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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8일 16시 27분

2편에 이어서 가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가지만 또다시 언급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욘 한센이 유벤투스에 합류한 1948-1949시즌 당시 유벤투스의 최고 스타는 전 시즌 19세의 나이로 리그에서 27골을 기록하며 토리노의 주역들인 마쫄라와 가베토를 제치고 득점왕을 차지한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보니페르티는 유벤투스 역사상 델 피에로 이전 최고의 공격수이기도 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전에 언급하기도 했지만 보니페르티는 9번에 해당하던 선수였다는 것을 다시금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한번 더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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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주장 보니페르티는 9번이었습니다.]


욘 한센이 떠난 이후 유벤투스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역사상 최악의 시기엿죠), 보니페르티 역시 홀로 고군분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1957-1958시즌 유벤투스는 대규모 영입을 감행합니다.

당시 잉글랜드 리그 리즈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40경기 3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른 존 찰스와

리베르 플라테를 3연속 리그 정상에 올려놓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1957 코파 아메리카 정상에 올려놓은 오마르 시보리를 당시 세계 이적료 기록을 세우며 데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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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리, 찰스, 보니페르티 '마법의 트리오']


이들의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리그 적응기간조차 필요없었습니다. 이전까지 7, 12, 9등을 기록했던 유벤투스는 바로 이시즌 통산 10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존 찰스는 이적 첫해 28골로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오마르 시보리 역시 22골로 리그 득점 3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들 트리오가 활약했던 4시즌 동안 3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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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1958 시즌 유벤투스. 윗줄 맨오른쪽이 찰스. 아랫줄 가운데 2명이 보니페르티와 시보리]


그리고 그 중심엔 아르헨티나산 테크니션인 새로운 유베 10번이 있었습니다.



[오마르 시보리 (Omar SIVORI)]

아르헨티나 출신의 오리운도로 유벤투스의 리그 5연패의 주역이었던 레나토 체사리니는 유벤투스에서 활약한 이후 리베르 플라테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리베르 플라테에서 유스팀 감독을 맡게 된 것이 유벤투스에게 행운이 되었습니다. 시보리는 체사리니의 지도를 받았었고, 이것이 그가 유벤투스로 이적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체사리니 역시 1959-1960시즌 유벤투스 감독으로 부임하여 리그 2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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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 시보리 (Omar SIVORI)는 마라도나 이전 아르헨티나 왼발 10번 테크니션이었습니다. 환상적인 드리블 능력이 일품이었고 패싱력, 득점력도 상당했습니다.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이탈리아 대표팀 10번 자리도 차지하여 1962 월드컵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유벤투스에서는 8시즌 동안 259경기 174골을 기록했습니다. 보니페르티 이후 유벤투스의 주장이기도 하였습니다. 3차례의 리그 우승과 3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고, 1959-1960 시즌에는 2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961년 발롱도르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클럽 소속 최초의 수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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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에서 마지막 시즌인 1964-1965엔 부상도 있었고 새 감독인 에레라와 갈등이 있어서 출장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다만 델 솔과 동시 기용시 시보리가 10번, 델 솔이 8번이었습니다.


[시보리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K5Wj3we4bjU

시간나시면 챙겨보시길 바랍니다. 현재 뛰던 선수였더라도 환상적인 테크니션이었을겁니다.




욘 한센 이후에는 대체자를 찾지 못해 최악의 부진을 맞이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치네징요 (CINESI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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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네징요 (CINESINHO),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브라질 선수입니다. 풀 네임은 Sidney Colônia Cunha입니다. 1950년대말 브라질 리그에서 많은 우승을 거머쥐고 이미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었습니다. 모데나를 거쳐 카타니아에서 2시즌 활약한 그는 시보리의 대체자로 에레라 감독의 선택을 받습니다. 

168cm라는 작은키지만 브라질리언 선수답게 화려한 개인기를 지녔고, 특히 프리킥, 코너킥 등에서 위협적인 킥을 보여주었던 선수였습니다. 치네징요 3시즌간 119경기 10골을 기록하며 유벤투스에서 활약했고 1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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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줄 가운데가 치네징요]



[이후 두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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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후 두시즌동안 10번의 주인공이었던 선수들은 그간 유벤투스에 있으면서 7번, 8번으로 활약하던 선수들이었습니다. 이 시즌 유벤투스는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며 좋지 못한 시기를 보냅니다.

(참고로 Roberto VIERI가 그 유명한 Christian VIERI의 아버지입니다.)



1970-1971 시즌에 접어들어 유벤투스는 다시금 개혁을 감행합니다. 할러, 살바도레만 남기고 스피노시, 카펠로, 란디니와 같은 젊은 선수를 영입하였고, 카우시오, 베테가를 임대 복귀시킵니다.

그리고 아르만도 피키가 새롭게 감독으로 부임합니다. 피키 감독은 반시즌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고, 1946-1947 유벤투스 소속으로도 활약했던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Čestmír Vycpálek를 새 감독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유벤투스는 2연속 리그 정상에 오르며 다시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1970-1971 시즌부터 6시즌 동안 유벤투스의 10번 자리의 주인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파비오 카펠로 (Fabio CAP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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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1974시즌 로마전 결승골 넣는 모습]


파비오 카펠로 (Fabio CAPELLO)는 오늘날 명감독으로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밀란, 레알 마드리드, 로마, 유벤투스, 잉글랜드, 러시아 감독을 역임하여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린바 있습니다.

카펠로는 선수시절에도 스타 플레이어였습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SPAL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로마와 밀란이 영입경쟁이 붙었었고 당시는 로마가 승리했습니다. 로마에서 키플레이어로 활약하며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유벤투스 상대로 1대0 결승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4세의 나이에 새롭게 개혁을 하고 있던 유벤투스에 입단하게됩니다. 이적 초기 Picchi 감독과는 좋지 못했지만, Vycpálek 감독 지휘아래에서 맹활약하게 됩니다. 

이 시기 유벤투스는 3번의 리그 우승, 2번의 준우승, UEFA컵의 전신인 Inter-Cities Fairs Cup, 코파 이탈리아,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카펠로는 6시즌간 유벤투스 10번으로 활약하며 240경기 41골을 기록했습니다.

이 시기 카펠로는 대표팀에도 발탁되어 리베라와 안토뇨니 사이 시기 아주리 10번으로도 활약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1976-1977시즌부터 유럽 역사상 알렉스 퍼거슨과 더불어 가장 성공적인 감독으로 불리는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부임하게 됩니다.

트라파토니는 10시즌동안 6차례의 리그 우승을 비롯해서 유러피언컵, 컵위너스컵, UEFA컵, 인터콘티넨탈컵 등 대회라는 대회는 전부 우승합니다. 유벤투스는 UEFA 최초로 3대회를 모두 우승한 클럽이 됩니다.



[로메오 베네티 (Romeo BENETTI)]

유벤투스는 카펠로의 무릎 부상 상태가 염려되었고, 그리하여 밀란의 로메오 베네티와 맞트레이드를 합니다. 베네티 + 1M 리라의 조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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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오 베네티 (Romeo BENETTI)는 콧수염과 강렬하게 생긴 인상을 지닌 선수로, 활동량이 많은 걸로 유명한 미드필더였습니다. 게다가 득점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폭발적인 드리블 능력도 겸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비즈에 가까운 다비즈와 가투소의 혼합형이라고 묘사하고 싶은 선수입니다.

1968-1969 시즌 이미 한시즌 유벤투스에서 활약했으나 큰 활약없이 밀란으로 이적했었고, 밀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 국가대표팀 주전 미드필더로도 활약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리 올타임 넘버원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생각하는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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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월드컵. 4번 베네티, 1번 조프, 8번 카펠로 (10번은 리베라였죠)]


국가대표팀에서는 주로 4번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나, 트라파토니 감독의 유벤투스에서는 좀더 공격적인 롤을 부여받았습니다. 당시 4번은 주장인 푸리노의 몫이었고, 8번은 새롭게 올라오는 신인 타르델리의 몫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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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1977 시즌 UEFA컵 결승 포메이션 및 10번 베네티] 

보시는바와 같이 유벤투스에서는 10번 롤을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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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월드컵에서는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아주리 10번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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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로와 맞트레이드 된 이후 나름 화제였습니다. 베네티는 유베의 새로운 10번이 되었고, 카펠로는 대표팀에서처럼 리베라가 10번이었기에 8번을 부여받았습니다.


베네티는 유베에서 3시즌간 활약했고, 그 동안 리그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컵 우승 등 좋은 시기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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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1977 시즌 리그 우승과 UEFA컵 우승을 달성한 젊은 트라파토니 감독과 유벤투스 선수단. 베네티는 맨 윗줄 선수단 중 오른쪽에서 3번째, 조프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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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입니다. 다음편에서는 1980년대를 다루고 전반적인 마무리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의 끝나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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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해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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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IA10 Lv.31 / 14,522p
댓글 7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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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좋은 글 감사드려요. 카펠로가 유베의 10번이었었군요.
오오 항상 고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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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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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잘봤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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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잘 봤습니다.
블로그에는 안 올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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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9
요즘 사실 바빠서 블로그 관리가 잘 안되네요 ㅜㅜ
기사, 소식만 올리는정도라.
시간되면 올릴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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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9
항상 느끼지만 디테일한부분에서의 정성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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