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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Zinedine Yazid ZIDANE
국적: France
생년월일: 1972년 6월 23일
출생지: Marseille
키/몸무게: 185cm/78kg
포지션: MF
A매치 데뷔전: 94/8/17 vs Czech Rep.
A매치 출장/득점: 108/31
월드컵 출장/득점/등번호: 1998년 프랑스(5/2)/10
2002년 한,일(1/0)/10
2006년 독일(6/3)/10
존칭: Zizou
SEASON CLUB GAMES GOALS No.
1988/89 Cannes 2 0 -
1989/90 Cannes 0 0 -
1990/91 Cannes 28 1 9
1991/92 Cannes 31 5 9
1992/93 Bordeaux 35 10 7
1993/94 Bordeaux 34 6 7
1994/95 Bordeaux 37 6 7
1995/96 Bordeaux 34 6 7
1996/97 Juventus 29 5 21
1997/98 Juventus 32 7 21
1998/99 Juventus 25 2 21
1999/00 Juventus 32 3 21
2000/01 Juventus 33 6 21
2001/02 Real Madrid 31 7 5
2002/03 Real Madrid 33 9 5
2003/04 Real Madrid 33 7 5
2004/05 Real Madrid 29 6 5
2005/06 Real Madrid 29 9 5
'지네딘 지단..'
축구가 이 땅에 시작된 이래로, 각각 그 시대의 '메시아적 역할'을 했던 위대한 축구선수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능력'으로 세계축구의 흐름과 역사를 진화시켜왔다. 또한 그들의 이름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할지언정 모를리없다.
20세기를 두고, 이 위대한 명인들은 압축해서 세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공격자도 수비를 하고, 수비자도 공격을 한다.'라는 '토탈풋볼' 개념을 처음 들고나와 경기장에서 유감없이 보여줬던 요한 크라이프, '공격형 미드필더','플레이메이커'라는 포지션 변혁을 불러일으킨 디에고 마라도나.. 그리고 마라도나가 변화시킨 공격전술의 '1'의 자리의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보여준 지네딘 지단이다.
전설의 시작..
1972년 6월 23일. 프랑스, 마르세유. 알제리 국적의 부모님 밑에서 다섯 형제중 막내로 태어난 지네딘은 아주 어린 나이때부터 그가 태어난 마르세유 지역에 있는 US 세인트-앙리 클럽의 유소년 선수로 등록되 처음으로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네딘은 후에 그가 소화하게되는 포지션인 미드필더와는 다르게, 중앙 수비수로 뛰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공격적 재능은 한 유스클럽 감독의 눈에 띄게된다.
14살이 되던 해에, 지네딘은 한참 챔피언쉽에 있던 클럽인 AS 칸의 유소년팀 감독 얀 바라우드의 눈에 띄게되어 자신이 살고있던 셉템을 떠나게 된다. 이미 같은 나이때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볼을 다루는 능력이 훨씬 더 출중하다는 것을 알고있었던 감독이었고, 그가 앞으로 가지게 될 훌륭한 신체조건 역시도 미리 알고있었던 듯한 바라우드 감독의 최종결정이었던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칸에서 6주 동안만 뛰기로 정해져있던 지네딘이었지만, 클럽의 감독은 그간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그에게 프로선수로 계속 팀에서 뛰어주기를 바라면서 4년의 연장계약을 제시했다. 자신의 재능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생각해주는 클럽을 위해서 어린 소년은 클럽에 남기로 결정했고, 그들이 제안한 계약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지네딘은 17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프로축구 무대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그 해가 바로 1988년이었다.
칸 시절의 지네딘
4년동안 그는 칸에서 자신이 '재능'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1991년 2월 8일은 지네딘이 프로선수가 되고 처음 주전으로 뛰게되었던 시즌에 첫골을 넣었던 날인데, 재밌는 일화가 있다. 당시 칸의 회장은 3년전에 그와 연장계약을 체결할 때 그에게 칸에서 첫골을 성공시키면 Clio라는 차를 선물해주겠다는 공약을 했는데, 실제로 지네딘은 그것을 선물받았다고 한다. 어찌됐던 그 해에 지네딘은 클럽의 중심선수로 대활약했고, 이제 막 승격한 클럽에게 UEFA컵 진출 자격까지 선물해준다. 그리고 그는 4년전 자신을 알아보고 연장계약을 체결했던 칸에게 계약기간동안 최선을 다해 뛰어주었고, 결국 92년 팀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해에 스페인 댄서 출신인 그의 아내 베로니크를 만나게 된다.
유럽무대에 등장한 ZIZOU
보르도 시절의 지네딘(뒤에 보이는 선수가 뒤가리)
자유로운 신분으로 이적 시장에 등장한 지네딘에게 새로운 계약을 제시한 클럽은 다름아닌 르 샹피오나의 명문, FC 지롱댕 드 보르도였다. 보르도는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신인으로 주목받던 지네딘에게 4년의 계약을 제시했고, 지네딘 또한 이 계약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92/93시즌을 새롭게 시작하게된 지네딘은 역시나 변함없는 능력을 과시하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 그라운드에서 팀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에 뢰블뢰 대표팀의 동료로 함께 뛰게될 선수들인 크리스토퍼 뒤가리,빈센트 리자라쥐 등과 함께 클럽 역사상 가장 빛나는 해를 보내게 된다.
그는 레알 베티스와의 유럽무대 원정 경기에서 엄청난 슛을 성공시켰다.
1995년 보르도는 지네딘을 축으로 한 젊은 선수들의 대활약으로 인터토토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 해에 UEFA컵 2위라는 놀라울 만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특히, 웨파컵 준결승전에서 프랑코 바레시,로베르토 바지오,조지 웨아 등을 필두로 웨파컵 우승을 노리고 있었던 이탈리아의 강호 AC밀란을 만나 홈경기 3-1의 대승을 거두는데, 그 중심엔 역시나 지네딘이 있었다. 당시 경기에서 뒤가리가 첫골과 두번째 골을 성공시켰는데 그 골들은 모두 지네딘의 발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었다. 철옹성같던 밀란의 플랫 포백은 지단이라는 신예에게 처참히 무너졌다. 밀란의 주장인 바레시는 당황했고, 모두가 예상했던 웨파컵 4강행 티켓은 밀란이 아닌 보르도에게 주어졌다. 1996년 유럽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지네딘은 이미 최고의 신인으로 거듭나 있었고 그 해 이적료 3m에 이탈리아의 최고 명문구단인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경기장 안의 관중들은 그에게 'ZIZOU'라는 존칭을 붙여 불러주기 시작했다.
JUVE IN ZIZOU
1995/96시즌 지네딘이 보르도에서 웨파컵 준우승을 달성하던 때에 리피 감독이 이끄는 유베는 비알리,라바넬리,디 리비오등의 중심선수들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업적을 이뤄논 상태였다. 그 시즌을 끝으로 몇몇 노장선수들이 팀을 떠나감에 따라 클럽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위한 플랜을 짜고있던 리피 감독의 눈에 그가 띈 것이었다. 그렇게 96년 여름에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의 명문클럽으로 새 둥지를 튼 지네딘은 대륙간컵 결승전 리베르 플라테와의 경기에 주전으로 나서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이미 입단초부터 그 진가를 발휘했던 지네딘은 리피가 이끄는 유벤투스의 중심선수로 자리매김했고, 입단 첫 시즌에 팀의 상징이라 불리는 델 피에로와 함께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스쿠뎃토를 차지하는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생애 처음으로 참가한 챔피언스 리그에서 부상중인 델 피에로를 대신해 팀 공격의 중심으로 대활약.(아약스와의 넉아웃 스테이지에서 보여준 그 '농락골'은 아직도 필자의 머릿속에 선명하다.)자신을 놓친 타 구단 감독들의 속을 애타게 만들기도 했다.
96/97시즌의 모습
특유의 우아한 플레이로 세계에서 가장 거칠다는 세리에A 수비진들을 농락했던 그는 97/98시즌 '2년차 징크스' 조차도 부숴버리고 자신이 왜 이 클럽에서 주전으로 뛰어야 하는 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상대 수비를 농락했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리더쉽과 탁월한 공격조율 능력으로 상대팀 자체를 완벽하게 바보로 만드는 그의 플레이는 정말로 입이 떡 하고 벌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그 해, 클럽의 공격진에 새롭게 보강된 선수였던 '타겟맨' 필리포 인자기의 놀라울 만한 위치선정으로 지네딘의 플레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었는데, 시즌 내내 인자기가 넣은 거의 모든 골은 지네딘의 발에서 연결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것은 단순히 인자기에게서만 극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선수들의 득점에도 관여하는 부분이었기에 그의 존재가 더 이상 유벤투스의 옵션이 아닌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다시한번 증명한 셈이 되었다.
과거 80년대 초반 또 다른 프랑스의 명인 플라티니가 공격을 이끌었던 유벤투스가 '황금기'의 시대와 역사를 창조해 나갔다면, 이 지네딘 지단이라는 선수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데, 유베가 자랑하는 리그 우승횟수가 그가 있음으로 하여금 두 번이나 빛을 본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나 대단했던 유베였음에도 불구하고, 98년 또 다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무대에서 '빅 이어'를 눈앞에 두고 좌절의 순간을 맞게되는데 이번에 그들을 가로막은 클럽은 스페인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였다. 작년의 암울했던 기억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쳐갔던 지네딘은 결국 결과에 승복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좋은 플레이를 펼쳤음에도 말이다.
97/98시즌 챔스 결승전때의 지주
1998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발롱도흐'를 수상받는 지주
98/99시즌 정확히 99년에 팀의 상징인 델 피에로가 후에 자신의 플레이 자체를 바꿔놓는 큰 부상을 당함과 동시에 당시 라치오 감독이었던 즈데넥 제만의 '유벤투스 선수들의 약물 복용설'에 휩싸인 지네딘은 인생 최악의 시련기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가장 잘 알고있고, 자신과 가장 잘 맞았던 감독인 리피가 사임하게 되었음은 물론, 클럽은 리그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렇게 근 3년간을 별다른 트로피 한번 들어올리지 못하고 쓰디슨 좌절을 맛봐야 했던 지네딘은 결국 타 클럽으로의 이적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2001년 그 해에 유베의 '명장' 리피가 다시 팀의 재건을 위해 클럽에 복귀했다.
클럽의 방침도 그러했고, 리피의 생각도 그러했다. 바로 그 생각은 이러한 것이었다.
"새로운 유베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지단 체제'의 유베를 없애야 한다." 결국 클럽이 제시한 상황도 자신이 고려하고 있던 부분과 일치점이 생기자 그는 더 이상 미련없이 자신의 안방과도 다름없었던.. 자신에게 세계적 축구선수로써의 명성을 가져다준 토리노를 떠나기로 결정한다.(물론, 떠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 였지만 클럽이 내세운 상황은 그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그는 새로운 모험을 원했고, 새로운 무대로의 도전에 찬성했다. 위대한 그가 뛰어야 할 클럽은 다름아닌 3년전 자신이 그토록 거머쥐고 싶었던 '빅 이어'를 가로채갔던 스페인의 명문 중 명문, 레알 마드리드였다.
20세기의 초상
2001년 세계 축구계 역사상 가장 큰 이적자금을 받고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에 성공한 지주는 이미 98년 자국 월드컵 우승과 00년 네덜란드 유로 대회 우승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세계의 모든 축구인과 팬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세계 최고의 선수는 지단이다라고 평 했으며,그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그도 말했듯이 그 자신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흠으로 작용하던 것은 바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었다. 그 부족한 2%를 마져 채우기위해서 마드리드행을 선택했던 그로써는 무엇보다도 입단 첫 해 목표를 챔피언스 리그로 맞춰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 역사상 가장 멋진 골로 기억될 지주의 발리슛
결국은 들어올린 '빅 이어'
2001/02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현 독일대표팀의 주장인 미하엘 발락이 공격을 주도하던 바이에르 04 레베쿠젠은 당시 레알이 상대하기 버거운 '짜임새'와 '운'을 동시에 지니고 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네딘의 우승에 대한 열망에 비하면 그렇게 커다란 것도 아니었다. 1-1로 진행되던 상황. 후반전 누군가 로베르토 카를로스가 올린 크로스를 완벽에 가까운 타이밍으로 받아 차 상대팀의 골망를 흔들었다.
지단이었다.
스페인 국왕컵 우승: 2001, 2003
대륙간컵 우승: 2002
라 리가 우승: 2002/2003
유로피언 수퍼 컵 우승: 2002
MERCI ZIZOU..
지네딘은 마드리드에 5년간 머물면서 자신의 커리어에서 이루지 못했던 모든 것을 이룩했다. 모든 것을 거머쥐고, 최고의 모습으로 물러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축구팬들은 아쉬움을 금치못했다.
그의 은퇴경기가 있던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모인 모든 팬들은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쓴 팻말을 들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모두의 축복속에 축구계의 전설은 그라운드를 떠났다..
※ 불펌을 절대 금 합니다. 또한 유베코리아에 있는 모든 데이터는 이곳에서만 보실 수 있습니다.
- Written by 춤추는알레 -
춤추는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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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 네디 부폰 튀랑을 선물해주시고 간 지주옹
유베에서도 최고였음..乃
유베에서도 최고였음..乃
하아 커리어가 대단하시네 역시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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