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칸나바로 -카데나치오의 저편-
>희망을 만들어준 어웨이 골
독자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시간은 빠르기도 해서, 어느새 시즌도 종반입니다.
유벤투스는 캄피오나토에서는 밀란과 함께 선두(30라운드 종료 시점)이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8강에 진출하는 등 지금까지 순조로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
앞으로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게임이 이어지니까요.
캄피오나토라면 아직까지는 다소 만회할 여지가 있습니다만
챔피언스 리그는 한 시합이라도 실수하면 그걸로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어버립니다.
냉혹한 세계입니다.
지금 이 칼럼을 쓰고 있는 건 리버풀에서의 챔피언스 리그
준준결승 제 1라운드를 치룬지 이틀 후(4월 7일).
아시다시피 유베는 1:2로 져버렸습니다만 마지막 20분 정도를 빼면
내용적으로는 명확히 우리들이 우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델레 알피에서 싸우기때문에 분명 역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 리버풀에서의 시합 이야기입니다만 초반에 2실점을 맛보았기 때문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상대의 기세는 사그라들기 시작했었어요.
반대로 말하자면 리버풀은 처음부터 앞뒤를 생각치 않는 전개로 뛰어들었다는 겁니다.
그만큼 미친듯이 달려드는 팀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킥오프 직후부터 굉장한 기세로 볼 홀더에게 프레셔를 가해
그대로의 흐름으로 선제골 한 골을 넣었을 시점까지는
이쪽이 리듬을 잡을 새조차 하나도 없단 느낌이었습니다.
볼을 빼앗아도 거기서부터 패스가 이어지지 않아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또 다시 반격을 당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런 기세가 90분간 이어질리가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 2점 째(그건 어쩔 수 없는 골이었습니다)가 들어간 이후에는
마지막까지 계속 유베의 페이스가 되었으니까요.
후반도 그 쪽은 한 번도 슛을 하지 못했잖아요?
시합 전체적으로 생각한다면 마드리드에서의 어웨이전(대 레알 마드리드. 스코어는 0:1) 쪽이
훨씬 좋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적에게 준 챤스도 많았구요.
그래도, 만약 0:2인채로 끝났다면 꽤 힘든 상황에 몰려버렸을 것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후반에 많이 공격해 올라가지 않은 그 몇 번 중에 골을 넣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때까지도 즐라탄이나 알레에게 기회가 있긴 했었습니다만
포스트에 맞거나 오프사이드가 아닌데 휘슬이 울렸으니까요.
골을 넣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의 본래 임무가 아니지만
팀이 힘든 상황일 때 이런 중요한 어웨이 골을 넣어서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일입니다.
이번 시즌은 나 자신도 꾸준하게 좋은 플레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플레이에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지금까지의 캐리어 중에서도 베스트 시즌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과연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난 시즌 몇 차례 부상으로 고생해서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시기가 이어진 탓에
지금의 플레이가 더욱 눈에 띄게 보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로서는 부상이 나은 덕택에 본래의 플레이가 돌아왔을 뿐이거든요.
파르마 시절에는 계속 이 정도의 레벨, 때로는 이 이상의 레벨을 유지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지난 시즌은 부상 탓도 있었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기대에 어긋났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당분간은 톱 레벨로 플레이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유베뿐만이 아니라 아주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일 월드컵, 유로 2004 등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다음 독일 월드컵에서는 무슨일이 있어도 납득이 가는 결과를 남기고 싶어요.
>자신감에 넘치는 지휘관
월드컵 예선은 얼마 전의 스코틀랜드전(3월 26일. 스코어는 2:0)으로
전 일정의 반을 모두 소화했고 2위 노르웨이와 슬로베니아에 4포인트 차로 선두입니다.
지휘관이 바뀌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멤버들을 시험하면서도
확실히 좋은 결과를 남기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꽤 순조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리피 감독은 대표팀 대표팀 멤버들을 고정하는 것 보다도
우선은 폭넓게 많은 선수들을 프로젝트 안에 넣어보고
거기서 최종적으로 선수를 추린다는 스타일을 관철하고 있습니다.
후보로 올라있는 선수 그룹은 40명 정도까지 늘어났을까요.
10년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 방식이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클럽의 시합수가 이렇게까지 늘어나있고 일정적으로 타이트해지면,
대표 게임에 언제나 같은 멤버를 갖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친선시합에서는 대표경력이 적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한편
주전 그룹을 쉬게할 필요성도 생깁니다. 물론 공식전은 별개이지만...
리피 감독 밑에서 플레이하는 건 사실 이게 두번째.
나폴리에서 내가 처음으로 주전 자리를 잡았던 시즌(93-94 시즌)의 감독이 그였습니다.
그 후 리피는 유베로 옮겼고 나도 그 1년 후에 파르마로 이적했기 때문에
함께 일을 하는 것은 10년만이 되는군요.
재회하고 크게 느낀 점은 지금의 리피 감독은 당시보다도 훨씬 자신감에 넘쳐있다는 점.
유베에서 몇몇 타이틀을 딴 것으로 자신의 방식에 대한 확신이랄까
그런 것이 가져다준 카리스마랄까 그런 것이 자연히 태도로부터 배어나오고 있습니다.
톱레벨의 선수만으로 구성된 아주리를 이끄는데 있어
그런 아우라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변하지 않은 점은 감독이라는 일에 대한 열정.
매일 연습을 하는 와중에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고, 가르치고,
팀을 강하게 만들어 나가려는 마음이 정말 강합니다.
>이탈리아의 멘탈리티
아주리의 축구에 관해 말하자면 감독이 누구냐는 문제 이전에
우리 이탈리아사람이 자연스레 가지고 있는 멘탈리티라는 것이 있어서
그게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몇년간은 보보, 알레, 토티, 카사노 등 공격적인 선수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탈리아의 멘탈리티라는 것은 곤란한 상태에 빠져도 끈기있기 싸우고 골을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금새 '카데나치오' 라는 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30년 전의 이야기. 현재의 아주리는 자기 진영에 틀어박혀 지키고
카운터 일변도의 공격에 의존해 1:0으로 이기는 축구를 지향하지도,
실제 그런 축구를 하고 있지도 않으니까요.
클럽 레벨에서는 리피 시절의 유베나 현재의 밀란 같이 레벨 높은 공격을 보여주는 팀도 있습니다.
특히 지금의 밀란은 분명 유럽에서 가장 좋은 축구를 하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공격만이라면 바르셀로나도 굉장합니다만, 그들은 수비를 모릅니다.
하지만 밀란은 공격도 수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힘든 상황에 빠져도 확실히 수비해서 승리를 쟁취해 낼 수 있습니다.
그건 말디니, 네스타, 가투소, 피를로 등 팀의 근간을 지탱하는 선수들이
이탈리아의 멘탈리티를 확실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팀도 마찬가지 입니다.
네덜란드나 스페인, 포르투갈은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역전시켜 수비해 지키는 시합을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상대보다 좋은 축구를 했을 때는 이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쉽게 져버립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럴 때도 확실히 지켜서 이기는 기술을 알고 있습니다.
유로 2000의 네덜란드전을 기억하고 있나요?
그 시합은 개시후 34분에 잠브로타가 퇴장을 당하고 우리들은 10명이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수비를 굳히는 이외에 선택지가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수비를 철저히 하고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간을 참고 견뎌 PK로 승리했습니다.
그 시합에는 이탈리아의 멘탈리티가 모두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걸 '카데나치오' 라던가 '디펜스 지상주의' 라고 부르고 싶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 그 상황에서 그 외에 어떤 방법이 있었을지를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자, 그러면 유로 2000의 결승, 한일 월드컵의 한국전,
유로 2004의 스웨덴 전은 대체 뭐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우리들이 놓친 혹은 이기지 못한 시합은 모두 일단은 주도권을 빼앗았으면서도
그걸 지키지 못해 따라잡히는 전개뿐이었습니다.
물론 각각의 시합에 다른 사정들이 있었지만
만약 공통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게 있다면
추가 득점을 따려고 노력하는 것 보다도 리드를 지키려는 마음이 훨씬 강해져 버렸다는 부분일까요.
그 밸런스라는게 정말 미묘한 것입니다만
그 미묘한 부분에서 2점째를 따려는 의지의 강도가 약간 부족했다는 거겠죠.
그게 내년 월드컵에서의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우선은 예선을 돌파하지 않으면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6월의 노르웨이전, 9월의 스코틀랜드전, 벨라루시전 등
3 시합 연속으로 어웨이 경기가 이어지게 됩니다.
특히 그룹 2위인 노르웨이는 직접 라이벌이기때문에
여기서 확실히 눌러두지 않으면 앞으로가 위험해질테니까요.
...그러니 슬슬 대표팀 일은 일단 머리속에서 비워두고,
유베에서의 싸움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모두들 이걸 읽고 있을 즈음에는 이미 리버풀전의 결과가 나와있겠지만
지금은 다만 그게 긍정적인 결과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월드사커다이제스트 5월 5일 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