둔 마지막훈련중에 발표되었었습니다.

 

합숙중 이소식을 들은 델피에로, 부폰을 비롯한 유벤투스선수들이 만세를 부르고 로마의 토티, 카싸노가 침울해져서 식사를 걸렀다는 재밌는 일화도있습니다)

 


그리고 유로2004에서 이탈리아를 울린 주인공인 스웨덴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습니다.

 

마치 유로2000에서 이탈리아를 울린 프랑스의 트레제게가 유벤투스로 왔던 데자뷰를 느끼게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두경우는 달랐습니다.

 

트레제게는 델 피에로 선수생활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주었지만

 

이브라히모비치는 델 피에로 선수생활 최고의 라이벌이 되었습니다.

 

다가오는 04/05시즌부터 이 두선수의 피말리는 경쟁체제가 시작되며

 

알렉스는 바지오를 밀어낸 그날이후 처음으로 주전경쟁을 하게됩니다.

 

 

이시기 알렉스의 커리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세리에A        2회우승

 

챔피언스리그   1회준우승

 

코파이탈리아   1회준우승

 

이탈리아슈퍼컵 2회우승

 

FIFA 100주년 기념 최고의 선수 125人 포함

 

 

리그               78경기 40득점

 

유럽대회        27경기 12득점

 

국가대표        23경기  8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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