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e10
  • 14. 06. 28

마우로 카모라네시 Mauro Camoranesi

선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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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 이름 마우로
  • 한글 성 카모라네시
  • 영문 이름 Mauro
  • 영문 성 Camoranesi
  • 닉네임 숙모
  • 생년월일 1976-10-04
  • 소속클럽 없음
  • 국적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 등번호 16
  • 포지션 RM
  • 가능 포지션 RWF, CM
  • 주사용발 오른발
  • 174
  • 몸무게 70
  • 출생지 탄딜,아르헨티나

카모라네시는 아르헨티나의 탄딜 (Tandil) 에서 태어나, 1995년 CA 알도시비 (Club Atlético Aldosivi) 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멕시코의 산토스 라구나 (Santos Laguna) 에서 22경기 8골,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6경기 1골,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반필드에서 38경기 16골, 멕시코의 크루스 아술 (Cruz Azul) 에서 75경기 21골을 기록하고, 2000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하였다. 헬라스 베로나에서 세리에 A에 데뷔한 카모라네시는, 두 시즌 동안 51경기에서 7골을 넣으며, 이탈리아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였다.

 

2002년, 그의 활약을 주목한 마르첼로 리피 감독에 의해 유벤투스로 이적하였다. 당초에는 잔루카 참브로타를 대체할 선수로 주목받고 있었으나, 예상과는 반대로 참브로타를 레프트 백으로 밀어내고 주전 선수 자리를 차지, 팀에게 스쿠데토와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안겨주었다. 2004년 감독이 파비오 카펠로로 바뀐 후에도 라이트 백을 맡았으며, 그 후 2006년 축구 스캔들에 의해 유벤투스의 세리에 B 강등이 결정되면서 타 팀으로의 이적을 희망했으나, 당시 유벤투스 감독이었던 디디에 데샹의 의향으로 유벤투스에 잔류해 세리에 A 승격에 공헌하였다.

 

2007년 감독이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로 바뀐 뒤에도 주전 선수로 뛰었으나,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기도 하였다. 복귀 후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고, 2008년 유벤투스의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에 기여하였다. 2009년 치로 페레라 (Ciro Perara) 가 유벤투스의 감독이 되었고, 2010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 새로 알베르토 자케로니 (Alberto Zaccheroni) 로 팀의 감독이 바뀐 상황에서도 그는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였다. 2010년, 8년간의 경력을 마무리하고 독일의 VfB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여 그는 1년 만에 태어난 곳인 아르헨티나의 CA 라누스로 이적하였다.

 

카모라네시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2003년 할아버지가 이탈리아인이라는 이유로 이탈리아에 귀화하였다. 그 해 12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에 데뷔하였으며, 다음 해 UEFA 유로 2004에도 출전하였다. 그리고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같은 해에 터진 세리에 A의 축구 스캔들이 발각되어 소속팀인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축구계가 어두운 분위기에 휩싸이던 중, 젠나로 가투소, 안드레아 피를로, 다니엘레 데 로시와 활약해 이탈리아의 네 번째 FIFA 월드컵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2010년 FIFA 월드컵에서는 명단에는 포함됐으나,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21일, 카모라네시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였다.

COMMENTS  (2)
  • Ale10 14. 06. 28 19:17
    클럽

    카모라네시는 자라면서 아르헨티나 클럽 리베르 플라테의 팬이었으나, 그의 유스팀 시절은 클럽 아틀레티코 알도시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알도시비는 마르 델 플라타에 있으며, 마우로의 고향인 탄딜에서부터 겨우 160km(99mi)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프로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멕시코로 갔으며 산토스 라구나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였습니다. 클럽은 1996년에 멕시코 프리메라 디비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카모라네시는 13경기에서 1골을 넣었습니다;그것이 클럽의 첫번째 타이틀 획득이었습니다. 산토스 라구나의 팬들은 그의 별명을 "엘 촐로(El Cholo)"라고 붙여주었습니다.

    어린 아르헨티나인에겐 더 많은 여정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향팀 반필드에서 뛰기 전에 우루과이 클럽인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잠깐 뛰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포지션을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굳혀갔으며, 38경기에서 16골을 넣습니다.

    다음 시즌 카모라네시는 다시 이적하였는데, 이번에는 멕시코의 크루즈 아줄이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1998~2000년까지 활약했습니다. 그는 세리에 A의 팀인 헬라스 베로나에게 크루즈 아줄에서 75경기에서 21골을 넣는 활약으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2000년에 이탈리아로 갔고, 베로나와 계약했으며 2년동안 활약하였습니다. 2002년에 카모라네시는 공동소유권에 합의하였습니다;유벤투스가 베로나에게 €4.8m(공식적으론 £3m)을 지급하고 그들에게 맥스 비에리의 공동 소유권 역시 넘겨주었습니다. 2003년 6월 26일 유벤투스는 €4.5m을 추가로 지급하면서 그는 영원히 비안코네리가 되었습니다. 같은 날 마르코 디 바이오와 엔조 마레스카가 유벤투스와의 계약에 합의했습니다.

    유벤투스

    유벤투스에서 카모라네시는 02-03시즌에 우승을 차지했고, 이탈리아 슈퍼 컵에서도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올드 레이디에서 04-05, 05-06시즌에도 우승을 했으나, 유벤투스는 칼치오폴리 스캔들 때문에 이 타이틀을 박탈당했습니다.

    그의 에이전트 세르지오 포르투나토가 2006년 여름에 리옹, 발렌시아, 리버풀등의 클럽과 접촉하기도 했으나, 그는 유베의 강등 이후인 9월에 잔류선언을 했습니다: '1월에 팔려 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난 여기서 행복합니다." 그는 선언했습니다.

    그의 원래 백넘버는 16번이였으나, 그는 07-08시즌에 8번으로 번호를 바꾸었습니다. 한 시즌만에 8번에서 16번으로 돌아갔지만 말입니다. 2007-2008시즌에 약간의 부상때문에 고생하긴 했으나, 유베에서의 그는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선수입니다.

    국제대회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나, 카모라네시는 조부모를 통하여 이탈리아계 혈통을 가지고 있었고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왔습니다. 이것이 그가 이탈리아나 아르헨티나 두 국가중 하나를 택해 국가대표팀에서 뛸 수 있게 하는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주리'가 먼저 그에게 관심을 가졌고, 2003년 2월 12일, 그는 포르투갈과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가졌습니다. 이탈리아가 1-0으로 그 경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감독은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였고. 카모라네시는 유로 2004에서도 이탈리아팀을 위해 뛰었고, 2006 피파 월드컵 우승팀인 마르셀로 리피의 이탈리아팀에서도 뛰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41경기를 뛰었으며, 4골을 넣었습니다.

    카모라네시는 이탈리아를 위해 뛴 첫번째 유벤투스 선수가 아닙니다. 오마르 시보리가 그 이전에 있었습니다.

    독일과의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이기고, 이탈리아가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이겼을때, 카모라네시의 팀메이트 마시오 오도가 그의 긴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랐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2008 유로 명단에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written by 서현시대
  • i'manapple 15. 04. 01 22:06
    카숙모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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