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돼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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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일 12시 26분



1955년 6월 21일,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와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죄위프에서 작은 이탈리아 전문 식당을 경영하던 알도 플라티니와 그의 아내에게 오늘은 뜻 깊은 날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소중한 아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알도는 이 아이의 이름을 미셀이라고 붙여 주었다.

후에 프랑스와 유벤투스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미셀 플라티니는 프랑스 동부 뫼르텔모젤 지방의 인구 1만 1천여명의 소도시 죄위프에서 이렇게 태어났다.

미셀이 태어난 지 3년 후, 58년 프랑스 월드컵은 프랑스 국민들을 한껏 들뜨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건국 이후 최초의 월드컵을 들어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부푼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프랑스는 당대 최고의 두 선수 -모든 선수들이 훌륭했지만- 레이몽 코파와 쥐스트 퐁텐을 보유하고 있었다.

코파의 환상적인 볼 배급 능력은 당시 유럽 뿐만이 아니라 세계 최고임을 여지없이 입증하고 있었고, 퐁텐의 득점은 끝을 모르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를 업고 출전한 프랑스 대표팀은 코파와 퐁텐의 미친듯한 활약으로 연일 승승장구, 파라과이를 7:3, 북아일랜드를 4:0으로 격파하는 등 우승을 향한 무난한 출발을 보이고 있었다. 월드컵 우승에 2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던 프랑스, 1958년 6월 24일 스웨덴의 간판 경기장인 Rasunda Stadium에서 브라질과의 4강전을 앞두고 있었다.

역시 퐁텐이 전반 9분만에 그 대회에서의 9번째 골을 작렬시키며 우승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던 프랑스,

BUT, BUT,

그 코파와 퐁텐보다 약간 더 뛰어난 17세 소년이 브라질에는 있었다.

그 소년은 후반에만 내리 3골을 폭발시키며 순식간에 스코어를 5:1로 만들어 버렸고,
프랑스는 종료 직전 한 골을 만회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 소년은 결승에서 만난 홈팀 스웨덴에게 조차 2골을 빼앗으며 우승컵을 제 나라로 가져가 버렸다.

비록 프랑스의 우승에 대한 꿈은 한 소년에게 빼앗겨 버렸지만 코파와 퐁텐의 호흡은 무시무시했다, 코파의 지원사격을 받은 퐁텐은 앞으로 다시는 깨지기 힘들 기록인 월드컵 13골의 기록을 남기며 아쉬운 58년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코파와 퐁텐이 물러나고 24년간 프랑스는 월드컵 우승컵은커녕 월드컵 예선에서조차 탈락, 그나마 66년, 78년 두차례 출전한 월드컵에서도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끔찍한 프랑스 축구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한편 미셀은, 축구클럽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를 따라 축구를 배웠고, 그 재능을 일찍이 인정받아, 1972년 고향 팀인 AC 좌위프에서 프로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폐활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 통보를 받았고, 이렇게 축구를 포기 할 수 없었던 미셀은 고향을 등지고 라이벌 팀인 AC 낭시 로렌으로 가서 다시 한번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결과는 당연히 합격.

낭시-로렌에서 6시즌동안 활약하며 당당히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한 플라티니는, 78년 팀에 컵 대회 우승을 안기며 레 블뢰의 “10번”을 달고 당당히 78년 월드컵에 출전했다.

하지만 아직 세계 무대에서의 플라티니는 보잘것 없었다. 66년 이후 월드컵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한 프랑스가 16강의 문턱을 넘기에는 역부족 이었고, 또한 같은 조에 개최국이자 그 대회 우승국인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티니에게 이 대회는 많은 경험이 되었다. 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한 골을 성공시키며 그의 첫 번째 월드컵 골을 성공시킨 플라티니는 후에 프랑스 최강팀인 AS 생테티엔으로 이적했다.

생테티엔에서 1981년 리그 제패, 프랑스 컵 제패, 1982년 리그 컵을 제패한 플라티니는 이제 더 이상 풋내기가 아니었다. 당당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또 플라티니는 1981년 빠르끄 데 쁘랑세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월드컵 예선에서 팀의 82년 월드컵 티켓을 확정짓는 환상적인 프리킥을 터뜨려 전 유럽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스타가 아니라 유럽의 스타가 되어버린 플라티니를 결코 놓칠 리 없는 유럽의 빅 구단들은 플라티니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기 시작했다.

수많은 구단들의 공세 속에 플라티니는 1982년 봄, 토리노로 적을 옮기기로 결정한다.

플라티니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로렌 지역에서의 가장 큰 클럽에서 뛰기 시작하여 프랑스의 가장 큰 클럽에서, 그리고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에서 뛰었다.”

다음 시즌 유벤투스로의 이적을 확정짓고 나선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코파와 퐁텐의 시절 이후 프랑스는 미셀 플라티니라는, 레이몽 코파와 쥐스트 퐁텐을 한데 섞어놓은 듯 한 이 이탈리아 이민 2세 청년에게 또 다시 기대를 걸고 있었다.

월드컵 70여년 史를 기억하면서 1982년 서독과 프랑스의 준결승전을 빼놓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최고의 명승부에서 플라티니는 첫 동점골을 넣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최대 장점인 팀을 한데 묶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함으로서 강팀 서독을 끝까지 추격했다.

이 경기에서만큼 프랑스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해 하는 경기가 없었고, 당시 주장이었던 플라티니가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가는 패트릭 바티스통의 손을 잡고 있던 장면은 지금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훗날 그는 이 경기를 통해

“그날 밤 저는 거의 일생을 통해 겪을만한 모든 감정을 압축해 경험했습니다”

라고 회상했다.




월드컵에서의 아픔을 잊고 돌아온 유벤투스에서, 그는 월드컵에서의 한을 풀 듯 코파 이탈리아와 유러피언 컵을 유벤투스에게 당장 안겨주었다. 또한 자신은 미드필더이면서도 Serie A 득점왕을 차지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다음 1984년에서는 과연 “플라티니의 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해였다.

플라티니는 미친듯한 활약으로 스쿠데토와 유러피언 슈퍼컵, UEFA 컵 위너스 컵, UEFA 챔피언스리그, 코파이탈리아, 인터컨티넨탈 컵을 유벤투스의 트로피 보관함에 갖다놓았다, 또한 자신은 2년 연속으로 Serie A 득점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는 자국에서 열린 유로 84에서도 레 블뢰 유니폼을 입고 벨기에와 유고슬라비아전에서 완벽한 해트트릭(머리와 양 발로 득점)을 기록해 9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믿지못한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활약에 플라티니는 유벤투스에서 세 시즌 연속으로 골든볼(Ballon d'or)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유벤투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된 플라티니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들어올리지 못한 월드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86년 마지막으로 월드컵에 참가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브라질과의 승부차기에서


하지만 당시 플라티니는 심한 발목 부상으로 인해 당장 쉬어야 했지만, 마지막 소원인 월드컵을 향해 부상을 잊고 강행했다.

브라질과의 피말리는 승부차기 끝에 준결승에서 다시 만난 서독,

하지만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너무 힘을 뺀 탓일까,

4년전의 눈물은 없으리라 다짐했던 프랑스는 강한 체력과 뚝심을 앞세운 서독의 안드레아스 브레메와 루디 푈러에게 일격을 맞으면서 그렇게 플라티니의 마지막 월드컵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월드컵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다시 돌아온 이탈리아, 패배는 없었고, 유벤투스는 다시 한번 86년 스쿠데토를 쟁패하였다.

하지만 심신이 지친 플라티니는 그만 쉬고 싶어했고, 1987년 유벤투스에서 영광스럽게 은퇴했다. 비록 선수로서 은퇴했지만 그가 완전히 축구를 떠나 보낸 것은 아니었다.

1987년 미셀 플라티니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디디에 데샹을 주장으로 세우고 에릭 칸토나, 장 피에르 파팽을 앞세워 젊은 프랑스 대표팀을 구상했다.

그가 이끄는 레 블뢰 군단은 1989년 2월부터 ~ 1992년 2월, 약 2년 10개월 동안 한 번도지지 않는 무대 신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대표팀이 덴마크에서 열린 본 대회에서 1라운드 통과에 실패하자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감독 자리를 조용히 내놓았다.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되었을 때 플라티니는 다시 한번 조국의 부름을 받았다. 프랑스의 월드컵 개최를 기획한 페르낭 사스트르와 함께 프랑스월드컵 조직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으로 일하게 된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고, 프랑스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조국의 월드컵 우승을 지켜보는 감격을 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후 플라티니는 프랑스 축구협회 부회장직을 거쳐 현재는 UEFA 회장 선거 출마를 앞두고 있다. 이제 그의 경력은 축구계에서 거의 최고의 위치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가 즐겨 하는 말처럼 그는

“나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주었던 축구에 무언가를 되돌려 주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Club Honors


1978 French Cup (AS Nancy-Lorraine)
1981 French league title (AS Saint-Etienne)
1981 French Cup finalist (AS Saint-Etienne)
1982 French Cup finalist (AS Saint-Etienne)
1983 Italian Cup winner (Juventus)
1983 European Cup winner (Juventus)
1983 Serie A top goalscorer (16 goals)
1983 Ballon d'or
1984 Italian league title winner (Juventus)
1984 UEFA Cup Winners' Cup winner (Juventus)
1984 European Super Cup winner (Juventus)
1984 Serie A top goalscorer (20 goals)
1984 Ballon d'or
1985 European Cup winner (Juventus)
1985 Intercontinental Cup winner (Juventus)
1985 Serie A top goalscorer (18 goals)
1985 Ballon d'or
1986 Italian league title winner (Juventus)


International Honours

1978 World Cup: First round
1982 World Cup: Fourth place
1984 European Championship: Winner
1985Intercontinental Cup of Nations: Winner
1986 World Cup: Third place


※ A 매치 72경기 출장 41골 기록, 주장으로서 49회 출장.
프랑스 역대 최다 골 기록 보유

Managerial Career

1992 European Championship: First round



※ 1985년 프랑스 기사작위 수여, 1988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Légion d'honneur (국가 최고훈장) 수상,

Profile
안돼효 Lv.3 / 398p
댓글 6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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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1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이분은 미드필더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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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1
일단 실력이야 말할것도 없고 인간적인 면모에서 존경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선수더군요, 정말 대단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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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알레
2005-12-01
공미죠. 정확히. 그리고 레젼드란에 올라갈 플라티니옹 프로필 썼는데^^ 이 글은 스페셜레포트로 가면 적절할 듯 합니다. SAA에도 올리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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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2
안되효님 잘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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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2
미드필더로 프랑스 역대 최다 골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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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1
유벤투스 레전드 중 단연 돋보이는 스탯과 우승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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