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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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6일 23시 38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1974 년 11월 9일 이탈리아 코넬리아노에서 태어났습니다.

 

전기공이었던 아버지 지노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브루나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스는

 

대부분의 이탈리아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어릴적부터 축구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절친했던 3명의 꼬마친구들과 항상 공을 차고놀았으며

 

7살때부터 AC 산 베데미아노의 유소년팀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어린시절 그는 몸이약해 부모님에게 골키퍼를 할 경우에만 축구를 하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것도 감기에 잘걸리는 체질때문에 항상 머플러를 한 채로 말이죠.

 

경기가 있을때면 항상 그의 어머니가 창가에서 그가 골키퍼로 뛰고있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필드플레이어로 바꾸어준건 친형 스테파노입니다.

 

그는 델 피에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어머니를 설득, 델 피에로가 공격수로 뛸수있게 만들어줍니다.

 

"어머니, 델 피에로가 얼마나 공격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공격을 잘하는지 모르세요?"


(* 지금 스테파노는 델 피에로의 에이전트입니다.)

 

 


그후 13살이 되던 해.

 

델 피에로는 고향을떠나 당시 세리에B 소속이던 파도바의 16세이하 프리마베라 팀으로 들어가게됩니다.

 

16세팀을 졸업한후 그를 기다리던건 그상위레벨인 20세이하 프리마베라같은 무대가 아니었습니다.

 

이 재능있는 선수는 16살이던 91/92시즌 파도바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4경기에 출장

 

어린나이에 이탈리아무대에 이름을 내밉니다.

 

그리고 17살이되던 92/93시즌 10경기 출장, 1득점이라는 눈에띄지않는 기록으로도 U19 아주리니에 불려가는 쾌거를 이룹니다.


(* 이당시 U19 아주리니 최다득점자는 델 피에로의 이름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 프리마 당시의 재미있는 일화로는 당시 아탈란타 프리마베라소속이던 타키나르디와의 일화가있습니다.
시합내내 델 피에로에게 농락을 당하던 타키나르디는 경기가 끝난후 분을못참고 그를 한대 쳐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서로 플라티니를 우상으로 여기고있고, 둘다 농구를 좋아한다는걸 알게되면서 감정을 풀고 친해졌다고 하죠.
그후 한시즌간격으로 둘 모두 유벤투스로 이적하게되어 훗날엔 룸메이트로 지내게됩니다. )

 

 


그런 델 피에로를 A무대의 빅팀들이 눈여겨 보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플라티니를 앞세워 유럽의 패자로 등극했던 이탈리아 최다우승팀 유벤투스

 

리그 2연패를 기록하고 전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등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AC밀란

 

이 두팀이 델 피에로 영입에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파도바측은 델피에로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어린 델 피에로는 주저없이 유벤투스를 선택했습니다.

 

왜냐구요? 몇년째 그의 방에 플라티니의 브로마이드가 걸려있었기때문이죠.

 

그가 델 피에로의 아이돌이었습니다.

 


(* 훗날 플라티니가 델 피에로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한뒤
이에 분노한 알렉스가 집에 오자마자 그의 브로마이드를 찢어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후 알렉스는 인터뷰기회가있을때마다 '마라도나'를 최고의 선수로 꼽습니다)

 

 

 

그렇게 델 피에로는 93/94시즌을 앞두고 18살의 나이에 이탈리아 최다우승클럽이자 UEFA컵 디펜딩챔피언인 유벤투스에 합류합니다.

 

당시 유벤투스는 이탈리아의 No.10 로베르토 바지오를 필두로 비알리, 라바넬리등 초호화 공격진을 자랑하고있었고

 

당연히 어린 델 피에로는 이적후 20세이하 프리마베라팀으로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프리마베라 레벨에서 뛰기엔 이미 완성된 기량이었던 델 피에로는

 

결국 당시 감독이던 트라파토니의 눈에띄어 1군훈련에 합류하게됩니다.

 


(* 팀동료였던 디리비오는 "프리메베라에있기엔 너무 비범한 재능이었죠. 그를 보고 감독이 바로 1군으로 콜업시켰습니다" 라고 회고)

 

(* 델피에로의 프리마베라 기록은 2경기 1골이 전부입니다. 초고속 졸업이었죠.

그시즌 유벤투스 프리마베라는 리그우승, 비아레지오컵 우승으로 더블을 차지했습니다.)

 

 

 

9월 12일 포지아전.

 

벤치멤버로 경기에 참가하게된 델 피에로는

 

은빛늑대 라바넬리와의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으며 유벤투스에서의 데뷔를 하게됩니다. A무대 데뷔전이기도했죠.

 

데뷔전을 치른 델 피에로에겐 거칠게없었습니다.

 

바로 다음경기였던 레지나전.

 

역시나 라바넬리의 교체로 투입된 알렉스는 팀의 두번째골을 넣으며 데뷔골을 기록, 팀의 승리에 일조합니다.

 

빠른 데뷔전과 데뷔골.

 

모든게 승승장구일것만같았지만 A무대와 유벤투스라는 빅클럽은 그리 쉬운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에이스인 바지오가 버티고있는한 A팀 주말경기에서 출전기회를 잡기란 너무 버거운일이었죠.

 

어린 델피에로는 1군에 이탈자가 있을경우에만 A팀 출장명단에 포함될수있었습니다.

 

 

 

 

그렇게 1군과 프리마베라를 오가며 데뷔골을 넣은것에 만족한채 끝나나싶던 데뷔시즌

 

델 피에로에게 한번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운명의 3월 20일


No.10 바지오의 전선이탈등으로인해 파르마와의 홈경기에 깜짝 선발출장하게 된것이죠.

 

결과는?

 

어린 델 피에로의 해트트릭으로 유벤투스가 4:0완승을 거두었고

 

다음날 모든 일간지의 헤드라이트는 델 피에로의 이름으로 도배가 됩니다.

 

파르마전 1경기를 통해 혜성같이 떠오른 델 피에로는 18살의 나이에 U-21 아주리니에 콜업되는 쾌거를 거두었고

 

Under 21 유로챔피언쉽에서 아주리니의 U-21대회 2연패를 이끕니다

 

(* 델 피에로의 U21 아주리니 기록은 11경기출장 3득점입니다)

 

 

 

그렇게 운명적이었던 첫시즌을 11경기출장 5득점이라는 훌륭한 성적표로 마치고 난 후

 

94/95시즌이 시작된 유벤투스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난시즌의 실패로 10년째 스쿠뎃토탈환에 실패한 유벤투스는 대대적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보드진에 새로운이름인 모지, 지라우도, 베테가 훗날 유벤투스 3총사로 불리우게되는 이들이 들어왔고

 

기존감독이던 명장 트라파토니까지 내칩니다.

 

그리고 델 피에로의 가장 큰 은사라 할수있는 마르셀로 리피가 감독으로 부임해옵니다.

 

 

 

리피 부임당시 알렉스는 임대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해트트릭을 허용한 당사자인 파르마가 델피에로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임대를 요청했고

 

유벤투스도 비알리,바지오등 쟁쟁한 공격수들과의 경쟁보다는 꾸준한출장기회 보장을 위해 임대에 긍정적인 싸인을 보낸것이죠.

 

그러나 그의 재능을 높게평가한 리피는 델 피에로의 딜을 스톱시킨후 팀내에 잔류시켰고

 

새감독 리피 아래에서 델 피에로는 본격적인 주전멤버로 발돋움합니다.

 

에이스인 바지오가 월드컵후유증 및 3개월 장기부상등으로 시즌내내 주춤하면서 출장기회가 많이 돌아오게 된것이었죠.

 

 

 


그리고 전반기가 끝나가던 12월 4일

 

바지오의 이적으로 인해 당시 서포터간 라이벌감정이 극에 달에있던 피오렌티나와의 일전

 

2:0 으로 뒤지던 경기를 비알리의 2골로 2:2까지 따라잡은후 종료가 얼마남지 않은시간

 

델피에로는 다시한번 비안코네리의 영웅이 됩니다.

 

하프라인에서 날아온 롱패스를 지체없이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기록

 

팀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이끈것이죠.

 

(* 델 피에로 본인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득점으로 꼽는 장면입니다)

 

 

 


상승흐름을 탄 델 피에로는 꾸준히 좋은활약을 보이며 골사냥을 계속했고

 

1995년 3월 25일. 에스토니아전에서 드디어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데뷔전을 치릅니다.

 

라이벌전에서 짜릿한 3:2역전승을 거둔 유벤투스 역시 거칠게 없었습니다.

 

후반기 파죽지세로 리그와 유럽무대에서 계속된 순항을 이어갔고

 

4연패를 노리던 라이벌 AC밀란, 신흥강호로 떠오른 라치오를 제치고

 

결국 85/86시즌 플라티니가 유럽을 제패했던 그시절 이후 무려 11년만에 스쿠뎃토를 탈환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홈&어웨이로 치뤄진 UEFA컵 결승에서 비록 파르마에 밀려 아쉬운 준우승에 그치긴했지만

 

코파이탈리아 트로피를 따내며 더블을 기록합니다.

 

(* 델 피에로는 리그 29경기 8득점 / UEFA컵 11경기 1득점 / 코파 이탈리아 10경기 1득점을 기록합니다)

 

 

 


클럽의 숙원을 달성한 유벤투스는 95/96시즌을 앞두고 과감한 결단을 합니다.

 

지난시즌 겨우 17경기 출장에 그친 비운의 히어로, 로베르토 바지오를 버리고

 

혜성같이 떠오른 델 피에로를 팀의 새로운 No.10으로 결정한것이죠.

 

보니페르티 - 플라티니 - 바지오의 뒤를 이을 유벤투스의 판타지스타는 델 피에로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선택은 옳았습니다.

 

이탈리아 슈퍼컵 타이틀을 토리노로 가져오는데 성공하며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했고

 

접전끝에 리그에선 아쉬운 2위에 그쳤지만

 

라바넬리, 비알리, 델 피에로라는 이탈리안 삼각편대를 앞세운 화력쇼로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하자마자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역시나 핵심은 새로운 No.10 델 피에로 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무려 5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6골로 공동득점왕을 차지

 

전 유럽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모든 유럽의 언론들은 델 피에로를 찬양했습니다.

 

"바지오는 유벤투스를 떠나지않았는가. 어째서 아직도 유벤투스에 그가보이는가"

 

"이탈리아 축구의 10년을 책임질 페노메노의 탄생"


아넬리 회장이 델 피에로의 우아한플레이를 가르켜 핀투리키오라는 별명을 붙여준 시즌역시 이 시즌입니다.

 

아넬리가 페루자출신의 화가인 스승 페루지노와 핀투리키오를 바지오와 알렉스에게 빗대어 표현한것이 유례였습니다.


(* 델 피에로는 리그 29경기 6득점, 챔피언스리그 10경기 6득점, 코파 이탈리아 2경기 1득점을 기록합니다)

 

 


이 95/96시즌의 맹활약으로 델 피에로는 이탈리아 유로96 대표팀에 합류하며 첫 메이저대회를 경험합니다.

 

비록 아주리는 조기탈락으로 씁쓸한귀국길에 올랐고, 알렉스도 러시아전 전반45분출장에 그쳤을뿐이었지만

 

처음으로 메이저대회를 경험한 델 피에로에겐 참가자체가 소중한 경험이되었습니다.

 

그리고 델피에로는 96년 European Under23 Footballer of the year 상을 수상합니다.

 

이 모든일들과함께 시즌이 끝났을때 그의 나이는 불과 21세였습니다.

 

 


이어진 96/97 시즌 역시 유벤투스와 델 피에로는 거칠게 없었습니다.

 

유럽 슈퍼컵 트로피획득으로 시즌을 시작하며 전시즌의 좋은모습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습니다.

 

델 피에로 본인은 부상으로 이탈한 기간이 제법 있었던 시즌이지만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 등의 가세로 더욱 전력이 보강된 유벤투스는

 

리그에서 라이벌 AC밀란에 뺏긴 스쿠뎃토를 다시 찾아왔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2연속 결승진출에 성공, 도르트문트와 결승전을 치루게됩니다.

 

킥오프전 예상과달리 2:0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어지던 후반 20분,알렉스는 그림같은 힐킥으로 만회골을 기록하며 2:1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유벤투스는 라스리켄에게 원더골을허용하며 3:1로 무너졌지만 델 피에로만은 비판에서 자유로울수있었습니다.

 

결국 유벤투스는 리그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표로 시즌을 마칩니다.

 

(*델 피에로는 리그 22경기 8득점, 챔피언스리그 6경기 4득점, 코파 이탈리아 4경기 무득점을 기록합니다)

 

 

 


이시즌 델 피에로가 유럽을 넘어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된 2장면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96 도요다컵 (인터콘티넨탈컵 = 현 클럽월드컵)

 

남미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히던 신예 오르테가가 버티고있던 남미 최강 리베르 플라테를 상대로 한 단판승부에서

 

알렉스는 후반 막판 결승골을 넣으며 팀에게 또다시 트로피를 선물했고, 당연히 대회 MVP는 델 피에로 였습니다.

 

(* 남미선수들중 알레를 동경한다는 선수들은 대부분 이때의 도요다컵 이야기를 빼놓지않고 회고합니다.)

 

(* 방일당시 좋은 인터뷰매너와 팬서비스로 일본에 아주 많은 팬들을 생성하고 돌아왔다는 일화가있습니다.)

 

 

 

두번째는 시즌 종료후 열린 프레월드컵입니다.

 

유로96 실패이후 세대교체를 진행중이던 아주리는

 

98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자신들의 전력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를 맞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신예수비수이던 네스타,칸나바로의 중원라인은 너무도 허술했고

 

아주리는 조별리그에서 무려 7실점을 기록했습니다.

 

말디니가 결장한 1차전은 잉글랜드를 상대로 이렇다할 반격도 해보지못한채 2:0으로 완패하고말았습니다.

 

 

 

그리고 2차전이었던 브라질전.

 

94월드컵 파이널팀인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대결은 전세계적인 주목을 끌었고

 

델 피에로는 이 월드더비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3:3 무승부를 이끕니다

 

이어진 프랑스와의 3차전 역시 득점을 기록하며 2:2 무승부를 이끈 후 대회를 끝마칩니다.

 

유로96에 이어 또다시 국가대표팀의 참혹한성적표는 이탈리아 국민들을 실망시켰지만

 

델 피에로만은 전 이탈리아의 희망으로 찬사를받았습니다.

 

대회기간내내 좋은모습을 보여준 알베르티니와 함께말이죠.


(* 첫 프레월드컵의 전세계적 열기는 엄청났습니다. 이런규모의 국가대항대회가 처음이었기때문이죠.

당시 해외축구볼모지인 우리나라도 중계가됐을정도. 그유명한 카를로스의 UFO슛이 나온것도 이 대회입니다.)

 

(* 프레월드컵 브라질전 이후 마라도나가 델 피에로를 극찬했으며 그후 지금까지도 마라도나는 항상 델 피에로에게 우호적인 인사입니다.)

 

 

그리고 운명의 97/98시즌이 다가왔습니다.

 

이탈리아 슈퍼컵 타이틀을 획득하며 프레월드컵의 아픔을 달랜 델 피에로.

 

이미 이탈리아와 유럽을 넘어 전세계적인 스타반열에 올라있던 델 피에로에게 최고의 라이벌이 등장합니다.

 

유벤투스와 AC밀란의 양강체제를 깨기위해 절치부심하던 인터밀란이

 

세계최고의재능으로 평가받던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야심차게 영입한것이죠.

 

프레월드컵의 명승부가 세리에A무대에서 그대로 이어지게되었고

 

모든 언론들은 델 피에로 vs 호나우두에 포커스를 맞추기 바빴습니다.

 

 

 

결과는?

 

보통 많이들 말하기로는 무승부입니다.

 

 


우선 리그를 돌아보면 1차전 인터밀란 홈경기에선 인터밀란이 1:0으로 승리하며 기선을 제압했으나

 

우승레이스의 분수령이었던 후반기 2차전에선 델 피에로의 결승골로 유벤투스가 1:0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결국 리그우승타이틀은 이번에도 유벤투스의 품으로 돌아갔고, 인터밀란은 2위에 그치고말았습니다.

 

(* PA 왼쪽모서리지역이 델피에로존으로 불리던것도 이시기 입니다)

 

(* 어느정도로 두팀의 격돌에 관심이 컸냐면 유벤투스 역대 최다관중동원 3위경기가 64,001명이 입장한 이 인테르와의 2차전 홈경기입니다.)

 


이시즌 데뷔후 유일하게 부상없이 시즌을 치룬 델 피에로는 덕분에 쾌조의 컨디션을 유지할수있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10경기 10골로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활약속에 팀을 결승으로 이끕니다.

 

아쉽게 결승에서 레알마드리드의 미야토비치에게 일격을 허용하며 무너지고말았지만

 

델 피에로가 이에로에게 부상을 당하지않았더라면 분명 그 시즌 챔피언스리그의 주인은 유벤투스가 될 수 있었을것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한명인 호나우두 역시 UEFA컵에서 맹활약하며 팀에게 UEFA컵 우승트로피를 선물해주었습니다.

 

 


이시즌 둘의 개인성적은 델피에로 46게임 32득점 / 호나우두 47게임 34득점 으로 완연한 호각입니다.

 

팀성적은 유벤투스 리그우승, 챔피언스리그준우승 / 인터밀란 리그2위, UEFA컵 우승 으로 유벤투스가 더 좋은결과를 손에쥐었습니다.

 

개인수상은 호나우두의 승리입니다.

 

델 피에로가 세리에A 올해의 이탈리아선수상을 수상했고

 

호나우두는 세리에A 올해의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하며 상을 나눠가졌지만

 

두 수상자중에 뽑는 시즌MVP 타이틀은 이적첫시즌에 아주 큰 임팩트를 남긴 호나우두가 가져갔습니다.

 

호나우두는 1997년 발롱도르, FIFA올해의선수상 역시 수상했습니다.

 

델 피에로는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타이틀로 아쉬움을 달랠수있었습니다.


(* 이때가 델 피에로 23살, 호나우두 21살입니다)


(* 델 피에로는 팀의 승리를 더 우선순위에 두는 본인 성격에따라 본인의 승리라 믿고있습니다.

리그 우승후 "첫번째 경쟁에서는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축구는 한선수보다 팀의 성적이 더 중요합니다. 우승이라는 결과물이 중요해요"

라는 말을 남기기도했습니다.)

 

 

 

델 피에로 vs 호나우두 는 한시즌내내 유럽을 넘어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이들의 화제거리였고

 

많은 이들이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누가 위인지 결판이 나리라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디펜딩챔피언 브라질과 달리

 

이탈리아는 큰 기대를 모으지는 못하는 전력이었습니다.

 

자국내에서도 유로,프레월드컵 실패로 비관론이 많았던 시기이고,

 

말디니,베르고미같은 레전드들이있었으나 프레월드컵의 참사등으로 인해 카테나치오는 좋은 평가를 받지못했습니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부분은 중원의 지휘관 알베르티니의 게임메이킹이었고

 

결국 미국에서의 한을 풀기위한 모든 기대가 No.10 델 피에로에게 모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외에는 깜짝스타탄생을 기대할수있던 정도입니다.

 


(* 아탈란타에서 득점왕을 차지한후 유베에서도 18골을 기록한 인자기

스페인으로 건너간후 24경기 24득점이라는 놀라운기록을 남긴 비에리

프레월드컵에서의 실망을 뒤로하기위해 절치부심한 젊은수비수 네스타와 칸나바로

약관의 나이에 월드컵명단에 포함된 부폰

볼로냐에서 재기에성공한 4년전 비운의히어로 바지오 등이지요.)

 

 

 

당시 델 피에로에대한 이탈리아 국민들의 기대는 정말 엄청났으며

 

대표팀내에서의 입지도 다른 선수들과는 달랐습니다.

 

당시 감독이었던 체사레 말디니는 아직도 화자되는 명언을 남긴바있습니다.

 

"우리팀의 모든선수들은 골문안으로 공을 집어넣을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팀의 델 피에로가 최상의 컨디션일땐 홀안으로 공을 집어넣을수도있죠"

 

 

 

그런 여러 말들과 평가, 기대속에 델 피에로는 잠시 유벤투스를 떠나 부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아주리의 일원으로 프랑스월드컵에 참가하게됩니다.

 

이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르기전까지를 델 피에로 제1의 전성기로 볼수있을겁니다.

 

델 피에로가 93/94시즌 18살의 나이로 데뷔한이후 23살인 97/98 시즌종료시점까지 5시즌동안 쌓은 커리어는 어마어마합니다.

 

 

 

리그 3회우승 , 2회 준우승

 

코파이탈리아 1회우승

 

이탈리아 슈퍼컵 2회우승

 

유럽 슈퍼컵 1회우승

 

챔피언스리그 1회우승 2회준우승

 

UEFA컵 1회 준우승

 

인터콘티넨탈컵 1회우승

 

 

세리에A 올해의 이탈리아선수상 1회 수상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2회 수상

 

인터콘티넨탈컵 MVP 1회 수상

 

ESM 올해의팀 3회 수상

 

European Under23 Footballer of the year 1회수상

 


리그  98경기 48득점

 

챔스  26경기 20득점

 

A매치 23경기 8득점


물론 그후 프랑스월드컵을 기점으로 잠시 빛을 잃고말지만

 

이당시의 알렉스가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혜성같이 등장한 아이돌이었음은 두말할필요가 없을것입니다.

추천해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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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ty Lv.21 / 5,096p
댓글 17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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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예전에 타사이트에 썼던글인데.. 6편짜리를 써놓고 4편인가에서 끝냈었던 기억이나네요 ㅜ

캡틴과의 이별이 아쉬워 가다듬고 가다듬어 다시올려봅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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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이형은 다 좋은 데 너무 길어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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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양해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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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알레 ㅠㅠ
아 이거 조금 나누는게 어떨까요? 유소년기, 첫번째 전성기 머 이런식으로 조금 더 나누면 읽기도 쉽고
애매하게 똻 끊으면 연속극처럼 다음편 언제올라오나 기대도 더 될거 같고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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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시도해봤는데 끊는 타이밍 잡기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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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페이지 넘어가면 스페셜리포트로 이동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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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그저 감사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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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예전에 세매에서 읽었었는데...
토다이님 끊는 스킬이 장난이 아니셨던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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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너무 긴거같아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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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세매에서 읽었을때도 너무 좋았는데~
다시봐도 좋은 글은 또 좋군요ㅎ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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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좋은리플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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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으앜ㅋㅋ 너무좋아요 이 시리즈물 개인블로그에 소장해도 되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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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제가 영광이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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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관련 사진 몇개만 첨부하면 완벽할 듯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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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사진 올리려다가 진짜 스크롤압박이 너무 심해질거같아서 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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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8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세메에서 읽다가 끊겨서 정말 아쉬웠는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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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8
아니에요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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