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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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6일 23시 47분




전 국민적인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참가한 98 프랑스 월드컵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에로에게 입은 부상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던 델 피에로는

 

결국 이탈리아 국민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조별예선 첫경기인 칠레전에는 아예 출전조차 하지못할정도로 몸상태가 안좋았던 그는

 

결국 대회기간내내 이렇다할 활약조차 하지못한채

 

델 피에로 라는 이름에 어울리지않는 부진한 플레이만을 전세계축구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믿었던 No.10의 부진속에

 

아주리는 홈팀 프랑스와의 8강에서 승부차기로 탈락, 씁쓸한 귀국길에 오릅니다

 

 

 


비난의 도마에 오른건 노마크 헤딩찬스를 놓친 바지오도

 

마지막 키커로나와 왼쪽 골포스트를 강타한후 그라운드에 누워버린 디비아죠도 아닌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No.10 델 피에로였습니다.

 

알렉스는 "대회기간 내내 컨디션이 좋지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매스컴에 핑계아닌 핑계와 사과를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 어느정도로 비난의 강도가심했냐면 승부차기패배후 알렉스의 침울해하는 표정을 악의적인 편집을 가해 아주리의 pk성공장면에 끼워맞춘뒤

'팀이 득점을 해도 델피에로는 기뻐하지않았다' '본인의 활약에만 신경쓰고 팀은 안중에도없던 델피에로'  라는식의 보도가 나오기도했습니다.)


(* 유벤투스 팬중에서도 바지오를 아끼던 올드팬들중 알렉스의 대형브로마이드에 화형식을 하는 팬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1년전 프레월드컵에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던 델 피에로는 없었습니다.

 

4년전 바지오에게 가해졌던 전이탈리아의 분노와 비난은 델피에로로 주인공을 바꾸어 똑같이 가해졌습니다.

 

월드컵의 상처가 아물고 98/99시즌이 시작했으나 상황은 바뀌지않았습니다.

 

많은 미디어들은 생드니의 영웅 지단만을 떠받들었고

 

여전히 폼을 회복하지못한채 시즌초반 골소식을 안겨주지못하던 델 피에로에게는 비난만이 가해졌습니다.

 

알렉스는 '조금씩 컨디션을 찾고있습니다. 시간이흐르면 다시 제 모습을 찾아 비난을 잠재울수있을거라 믿습니다'

 

라는 인터뷰를 남기며 성숙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리고 10월 중순이 지나고 델 피에로는 약속대로 폼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비첸자, 인터밀란과의 2연전에서 연속골을 기록

 

지겨운 무득점행진을 끝내며 비난여론을 잠시 잠재운것이죠.

 

더구나 인터밀란전은 본인의 유벤투스에서 200번째 경기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많은 동료선수들이 델 피에로의 부활을 반겼고

 

아넬리회장은 게임이 끝난후 따로 알렉스를 챙기며 에이스에대한 여전한 믿음을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분위기 반등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델 피에로 본인이나 유벤투스와 관련된 모든인사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서포터들에게 최악으로 기억될 날이 찾아옵니다.

 

 


본인의 23번째 생일을 하루앞둔 11월 8일 우디네세전.

 

달콤한 생일파티와 세레머니, 게임후의 와인한잔 따위는 없었습니다.

 

델 피에로는 상대수비수 잔키의 태클에의해 최악의 무릎부상을 당하며 경기중 그대로 실려나가버렸습니다.

 

(* 알렉스는 "부상을 당하고 실려나가는동안 심각하다는걸 직감했죠. 태어나서 처음느껴보는 고통이었습니다" 라고 회고)

 

 


그의 예감처럼 이 부상은 심각했고, 결국 델 피에로는 시즌아웃통보를 받고 이후 무려 1년여간 그라운드와 멀어지게 됩니다.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후 첫 시련이었습니다.

 

생드니의 영웅 지네딘 지단이 있었다고는해도 유벤투스의 에이스는 명실상부한 델 피에로였고

 

그의 공백속에 유벤투스는 리그에서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부진을 더욱 부채질한 사람이 바로 즈데넥 제만 당시 로마감독 (=현 페스카라 감독) 입니다.

 

 

 

후반기가 막 시작된 1월.

 

이 체코출신의 로마감독은 L'Espreso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축구는 선수들의 약물복용이 제어가 되지않고있다. 규제가 필요하다" 는 폭탄발언을 날립니다.

 

덧붙여서 유벤투스 구단을 따로 언급한후

 

플라티니, 데샹, 지단, 델 피에로, 인자기 등등 많은 스타선수들의 이름을 언급하기에 이릅니다.

 

이 스캔들의 여파는 컸습니다.

 

모든 언론들이 유벤투스의 약물복용스캔들을 보도하였고

 

당시 토리노 시장이었던 라파엘레의 주도하에 대대적인 조사가 들어가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스캔들의 핵심내용은 간단합니다.

 

당시 팀닥터였던 아그리콜라가 금지약물인 EPO를 선수들에게 투여하였다는것이죠.

 

90년대 중후반 유벤투스의 위대한 성적은 모두 약물덕분이라고 제만은 주장하였습니다.

 

모든 유벤투스 인사들이 분노한건 당연한 노릇이죠.

 

결국 유벤투스 선수들은 시즌내내 언론에 대고 '무죄'를 설명해야했으며 가는곳마다 이 질문을 피할수없었습니다.

 

 


팀의 중심인 지네딘 지단은

 

"종합 비타민제를 먹었을뿐이다. 그걸 도핑이라고 한다면 그저 우리의 결과를 시기하기위한 속좁은행동" 이라했고

 

감독인 리피역시 "누군가 한번이라도 우리가 단체로 약을 먹는걸 목격했다면 당당히 말해보라. 말할수없을걸? 그런적이없으니까"

 

라고 제만의 말을받아쳤습니다.

 

 

이에대해 제만은

 

"목격자가 없는게 당연하지. 다들 집에갈때 팀닥터에게 약을받고, 모든 약물투여는 선수개개인 집에서 이루어지니까" 라고 주장합니다.

 

 

아넬리 회장은 유벤투스를 향한 공격에 대해

 

"이 나라는 정상에 있는 누군가를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싶어서 안달이난것같다" 라며 분개했습니다.

 

장기부상으로 치료중이던 델피에로 역시 언론들로 부터 집요한 질문공세와 인터뷰요청을 받았고

 

안그래도 힘든 시련속에서 이중고에 시달리게되었습니다.


 

"당신의 마술같은 플레이는 약물에 의한것이었습니까?"

 

"표정이 안좋은데 혹시 지금 어지럽다거나 구토증세가 있거나 한건 아닙니까?"

 

델 피에로는 그대로 인터뷰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길고긴 재판은 유죄,무죄 판결을 반복하였으며

 끝내 유벤투스 구단측이 무죄판결을 받자 제만은 "뿌리부터 썪어버린 축구계"라며 비난을 가합니다)

 

(* 이 스캔들의 여파는커져 다른팀에게도 번졌고,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까지 개입됐습니다.

이에 밀라노의 슈퍼스타들인 호나우두, 말디니 등도 결백을 위한 증언을 위해 나서야했습니다.)

 

(* 알렉스가 현재 그의 와이프인 소니아와 동거를 시작한것도 내적,외적으로 아주 힘든시기였던 바로 이때입니다.)

 


팀외부에서는 스캔들, 팀내에서는 에이스의 시즌아웃

 

유벤투스의 98/99시즌은 정상적으로 돌아갈수가없었습니다.

 

리그에서 유례를 찾기힘들정도의 부진을 보이던 와중에서도 비안코네리들은 단결해서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라가지만

 

No.10의 부재속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 제물이 되고맙니다.

 

많은 기대속에 합류한 프랑스의 기대주 앙리 역시 델피에로의 빈자리를 전혀 매꿔주지 못했고

 

아무도 팀의 추락을 막지못했습니다.

 

(* 이때 유벤투스는 리그6위에 그친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따낸 플라티니시절과 비교하며 챔피언스리그에대한 의지를 불태웠으나 영광은 재현되지않았습니다.)

 

 

 

그러는와중 팀에 3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의 영광을 안겨주었던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중도해임되기에 이르며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해옵니다.

 

이 시즌 유벤투스의 리그성적은 6위입니다.

 

(* 90/91 시즌 7위이후 최악의 성적이며 유벤투스가 5위밖으로 밀려난건 최근 40년동안 이번이 4번째였습니다.)

 

 


힘들었던 시즌을 뒤로하고 다가온 99/00시즌은 유벤투스에게 매우 중요한 시즌이었습니다.

 

AC밀란에 빼앗긴 스쿠뎃토를 탈환하여 무너진 클럽의 명성을 재건하는걸 제1목표로 내걸었고

 

이에따라 선수단에도 많은 변화가있었습니다.

 

팀의 기둥이었던 데샹이 떠나고 본격적으로 라커룸은 콘테의 체제가 되었으며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였던 유망주들인 앙리와 페로타, 팀의 수문장인 페루찌 역시 팀을 떠나게되었습니다.

 

(* 이와중에 델 피에로의 절친한 룸메이트였던 디 리비오역시 팀을떠났고, 델 피에로는 타키나르디를 새로운 룸메이트로 맞이합니다.)

 

이적생들의 빈자리는 코바세비치, 반데사르, 올리세, 잠브로타 등의 가세로 매워졌고

 

무엇보다 큰 전력이 가세하니 바로 9개월간 전선을 이탈해있던 No.10 델피에로의 복귀소식이었습니다.

 

(* 이때 반데사르의 영입은 유벤투스 100년역사상 첫 외국인골키퍼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1년여만의 복귀를 앞둔 델 피에로에게 거는 유벤투스의 기대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루치아노 모지 단장은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앞두고 연봉 500만달러에 이르는 5년짜리 재계약을 알렉스에게 선물해주었고

 

이 새로운 계약은 그를 세계최고연봉 선수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탈리아와 유벤투스 최고의 인기스타 였던 델 피에로는

 

각종 초상권까지 포함해 그시즌 축구선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버는 남자가되었습니다.

 


 

감독인 안첼로티 역시

 

"유벤투스 부활의 키는 델 피에로. 그는 내가 주문하는 모든것을 완벽하게 플레이로 보여줄수있습니다"

 

라며 돌아올 에이스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팀의 레전드인 플라티니역시

 

"델피에로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만하면 아무것도 문제될게없다. 지난시즌은 그저 악몽일뿐" 이라 평하며

 

자신을 항상 아이돌로 꼽아주던 비안코네리의 후계자 알렉스의 복귀를 기다렸습니다.

 

 


중간중간 해프닝도 많았습니다.

 

8월 비공식경기에 델 피에로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언론사 및 수많은 팬들이 몰려 그에게 관심을 쏟는가 하면

 

그후 알렉스가 고열을 앓고있어 개막전에 출장하기 힘들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개막전티켓이 겨우 6천장밖에 팔리지않으며 관심밖이 되는 초유의사태도 벌어집니다.

 

그정도로 그는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관심이 맞춰지고, 모두가 일희일비 하는 가운데

 

그라운드의 화가 핀투리키오는 그렇게 280여일만에 그라운드로 복귀했습니다.

 

(* 그의 복귀전 코멘트는 "열병도 나의 복귀의지를 막을순 없습니다" 였습니다)

 

 


돌아온 그의 경기력은 여전했습니다.

 

스피드가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긴했지만 타고난 감각은 사라지질 않았죠.

 

파트너인 인자기에게 여러차례 마법같은 패스들을 보여주었고

 

그 시즌 그는 14개의 어시스트로 세리에A 어시스트 수위랭킹에 오릅니다.

 

무릎부상에서도 완벽히 회복해 무려 34경기에나 출장하며 팀의 리그1위 질주에 큰 공을 세웁니다.

 

비록 마지막라운드 비오는 레나토큐리에서 페루지아에게 승리를따내는데 실패하며 라치오에게 역전우승을 헌납하고말았으나

 

이탈리아의 왕자 유벤투스는 분명히 지난시즌 최악의 모습에서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델 피에로의 복귀시즌 스탯은 34경기 9골 14어시스트 입니다.

 

경기력도 좋았고, 나쁜 성적이라고 할순없으나

 

스탯을 천천히 뜯어보면 필드골이 겨우 1골밖에 없다는점이 지적되지 않을수없었습니다.


(* 델피에로 200골 스페셜을 보다보면 중간에 Pk와 프리킥득점만 계속 나오는 때가있는데 그때가 바로 이시기입니다)

 

 


월드컵 이후 델피에로를 비난하기바빴던 미디어들은

 

유벤투스가 끝내 스쿠뎃토탈환에 실패하고 코파 이탈리아 4강, UEFA컵 8강에 그치며 2년연속 무관을 기록하자 이번에도 그를 타겟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복귀를 언제 반겼냐는듯이 '수비하는 판타지스타' 라며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감독이던 안첼로티는 '델 피에로를 골로 평가하는건 어리석은일' 이라고 비난을 일축했으나

 

미디어는 그저 시끄러울뿐이었습니다.

 

델피에로는 시즌내내 "인내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내가 다시 골을 기록할수있다면 미디어는 잠잠해질것입니다"

 

라며 스스로에게 인내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후 다시한번 아주리의 계절이 돌아옵니다.

 

 

 

 

 

운명의 유로2000.

 

당시 대표팀 감독이던 디노조프는 초반부진에서 팀을 끌어올려 끝내 유로2000 본선진출에 성공한후

 

장기부상에서 돌아오며 부활한 델 피에로를 유로에 데려가기로 결정합니다.

 

아주리는 비에리의 부상으로인한 불참등으로 공격진에 누수가 심한상황이었고

 

이에 디노조프는 결국 미디어가 찬,반여론으로 나뉜사이 과감한 결단으로 델 피에로를 선택한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유로2000에서 델 피에로의 선발출장은 힘든일이었습니다.

 

No.10인 그가 부상으로 장기간이탈한 사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게 따낸 티켓이었고

 

그의 스타트위치는 벤치에서의 조커가될수밖에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과 매스컴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있었습니다.

 

시즌내내 델 피에로가 골이없다며 비난하던 미디어는 언제그랬냐는듯

 

그를 선발출장시키지않는 조프에게 비난을 가했습니다.

 

(* 델피에로의 자리는 로마의 신성으로 떠오른 토티가 차지했었습니다.

아주리 전체가 졸전을 펼치던 코펜하겐에서의 홀로빛난활약과 리그에서의 좋은모습으로 주전자리를 꿰찬것이죠.

푸른 유니폼을 다시 입기를 소망하던 바지오도 그에게 밀렸습니다. 언젠가의 알렉스가 그랬듯이 화려한 신성의 출현이었습니다)


(* 그럼에도 대표팀의 No.10은 돌아온 델피에로의 몫이었습니다. 이대회가 델피에로의 마지막 아주리 No.10 셔츠입니다)

 

 

 

 

조별리그 1,2차전에서 인자기, 토티가 충분히 제몫을해주며 델 피에로는 교체출전의 기회만 부여받은채 시간이 흐른 3차전.

 

스웨덴전에서 델 피에로는 드디어 선발멤버로 유로2000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전히 우아한 드리블과 아름다운 플레이. 유벤투스에서의 그것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던 델 피에로는

 

그렇게도 목마르게 기다리던 델피에로존에서의 골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을 파죽의 3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 이 골이 알렉스의 커리어통산 유일한 유로 본선 득점입니다.)

 

 

 

얼마만의 필드골인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그가 델피에로존에서 골을 넣으며 부활한것이 가지는 의의는 컸습니다.

 

디노조프 감독은 경기후 "우리팀 최고의 선수는 델 피에로" 라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멘트는 그저 립서비스였을까요

 

8강전에서 다시 델 피에로는 벤치멤버로 대기하게됩니다.

 

팀의 승리가 결정된 후반에야 30분 토티와의 교체로 그라운드에 투입되었을뿐 팀의 주역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미디어는 이번엔 디노조프를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디노조프는 스웨덴과의 경기때 벤치에서 자고있었나?"

 

(* 조프는 사령탑 취임후 초반 부진때문에 계속해서 미디어의 압박에 시달렸고, 이는 좋은 결과를 보여주던 본선대회기간내내 마찬가지였습니다.)

 

(* 대회가 끝난후에는 총리인 베를루스코니에게 "왜 지단에게 마크맨을 붙이지않았나" 라는 비난까지 받게되자 모욕감을 느낀 그는 결국 아주리를 떠납니다)

 

(* 조프의 사임소동에 대해 델피에로는 "비난을 가한측도 너무앞서나갔고, 사임한 조프역시 너무 성급한결정이었다." 이라 코멘트)

 


이런 미디어의 압박때문이었을지 델 피에로의 상승세 때문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결국 아직도 화자되는 4강 네덜란드와의 명승부에 델 피에로는 토티를 제치고 선발로 출전합니다.

 

오렌지군단의 막강한화력속에 연이은 PK를 헌납하고, 퇴장자가 나오며 숫적열세에 몰리는 경기속에서도

 

전방의 델 피에로는 120분간 고군분투하며 아주리군단의 반격을 이끌었습니다.

 

이날의 히어로로 등극한 골키퍼 톨도의 활약으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끝에 이탈리아는 결승진출에 성공했고

 

리베라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하였습니다.

 

 

 

 

얄궂게도 상대는 2년전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패배를 안겼던 레블뢰군단 프랑스였습니다.

 

감독인 디노조프는 델 피에로,인자기 유벤투스의 골든듀오를 벤치에 앉힌채

 

로마의 델베키오, 토티를 앞세워 경기를 준비합니다.

 

선발명단을 본 미디어는 우려섞인 비난을 내놓았지만 감독의 이 판단은 틀리지않았습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압도하였고, 우려의 주인공 델 베키오는 깔끔한 선취골을 뽑아냈습니다.

 

그리고 리드를 잡은 흐름속에 델 피에로는 후반 10분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대회기간내내 좋은 폼을 보여주던 델 피에로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는 결정적인 두개의 찬스를 날려버렸고

 

설상가상 팀도 종료직전 동점골, 연장전에서의 골든골 허용으로 준우승에 그치고맙니다.

 

그를 찬양하며 선발출장을 요구하던 미디어와 여론은 변해버렸습니다.

 

모든 매스컴의 집중포화가 델 피에로에게 쏟아졌으며

 

알렉스는 '그래요 내탓입니다. 내가 우승트로피를 날려버렸어요. 죄송합니다' 말고 할수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2년전 월드컵에 이어 또다시 메이져대회 이후 모든 비난의 화살을 나홀로 맞게 된것이죠

 

종료직전 집중력을 잃고 윌토르를 놓쳤던 수비진

 

피레스를 막지못했던 칸나바로

 

지단 봉쇄에 실패한 암브로시니등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미디어의 먹잇감은 오로지 델 피에로였습니다.

 

이번 상황은 2년전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항상 자신을 지지해주던 팬들까지 일부 등을돌리며 말그대로 이탈리아의 유럽제패를 무산시킨 원흉의 취급을 받게됩니다.

 

또다시 브로마이드 화형식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모지, 플라티니, 시뇨리, 콘테, 칸나바로, 토티 등등 많은 인사들이 대신 그를 열심히 옹호해주던 가운데

 

시즌개막을 얼마앞둔 어느날, 오히려 친아버지같은 존재이던 아넬리 회장이 폭탄발언을 합니다.

 

"델 피에로는 그동안 유벤투스에서 너무 마마보이처럼 다뤄져왔다."

 

"특별한 선수란 없다.이젠 그도 다른선수들과 똑같은 1명의 선수로 대할것이다. 못하면 떠나게될것이다"

 

라는 코멘트를 남기며 비난여론에 기름을 부어버립니다.

 

(* 훗날 단장인 모지는 이 아넬리의 멘트를 패러디해 "델피에로는 단순한 1명의 선수가아니다. 그는 유벤투스의 특별한선수다" 라는 코멘트를남깁니다)

 

 

 

월드컵에서의 부진과 1년여의 전선이탈까지 합쳐진 이 2년이 델 피에로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을겁니다.

 

이대로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오나 싶던 순간이지만

 

델 피에로의 정신력은 정말 강했습니다.

 

유로의 실패를 뒤로하고 맞이한 00/01시즌.

 

98 월드컵으로 인해 비난에 적응이 된것이었을까요.

 

알렉스는 침착했습니다.

 

 

 

 

그를 물어뜯기위해 작은실수라도 놓치지않으려던 관중들과 모든 매스컴 앞에서의 개막전.

 

레체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묵묵히 시즌을 시작한 캡틴은

 

유벤투스를 곤경에빠트렸던 제만감독의 나폴리를 상대로도 결승골을 터트린후

 

"제만에대한 개인적 복수라던지 그런감정은없습니다. 결승골을 기록한게 기쁠뿐이죠. 골이 정말 필요했습니다"

 

라는 성숙한 코멘트로 비난여론을 다소 누그러뜨렸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후부터였습니다.

 

문제가 터져나온곳은 유럽무대입니다.

 

4연속 4강진출, 3연속 결승진출의 위업을 썼던 유럽의 왕자 유벤투스의 모습은 오간데없었고

 

계속된 졸전끝에 팀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조기탈락하는 충격을 맛보고맙니다.

 

알렉스가 가세한 93/94시즌이후 유벤투스는

 

UEFA컵 4강, 챔피언스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4강, UEFA컵 8강

 

으로 꾸준히 유럽최고의 성적을 내주던 팀이기에 충격의 여파는 더욱 컸습니다.

 

 

 

 

그에따른 비난은 두선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함부르크전에서 상대선수 요한 킨츠에게 박치기를 선물하며 출장정지를 받은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

 

그리고 조별리그 6경기에서 무득점을 기록한 주포 판타지스타 델 피에로 이 둘이 그 주인공입니다.

 

 

특히 델 피에로의 무득점에 대한 비난은 강도가 심했습니다.

 

전시즌의 필드골1골, 유로 결승전의 무득점에 챔피언스리그 무득점까지 겹치며

 

또다시 미디어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고말았습니다.

 

더구나 이시기 알렉스는 리그에서의 성적도 부진했습니다.

 

전반기에 그가 넣은 골이라고는 앞서말한 레체,나폴리전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델 피에로는 '골넣는 법을 잃어버린 선수'라는 비아냥을 또다시 들을수밖에없었습니다.

 

(* 항상 델피에로에게 우호적이었던 플라티니조차 이시기엔 델피에로의 책임론을 제기했고

알렉스는 이후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선수를 마라도나로 갈아타버립니다)

 

 

챔피언스리그 조기탈락이후 미디어들은 지네딘 지단과 델 피에로의 이적설을 보도하며 선수들을 흔들었고

 

엎친데 곂친격으로 델 피에로는 다시 무릎쪽에 부상이 재발하며 2달간 전선이탈이라는 아픔도 겪습니다.

 


그렇게 엉망이던 전반기가 지나가고 후반기가 찾아옵니다.

 

델 피에로는 복귀하자마자 나폴리를 상대로 바로 골사냥에 성공하며 마음을 가다듬었고

 

비난여론과 이적루머 속에서도 유벤투스에서 다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힙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델 피에로에게 또다시 슬픔이 찾아오고 맙니다.

 

불의의 부친상을 겪게 된것이죠.

 

항상 가족과 함께하던 델 피에로에겐 정말 큰 아픔이었고, 이에 미디어도 잠시 그에대한 비난을 멈춥니다.

 

그리고 부친상에 다녀온 델 피에로는 팀훈련도 참가하지못한상태에서

 

주말 바리와의 경기에 교체멤버로 포함되어 벤치에서 대기합니다.

 

 


시합은 시종일관 답답한경기속에 무승부로 끝나는분위기였고

 

언제나 그를 지지해왔던 많은 유벤투스팬들은 델피에로 투입의 콜을 보냅니다.

 

안첼로티가 이에 화답하여 후반36분 델 피에로를 교체투입시키며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고

 

많은 유벤티노들이 골든보이의 투입에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델 피에로 역시 팬들의 격려박수에 화답하는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언젠가의 모습처럼 PA 왼쪽지역을 개인돌파한 후 그대로 결승골을 뽑아낸것이죠.

 


 

97/98시즌 델피에로존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며 찬사를 받던 그모습 그대로의 골이었습니다.

 

델 피에로는 득점후 주먹을 불끈쥔후 하늘을 보고 포효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세레머니였죠.

 

모든 동료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환호했고 서포터들은 자리에 앉지못한채 계속해서 알렉스의 콜을 외쳤습니다.

 

이 바리전이후 모든상황이 바뀝니다.

 

(* 룸메이트인 타키나르디는 "델 피에로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가 우리를 우승으로 이끌거라 항상믿고있고, 지금은 확신으로 바뀌어가고있습니다"

라고 평하며 그에게 가해졌던 많은 비난여론에 일침을가했고

수뇌부인 베테가역시 "내가 그에게 항상 바라던 모습이 이런모습이다. 비통한 시기를 보낸후 그가보여준 모습은 모든사람들이 인정할수밖에없다고본다"

라며 부활한 에이스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 플라티니, 폰세카, 지단, 인자기, 토티, 네스타, 데샹등 많은 동료선수들이 알렉스를 지지해주었습니다)

 


No.10은 돌아왔습니다.

 

바리전이후 부활한 델 피에로는 팀의 리더로서 끝까지 팀을 우승경쟁으로 이끌었고

 

라치오, 로마, 인터밀란등 중요한 일전에서 계속해서 골을 기록합니다.

 

알렉스는 다시 유벤투스 플레이의 중심에 위치하게되었고, 유벤투스 역시 상승흐름을 이어갑니다.

 

이에 팬들은 다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고, 유벤투스는 마지막라운드까지 스쿠뎃토 경쟁을 펼칩니다.

 

비록 로마가 마지막에 승리하며 지난시즌에 이어 또다시 수도팀에게 스쿠뎃토를 내주게되었고

 

유벤투스는 2년연속 준우승, 3년연속 무관의 분루를 삼키게되었지만

 

이번만큼은 유벤투스와 델피에로를 비난하는 이들은 존재하지않았습니다.

 

부활한 델피에로는 아주리에서도 다시 중추적역할을 맡으며 02 WC예선 6경기에나와 4골을 넣는 좋은모습을 보여주며 아주리징크스도 깨트리고있었습니다.


(* 이 시즌 5월6일 유벤투스 홈에서 펼쳐진 시즌막바지 격돌은 스쿠뎃토의 향방을 놓고 매스컴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으며

63,548명 입장으로 유벤투스 역대최다관중동원 5위로 기록되어있습니다. )


(* 본인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날 바리전만큼 악에차서 경기한적은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 리그 25경기 출장 9득점으로 마무리)

 

 

97/98 챔피언스리그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후

 

드디어 모든 비난여론이 잠잠해졌습니다.

 

알렉스는 이제 다시 사랑받는 선수의 위치로 돌아왔습니다.

 


유로2000과 00/01 스쿠뎃토로 이탈리아의 새로운 아이돌로 자리매김한 토티가 세리에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을 연패하고

 

역시나 유로2000의 위너인 지단이 세리에A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하는 와중에서도

 

팬들을 부활한 델 피에로를 열렬히 지지해주었습니다.

 

그런 팬들의 사랑에 힘입어 델 피에로는 오스카 델 칼치오에서 초대 인기선수상을 수상합니다.

 

98월드컵이후 기나긴 터널에서 그가 손에든 첫번째 트로피는 이렇게 팬들이 선물한것이었습니다.

 

델 피에로는 수상인터뷰에서 다음시즌 스쿠뎃토를 약속합니다.

 

(* 인기선수상은 00/01에 처음 신설되었습니다. 알렉스에게 트로피를 주기위해 만든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고하네요)


(* 이때 00/01 토티 vs 지단은 한창때의 97/98 델피에로 vs 호나우두를 방불케했습니다.

후자의 둘이 프레월드컵부터 엮일수밖에없었다면 전자의 둘은 99/00 토티의 급부상과 유로2000의 드라마로인해 시즌내내 비교대상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점은 이탈리아 선수인 델피에로, 토티는 팀을 우승으로이끌고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을 받지만

결국 두 외국인이 팀의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그시즌 MVP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델피에로vs호나우두가 97/98 한시즌이 끝이었듯이 토티 vs 지단역시 지단의 이적으로 한시즌만에 끝나고맙니다.

그리고 97/98, 00/01 유벤투스의 최다관중동원경기가 해당선수 상대팀인 인터밀란,로마 였다는것 역시 주목할 부분입니다.)

 

 

 

나름대로 비교적 좋은 마무리라 할수있었지만

 

2년연속 준우승, 3년째 계속된 무관, 그리고 유럽에서의 몰락은 최소 유벤투스의 보드진에게 만큼은 인내심의 한계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에 수뇌부들은 선수단의 많은 신뢰를 받고있던 안첼로티를 해임시키고

 

영광의 이름인 마르셀로 리피를 다시 감독으로 부임시키는 초강수를 두었고

 

이에따라 또다시 스쿼드개편을 단행합니다.

 

 

 

변화의 물결속에 팀의 간판스타였던 지단, 인자기를 떠나보내는 파격적인 선택을 보여주었고

 

반데사르, 파라마티, 코바세비치, 아디르손, 오닐 등등 많은선수들이 그 뒤를따라 팀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네드베드, 튀랑, 부폰, 살라스 와 같은 새로운 이름들을 유벤투스에 합류시키며

 

델피에로가 수상소감에서 밝혔듯 새로운 01/02시즌 지상목표인 스쿠뎃토 탈환을 위해 달려나갑니다.

 

 

 

199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부상과 그에따른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시작되어

 

9개월간의 장기부상, 약물파동, 복귀후 필드골 기록실패, 유로2000에서의 부진, 챔피언스리그 조기탈락의 비난

 

이 모든 일들을 가져왔던 델 피에로의 선수생활 첫 암흑기는

 

2001년 2월 18일. 바리전에서의 마법으로 그렇게 3년만에 끝나게 됩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 모든걸 딛고 일어나

 

그 다음 01/02시즌부터 완벽한 판타지스타의 모습을 보이며 스코어러로 거듭난 그의 정신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 이런 델 피에로의 훌륭한 정신력은 훗날 가투소가 정확히 표현해줍니다.

알렉스는 카펠로 부임후 벤치멤버전락과 칼치오폴리스캔들 등으로 인해 다시한번 시련을 겪는시기가 오게 됩니다.

그시기마저 이겨낸 델피에로를 가리켜 가투소는 "절대죽지않는인간" 이라는 코멘트를 남깁니다.)


이 암흑기 델피에로의 커리어는 빛나던 첫번째 전성기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없습니다.

 

팀 트로피 : X

 

이탈리아 세리에A 올해의 인기선수상 1회 수상

 

리그     67경기 20득점

 

유럽무대 16경기 1득점

 

국가대표 20경기 8득점

추천해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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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ty Lv.21 / 5,096p
댓글 2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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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다시 읽어도 너무 재밌고 유익한 글 입니다.
읽으면서 글에 언급되는 한경기, 한경기를 다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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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으 울산 vs 시드니 2년후를 기도해요 우리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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