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1985^&비첸자^&바죠는 1982년, 15살의 나이로 세리에 C1 소속의 비첸자에 입단함으로써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해에 비첸자는 코파 이탈리아 세리에 C에서 우승했다. 비첸자 시절에 그는 84/85 시즌 세리에 C1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세리에 B로 승격했다. 그가 슬라이딩 태클 때문에 왼쪽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도 이 때였다. 수술을 잘 했나 싶었으나 훈련 때 또 그쪽 무릎 부상이 도져 재수술을 받았는데, 이 때 자그마치 220바늘을 꿰맸다고 한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607^&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607,&1985^&1990^&피오렌티나^&1985년, 피오렌티나가 그런 그를 낚아챘다. 초기에는 자꾸 터지던 부상 문제 때문에 출전 명단에서 빠져 있었지만, 바죠는 그곳에서 재기하여 피렌체 팬들이 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가운데 한 명이라고 꼽을 정도로 비상했다. 바죠가 피오렌티나에 입성한 첫 시즌, 팀은 리그에서는 5위, 코파 이탈리아는 4강까지 진출했다. 그의 세리에 A 데뷔는 1986년 9월 21일 삼프도리아전이었으며, 1986년 5월 10일 디에고 마라도나의 나폴리를 상대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켜 첫 리그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날의 경기는 나폴리가 팀 역사상 처음으로 스쿠데토를 확정지은 경기로 유명하다. 88/89 시즌에는 피오렌티나를 코파 이탈리아 8강까지 이끌었는데, 이 대회에서 총 9골을 기록, 13골을 기록한 미래의 팀 동료 비알리에 이어 득점 순위 2위가 되었다. 피오렌티나는 8강에서, 그 해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 삼프도리아에 패해 탈락했다. 또한 그 해 리그에서는 15골을 기록해 득점 부문 3위에 랭크되었고, 리그를 7위로 마감했으며 UEFA 컵 티켓을 놓고 벌인 로마와의 일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1990년, 그는 피오렌티나를 UEFA 컵 결승까지 이끌었고, 거기에서 그가 미래에 가게 될 클럽 유벤투스에게 패했다. 89/90 시즌 그는 마르코 반 바스텐에 이어 득점 순위 2위에 올랐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628^&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628,&1990^&1990^&이탈리아 대표팀, 이탈리아 월드컵^&바죠의 첫 월드컵은 1990년 월드컵이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주로 교체멤버였지만, 출전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퀄리티와 플레이메이킹 능력 그리고 득점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두 골을 넣었는데, 그 중에는 "이 대회의 골"로 뽑힌 체코슬로바키아전 골도 있다.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 그리고 수비수를 몇몇 따돌린 이후 기록한 득점이었다. 이 골은 추후에 투표를 통해, 월드컵 사상 7번째로 위대한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4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에 패배했다. 바죠는 이 때 PK를 성공시켰다. 3-4위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바죠는 이탈리아로서 매우 중요한 페널티를 얻어냈다. 비록 그가 팀의 PK 키커였지만 그는 팀 동료 살바토레 스킬라치에게 양보했고, 이를 득점으로 연결한 스킬라치는 대회 골든슈를 차지했다. 그도 역시 이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고, 2-1로 승리해 이탈리아는 3위를 차지했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705^&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705,&1990^&1995^&유벤투스^&바죠는 피렌체 팬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1990년에 10m 유로라는 가격으로 유벤투스로 팔려갔다. 당시에 10m 유로의 이적료는 월드 레코드였다. 또한 그는 10번을 달았다. 이 이적 직후, 피렌체의 거리에서는 시위가 벌어졌고, 여기서 50명이 부상당했다. 바죠는 피렌체 팬들에게 "난 이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1990년에 유벤투스 소속으로 피오렌티나와 경기를 할 때, 그는 페널티킥 차는 것을 거절했다. 그리고 교체아웃될 때 그는 팬이 경기장에 던진 피오렌티나 스카프를 주워 키스했다. 그는 "내 맘속에는 항상 보라색이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라색은 피오렌티나의 색이다. 유벤투스 시절, 그는 1992년부터 1995년 사이에 다섯 번의 중대한 부상을 겪었다. 각각 갈비뼈 골절, 건염, 사타구니 부상, 오른쪽 무릎 힘줄 부상, 그리고 왼쪽 무릎 부상이었다. 유벤투스에서의 첫 시즌, 그는 리그에서 14골 12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소속팀은 실망스럽게도 7위를 기록해 유럽 대항전 출전에 실패했다. 비록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에서는 4강까지 진출했고, 여기서 바죠가 득점왕을 기록하긴 했지만. 컵 위너스 컵에서 유베를 무너뜨린 팀은 일명 "드림팀"이라고 불리던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는 결승에 진출해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패했다. 유벤투스는 또한 코파 이탈리아 8강에서, 그 해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 로마에게 패했다. 또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도 나폴리에게 패했다. 이 경기에서 바죠는 팀의 유일한 득점자였다. 이 실망스러운 시즌 이후 유베 감독 루이지 마이프레디는 경질되고,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유베에서의 두 번째 시즌, 바죠는 리그에서 18골 8어시스트를 기록해 반 바스텐에 이어 득점 순위 2위에 올랐다. 팀은 두 번의 콩을 먹었다: 리그에서는 파비오 카펠로의 AC 밀란에 밀렸고, 바죠가 1차전에서 PK로 득점을 올렸던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는 파르마에게 밀렸다. 이 시즌에는 지난 시즌의 결과 때문에 유럽 대항전에 나가지 못했으나, 리그 2위를 기록했으므로 다음 시즌 UEFA 컵 출전권 확보에 성공했다. 92/93 시즌 그는 주장이 되었고, 이 해에 UEFA 컵 결승에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해 커리어에서의 유일한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득점 부문에서는 2위에 올랐다. 유벤투스는 또한 코파 이탈리아에서 4강에 올랐으나, 그 해 코파 우승을 차지한 지역 라이벌 토리노에게 원정 다득점에서 밀려 탈락했다. 세리에 A에서는, 바죠의 환상적 골이 터지는 등 그 해 리그 우승팀 밀란을 3-1로 꺾기도 했지만, 결국 4위로 마감했다. 리그에서 자신의 세리에 A 역대 최다골인 21골 6어시스트를 기록, 득점 부문에서 2위, 제대로 콩라인을 탔다. 콩을 깐 이는 26골을 터뜨린 쥬세페 시뇨리였다. 하지만 바죠는 이 시즌의 활약으로 올해의 유럽 축구선수 상과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30골을 넣기도 했다. 이는 개인 최다 기록이다. 93/94 시즌 유벤투스는 3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한 밀란에 밀려 또 리그 2위를 기록했고, 바죠는 17골 8어시스트를 기록해 득점 3위에 올랐다. UEFA 컵에서는 8강에서 칼리아리에게 나가떨어졌고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2라운드에서 베네치아에 일격을 당했다. 이 사태 이후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는 잘리고 마르첼로 리피가 감독이 되었다. 94/95 시즌 바죠는 시즌의 대부분을 부상병동에서 보냈다. 무릎 부상 때문에 자그마치 5달 간 잔디를 밟지 못한 것이다. 리그에서 8어시스트를 올렸지만, 득점은 단 8골에 불과했다. 그러나 밀란전 환상적 헤딩골을 포함, 크레모네세전, 파르마전, 레지아나전 등에서 팀에 꼭 필요한 골을 올려줌으로써 팀의 스쿠데토 달성을 도왔다. 그 해 리그 2위를 차지한 파르마를 상대해서는 3개의 도움을 올리며 팀의 4-0 승리에 기여했다. 이 스쿠데토는 90년대에 유벤투스가 따낸 첫 리그 타이틀이었다. 또한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2득점과 몇 개의 도움을 기록, 유베의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팀이 다시 한 번 UEFA 컵 결승에 오르는 것을 도왔다. 대회에서 총 4골을 넣었고, 4강에서는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멋진 프리킥 골을 작렬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코파 이탈리아 결승 때 꺾었던 파르마를 UEFA 컵 결승에서 다시 만나, 이번에는 패배했다. 시즌 총 14골을 기록했다. 유벤투스에 있는 동안 그는 115골을 넣었고, 그 중 78골은 리그(세리에 A)에서 기록한 것이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731^&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731,&1994^&1994^&이탈리아 대표팀, 미국 월드컵^&

바죠는 94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춧돌이었다. 등번호 10번을 달았으며, 시작이 좋지 못했던 조국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이탈 리아 감독 아리고 사키는 키플레이어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포메이션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비난받았다. 바죠의 롤도 제대로 정해주지 못했다(스트라이커인지, 트레콰르티스타인지, 세컨드 포워드인지.. 그는 결국 포워드 자리에서 플레이했지만 프리 판타지스타 롤로 뛰었다). 아일랜드를 상대로 한 첫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실망스럽게도 0-1로 졌다. 바죠는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회복해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베스트 컨디션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동료들에게 여러 번 좋은 패스를 주었다. 경기 직후 이탈리아 언론들은 바죠가 공을 따내서 공격을 전개하기 위해 미드필드 지역으로 내려갔을 때 바죠를 제대로 서포트해주지 않은 나머지 선수들을 비난했다. 노르웨이와의 2차전에서 바죠는 한껏 고무된 듯했다. 시작하자마자 몇몇 찬스를 만들어냈고 득점에도 성공할 뻔했다. 그러나 이른 시간에, 이탈리아 골키퍼 지안루카 팔류카가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공을 손으로 건드려 퇴장당했다. 사키는 루카 마르케지아니를 투입하며 바죠를 빼 버렸다. 이 결정에 팬들은 난리가 났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바죠는 사키가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어찌어찌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바죠는 조별예선 3차전 멕시코전에서도 득점에 어려움을 겪었고, 팀은 1-1로 비겨 조 3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3 위 팀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에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그러나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바죠는 폼을 되찾았고, 그 이후의 경기들에서 5골을 뽑았다. 16강에서는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2골을 넣었다(경기 종료 2분 전 골문 왼쪽 구석으로 찬 땅볼 강슛으로 동점골, 연장전에서 안토니오 베나리보의 로빙패스를 상대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파울을 범하며 얻어낸 PK 골). 바죠는 8강에서 스페인을 상대로도 골을 넣었다(경기 종료 3분 전 시뇨리의 어시스트를 받은 결승골. 골키퍼를 뛰어넘어 드리블해갔으며 오른쪽 모서리에서 땅볼 강슛 골이었다). 그는 디노 바죠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었다(전반 25분). 4강에서는 불가리아를 상대로 2골을 넣었다. 첫 골은 왼쪽 사이드에서의 스로인을 받아 상대선수 두 명을 제끼고 감아찬 슛으로 오른쪽 구석에 꽂히는 골, 두 번째 골은 알베르티니의 로빙패스를 받아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왼쪽 구석으로 찬 하프발리 슛 득점. 결승전, 브라질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바죠는 제 컨디션이 아닌 듯했다. 4강에서 약간의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 차례 상대 골키퍼 클라우디오 타파렐을 시험했고 동료에게 좋은 패스를 몇 번 주기도 했다. 경기는 연장전이 끝나고도 0-0이었다. 그는 승부차기의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섰다. 그러나 그의 슛은 크로스바를 넘어갔고 브라질이 월드컵 타이틀을 가져갔다. 아마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반전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전에 프랑코 바레시와 다니엘레 마싸로도 실축을 했었다. 바죠는 득점 부문에서 2위에 올랐고 대회 최고의 선수 3명 안에 들었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들어갔다. 발롱도르 투표 2위에 올랐고, FIFA 올해의 선수상 투표는 3위를 기록했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757^&footballd^&풋볼드^&20140315161846,&1995^&1997^&AC밀란^&1995년에 리피, 베테가, 그리고 움베르토 아녤리는 바죠가 더 이상 유벤투스의 플랜에 없으며, 이제 떠오르는 젊은 스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육성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밀란의 회장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강한 요구로, 바죠는 일부 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란에 팔려갔다. 이 때 그는 인테르,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블랙번 로버스와 링크가 났지만, 구체적인 협상을 제시한 쪽은 없었다. 그는 전 소속팀 피오렌티나와의 타이틀 결정전에서 PK 득점을 올려 승리를 이끄는 등, 밀란의 세리에 A 우승을 도왔다. 코파 이탈리아는 8강에서 탈락했다. 밀란에서의 첫 시즌 바죠는 10골을 넣었고 그 중 7골이 리그 득점이었다. 또한 리그에서 10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서로 다른 팀 소속으로 2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한 여섯 명의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나머지 5명은 지오반니 페라리, 리카르도 토로스, 에랄도 만신, 알레산드로 오를란도,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안드레아 피를로). 또한 96/97 시즌 그는 챔피언스 리그에도 데뷔했고, 그 해 챔스에서의 첫 골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실망스럽게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1996년의 수페르코파 이탈리아에서 바죠는 벤치를 지켰고, 밀란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밀란에 있던 동안 바죠는 적은 출전 시간 때문에 감독 파비오 카펠로와 갈등의 골이 깊었다. 카펠로는 바죠가 재능있는 선수인 건 맞지만, 90분을 온전히 소화하는 건 더이상 무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카펠로가 떠나고 새 감독 오스카 타바레즈가 부임하자, 비록 부임 초기엔 현대의 피지컬 게임에는 가볍고 창의적인 선수가 제대로 활약할 수 없다고 믿은 타바레즈와의 의견 충돌이 있긴 했지만, 출전시간에 대한 갈등은 점차 나아지는 듯했고 바죠는 종종 웨아 옆에서 트레콰르티스타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타바레즈가 거둔 성적은 좋지 않았고, 결국 96/97 시즌 중 아리고 사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사키는 94 월드컵 당시 바죠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그는 바죠에게 출전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고, 밀란은 리그 타이틀을 지키는 데 실패했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8강에 머물렀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826^&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826,&1997^&1998^&볼로냐^&1997년, 바죠는 볼로냐로 이적해 커리어의 부활을 꿈꾸었으며 팀의 강등을 막고 98년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승선하기를 원했다. 이 시즌에 그는 22골 8어시스트를 기록, 리그 개인 최다골을 성공시키며 볼로냐를 리그 8위에 랭크시켰다. 그리하여 팀은 인터토토 컵과 UEFA 컵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코파 이탈리아 16강 진출에도 기여했다. 볼로냐 시절 바죠는 당시 감독 렌조 울리비에리와 불화를 겪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특히 그 시즌 리그 챔피언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바죠를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울리비에리는 바죠와 어떤 불화도 없었다고 강조했고, 또한 그를 "재능 있는 선수"이며 "쩌는 남자"라고 치켜세웠다. 한편 시즌 초에, 바죠는 파격적이게도 그의 아이콘인 포니테일을 썽둥 잘라버려, 그의 부활을 공표했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844^&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4906,&1998^&1998^&이탈리아 대표팀, 프랑스 월드컵^&국가대표팀에 오래도록 승선하지 못한 끝에, 바죠는 월드컵 조별예선 폴란드전을 앞두고 감독 체사레 말디니에 의해 다시 소집되었다. 그 경기에서 바죠는 결승골을 터뜨려, 이탈리아가 월드컵 본선진출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 그 이후 그는 그 시즌 볼로냐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98 월드컵 본선 22명의 대표팀에 승선했다. 바죠는 밀란에서 그리고 당시 대표팀에서 달기 시작했던 18번을 달았다. 10번은 유벤투스에서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던 젊은 스타 델 피에로가 넘겨받았다. 첫 경기 이탈리아의 상대는 칠레였다. 델 피에로는 부상에서 회복하는 중이었기에 바죠는 비에리와 더불어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탈리아의 첫 득점은 바죠의 어시스트를 받은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발끝에서 나왔다. 1-2로 뒤지던 경기 막판에 바죠의 크로스가 페널티 영역에서 칠레 수비수 로날드 푸엔테스의 손에 닿았고, 이 PK를 바죠가 성공시켜 2-2가 되었다. 이 골로 그는 3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한 첫 이탈리아 선수가 되었다. 카메룬전에서 바죠는 디 비아지오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득점도 하나 기록했는데, 이 득점은 오심으로 인해 인정되지 않았다(오프사이드로 판정해버렸다). 이 경기에서 바죠의 활약상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는데 이는 상대 수비의 거친 압박 때문이기도 했다. 바죠의 대회 두 번째 골은 오스트리아전에서 나왔다. 필리포 인자기와 환상적인 원투패스를 주고받은 이후에 나온 결승골이었다. 그는 또한 인자기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는데, 이 득점마저도 오심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또 오프사이드로 판정해버렸다). 이 득점으로 바죠는 월드컵에서 9골을 기록, 이탈리아인으로서 최다골 타이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 골은 그가 이탈리아 대표팀 멤버로서 기록한 마지막 득점이기도 했다. 16강 노르웨이전에선 바죠는 델 피에로가 활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8강에서 그 대회 우승팀 프랑스와 맞붙은 바죠는 후반에 교체투입되었다. 정규시간이 종료되었는데도 0-0이었고, 바죠는 연장전에서 좋은 발리슛으로 골든골을 기록할 뻔했다. 경기는 또다시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이번엔 바죠는 킥을 성공시켰다. 그럼에도 승부차기에서 웃은 쪽은 프랑스였다. 이탈리아 감독 체사레 말디니는 프랑스전에서 아직 회복 중인 델 피에로를 선발로 뛰게 하고 바죠를 나중에 투입시킨 결정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바죠의 폼이 아무래도 더 좋았으며 대중에게 받는 압박도 덜했다). 이 때의 교체가 두 선수 간 라이벌 의식을 만들어냈다는 몇몇 소문도 있다. 그러나 이런 소문에도 물과하고, 바죠와 델 피에로는 지금까지도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바죠는 인터뷰에서, 그는 델 피에로가 유벤투스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녹슬지 않는 재능에 대해 지대한 존경심을 품고 있으며, 둘 사이에 불화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델 피에로 역시 인터뷰에서, 바죠와 지단은 그가 같이 뛰었던 선수들 가운데 단연 최고였으며 그 둘은 "기술적으로 뛰어났고 그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고 화답했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5011^&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5011,&1998^&2000^&인테르^&98 월드컵 이후, 바죠는 인테르와 계약했다. 이는 결국에는 불행한 이적임이 드러났다. 팀이 계속 부진하고 숱한 감독 교체가 단행되기를 수 차례(이 기간 중에 잘린 감독 가운데는 루이지 시모니와 로이 호지슨도 있다), 94/95 시즌 유벤투스에서 함께했던 바죠의 전 감독 마르첼로 리피가 99/00 시즌 인테르의 새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그러나 인테르의 리피는 바죠를 선호하지 않았으며, 시즌의 대부분은 그가 제외되었다. 생각해보면 리피가 지휘봉을 잡았던 94/95 시즌이 끝나고 1995년에 그는 밀란으로 팔려가는 것이 선택된 바 있다. 아무튼 경기 출장 시간 자체도 적었고 1군에서도 제외되자 국가대표팀에서의 자리도 잃었으며, 그는 유로 2000 때 국가대표에 소집되지 못했다. 그의 자서전에서 바죠는, 리피가 인테르의 어떤 선수가 자신에게 반감을 가졌느냐를 말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자신은 이를 거부했으며, 이후 리피는 자신을 사실상 내다버렸다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인테르 시절 그는 98/99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단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기억에 남을 만한 활약을 하기도 했다. 대회에서 총 4골을 넣었고 팀을 8강까지 진출시켰지만, 거기에서 대회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나 패배했다. 리그에서는 5골 10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인테르의 코파 이탈리아 4강 진출을 도왔다. 4강에서는 대회 우승팀 파르마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리그에서는 실망스러운 8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99/00 시즌, 인테르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라치오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바죠는 이 시즌에 많이 뛰지 못했다. 리그에서는 단 4골,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1골만을 기록했고, 유럽 대항전에는 나가지 못했다(전 시즌 8위). 하지만 중요한 시점마다 골을 넣은 덕에 소속팀을 리그 공동 4위(파르마와 함께)에 자리하는 데 기여했다. 그가 인테르에게 한 마지막 중요한 기여는 UEFA 챔피언스 리그 마지막 한 장의 티켓을 놓고 맞붙은 파르마를 상대로 결정적인 2골을 넣은 것이었다(하나는 부폰을 무너뜨린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의 프리킥 골, 하나는 페널티박스 바깥에서의 왼발 하프발리 슛). 인테르는 파르마에 3-1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는 바죠가 보여준 프로페셔널리즘의 전형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인테르 회장 마시모 모라티는 팀이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해야만 리피가 감독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었고, 바죠의 고로 인테르는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게 되었으며, 이는 곧 그가 다음 시즌에는 인테르를 떠날 것임을 뜻했다(리피와 그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으므로).^&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5036^&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5036,&2000^&2004^&브레시아^&인테르에서 2년을 보낸 후, 2002 월드컵 대표팀 승선을 위해 그는 카를로 마쪼네가 이끄는, 한물갔었던 브레시아로 이적했다. 그의 목표는 팀을 강등으로부터 구해내는 것. 그는 10번 유니폼과 주장 완장을 받았으며 주로 트레콰르티스타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서도 부상의 마수에 시달렸지만, 00/01 시즌 10골 1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여러 가지 인상적인 골이 있었다. 피오렌티나전에서 한 번, 인테르전의 결승 PK 골, 나폴리전의 경기 막판 동점 프리킥 골, 델레 알피에서의 유벤투스전 경기 막판 동점골 등(피를로의 어시스트!). 레체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두 번째 골은 코너킥을 직접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브레시아는 7위를 차지해 인터토토 컵 출전권을 따냈고, 코파 이탈리아는 8강까지 진출했다. 8강에서는 그 대회 우승팀이자 바죠의 전 소속팀 피오렌티나에 패배했다. 2001년 인터토토 컵 결승전에서는 파리 생제르맹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대회에서 바죠의 유일한 골은 결승전의 PK 골이었다. 이러한 활약 덕에 그는 유럽 대항전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2001년 발롱도르 후보자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투표에서는 25위를 기록했다. 01/02 시즌, 그는 시즌 개막 후 9경기 동안 8골을 몰아쳐 세리에 A 득점 랭킹 1위에 자리했다. 불행하게도 그 후 바죠는 왼쪽 십자인대 부상을 두 번이나 당했다.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 그는 시즌 마지막 세 경기에 나왔는데, 이 때 걸린 회복 기간 76일은 (이 부상 면에서는) 최단 기간이다. 복귀 첫 경기에서 그는 벤치 멤버였고, 조셉 과르디올라와 교체투입되어 전 소속팀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두 골을 터뜨렸다. 첫 골은 왼발 바이시클 킥이었다. 또한 또다른 전 소속팀 볼로냐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도 득점을 올려, 팀을 강등으로부터 가까스로 구원해냈다. 브레시아는 코파 이탈리아 4강까지 올랐고, 4강에서는 그 대회 우승팀 파르마에 패했다. 바죠는 지안니 데 비아시 체제의 브레시아에서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02/03 시즌에는 12골 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마지막 시즌인 03/04 시즌에는 12골 1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의 세리에 A 200호 골은 2004년 3월 14일 파르마전에 터졌다. 이 골은 또한 브레시아를 다시 한 번 강등으로부터 구한 골로 의미가 있으며, 결국 시즌이 끝나고는 8위에 안착했다. 바죠는 30년 만에 나온 커리어 200득점자가 된 것이다. 그는 03/04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04년 5월 16일 밀란전이었고, 감독 지안니 데 비아시는 88분에 바죠를 교체 아웃시켜 그가 커튼콜을 받을 수 있게 배려했다. 산 시로의 8만 관중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는 세리에 A 통산 205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실비오 피올라, 군나르 노르달, 프란체스코 토티, 쥬세페 메아짜, 호세 알타피니에 이어 6번째로 많은 득점이다. 그가 은퇴할 당시에 그는 세리에 A 통산 득점 부문 5위였다. 2011년에 토티가 그를 6위로 밀어냈다(그리고 지금은 3위이며 곧 2위가 유력: 역자). 그가 4년에 걸쳐 달았던 브레시아의 등번호 10번은 그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커리어 통산 300호 골은 2002년 12월 16일 피아첸자를 상대로 3-1로 이겼던 홈 경기에서 터졌다. 통산 300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50년 만에 처음이다. 바죠는 통산 319골로 델 피에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이 부분은 2011년 9월에 작성된 것으로 지금은 이와 다를 수 있음: 역자), 실비오 피올라(364골)와 쥬세페 메아짜(338골)에 이어 3위다. 바죠가 브레시아에 합류하기 전만 해도, 브레시아는 40년 만에 다시 밟은 세리에 A 무대에서 다시금 강등을 모면키 어려울 거란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바죠가 이끈 브레시아는 결코 강등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은퇴하자마자 04/05 시즌, 브레시아는 다시 세리에 B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5055^&adrenalin^&아드레날린^&20140315045055이탈리아의 영웅, 원조 판타지스타졸 판타지한 스타일졸 판타지한 스타일22졸 판타지한 스타일22졸 판타지한 스타일
델 피에로 이전의 판타지스타.
Wrtten by 간지붐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