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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드레날린
  • 26. 04. 10

월드컵도 없고, 회장도 없다 — 이탈리아 축구의 민낯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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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FIGC 회장 선거를 둘러싼 권력 게임

 

등장인물 소개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몇 가지 이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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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레 그라비나 (Gabriele Gravina) — 퇴장한 자
2018년부터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 회장직을 맡아온 인물. 2021년 유럽선수권 우승이라는 빛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이후 두 차례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를 겪으며 결국 2026년 4월 2일 사퇴했다. UEFA 부회장직도 겸임해온 이탈리아 축구계의 실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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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말라고 (Giovanni Malagò) — 말라고파
전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CONI) 위원장.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성공적인 대회를 이끌며 다시 주목받은 인물이다. 아버지가 AS 로마 부회장 출신인 뼛속부터 로마 팬이지만, 정치권과 스포츠계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인맥으로 유명하다. 현재 차기 FIGC 회장 후보 1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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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마로타 (Giuseppe Marotta) — 말라고파
인테르 밀란 구단주. 유벤투스에서 오랫동안 스포츠 디렉터로 일하며 스쿠데토 9연패를 이끌었던 이탈리아 축구계 최고의 협상가 중 한 명. 현재 말라고 지지의 핵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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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오 시모넬리(Ezio Simonelli) — 말라고파

세리에A 리그 회장 "말라고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포츠 행정가"라며 공개 지지. 세리에A 20개 구단 중 약 16개가 말라고 지지로 기울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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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오 데 로렌티스(Aurelio De Laurentiis) — 말라고파

나폴리 회장 말라고 지지를 가장 먼저, 가장 공개적으로 선언한 인물. "말라고가 이탈리아 축구를 맡으면 2년 안에 다시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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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카를로 조르제티 (Giancarlo Giorgetti) — 임시관리파

이탈리아 경제부 장관. 멜로니 정부의 실세 중 하나로, 이번 FIGC 회장 선거에서 정부를 대표해 '임시 관리자 체제'를 밀고 있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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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아보디 (Andrea Abodi) — 임시관리파
이탈리아 스포츠부 장관. 그라비나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장본인이자, 조르제티와 마찬가지로 임시 관리자 체제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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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로티토 (Claudio Lotito) — 임시관리파
라치오 구단주이자 현직 상원의원. 이탈리아 축구계의 만년 '방해꾼'으로 통하며, 이번에는 말라고에 반대하는 소수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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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카를로 아베테 (Giancarlo Abete) — 캐스팅보트

2007년부터 2014년까지 FIGC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마추어 리그(Lega Nazionale Dilettanti) 회장. 전체 투표권의 34%라는 압도적인 지분을 가진 캐스팅보터.

 

세 번째 굴욕

 

2026년 3월 31일 밤, 보스니아의 소도시 제니차.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승부차기 끝에 보스니아에 패했다. 스코어는 4-1. 4번의 월드컵 우승을 자랑하는 이탈리아가 세 번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순간이었다.

 

2018년엔 스웨덴에, 2022년엔 북마케도니아에 막혔다. 그리고 이번엔 보스니아. 피파 랭킹 1위를 수차례 기록했던 나라가, 이 시대 역사상 가장 많은 48개국이 참가하는 월드컵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케이프베르데도, 퀴라소도 나가는 무대에.

 

다음날 스포츠부 장관 아보디는 "이탈리아 축구는 뿌리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며 그라비나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틀 후 그라비나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감독 가에나로 가투소, 대표팀 단장 잔루이지 부폰도 뒤를 따랐다. 이탈리아 축구의 수뇌부가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됐다.

 

누구의 문제인가

 

그라비나 한 명의 책임이었을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탈리아 세리에A는 유럽 마지막으로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게 2010년 인테르 밀란이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그 사이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는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세리에A는 정체됐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세리에A의 평균 선수 나이는 유럽에서 여덟 번째로 많다. 이탈리아 국적 21세 이하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는 비율은 역대 최저인 1.9%에 불과하다. 구단들이 외국 선수를 고용하는 편이 돈도 덜 들고 절차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유소년 육성에 투자해봤자 선수가 성장하면 이적을 막을 방법도 없다. 경기장은 낡고 좁다 — 지난 17년간 신축·개보수 경기장 수에서 이탈리아는 유럽 10위권 밖이다. 심지어 2032년 유럽선수권을 터키와 공동 개최하기로 되어 있는데, UEFA 세페린 회장은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으면 이탈리아에서 대회를 열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 축구는 화려한 과거의 유산 위에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3월 31일의 보스니아전은 그 가라앉음이 수면 밖으로 터져 나온 순간이었을 뿐이다.

 

누가 다음 회장이 되느냐

 

6월 22일, 차기 FIGC 회장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선거를 둘러싸고 이탈리아 축구계와 정치권이 복잡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재 구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말라고를 밀자 — 축구계의 선택

 

인테르의 마로타, 나폴리의 델로렌티스, 세리에A 리그 회장 시모넬리. 세리에A 20개 구단 중 16개가 전 CONI 위원장 말라고를 지지하고 있다. 빅클럽들이 주도하는 흐름이다.

 

이들이 말라고를 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포츠 행정가"(시모넬리)이고,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실적이 있다. 국제 스포츠 사회에서의 인맥도 탁월하다. 무엇보다 —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스포츠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말라고 지지파는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 '사람이 곧 프로그램'이라는 식의 논리다. 가장 공격적인 공약을 던진 건 델로렌티스뿐인데, 그가 주장한 세리에A 16팀 축소는 오히려 대부분의 구단이 반대하는 안이다. 아이러니하다.

 

임시 관리자를 세우자 — 정부의 입장

 

조르제티 경제부 장관과 아보디 스포츠부 장관은 선거 자체에 부정적이다. 기존 구조 안에서 새 회장을 뽑아봤자 진짜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정부가 임명하는 '임시 관리자'다. 이른바 '위로부터의 혁명'.

 

임시 관리자파가 그리는 개혁 청사진은 폭넓다. 세리에A 팀 수 축소로 경기 수를 줄이고 유럽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 스포츠 베팅 수익을 유소년 육성과 경기장 건설에 투자하겠다는 것. 낡은 국면 허가 기준을 강화해 재정 부실 클럽을 솎아내겠다는 것. 심판 프로화, 각 리그 자치권 조정까지. 개혁 목록은 방대하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FIGC는 사실상 여러 이해집단의 연합체다. 정관 변경은 반드시 총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세리에A를 18팀으로 줄이자는 논의는 2020년부터 시작됐고, 올해 2월에 17번째 수정안이 나왔다. 여섯 해가 지나도록 한 발짝도 못 나갔다. 임시 관리자가 온다고 이 방정식이 바뀌진 않는다.

 

게다가 UEFA는 정부의 노골적인 개입을 공식 경고했다. 만약 정부가 강제로 관리자를 임명하면 이탈리아 클럽들이 유럽 대회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2032년 유럽선수권 공동 개최권을 잃을 수도 있다.

 

말라고의 아킬레스건

 

말라고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아보디 스포츠부 장관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말라고가 CONI 4연임에 도전했을 때 아보디가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틀어졌다. 정부 입장에서 말라고는 '통제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변수가 하나 더 있다. 전체 투표권의 34%를 쥔 아마추어 리그(LND) 회장 아베테다. 그는 아직 중립을 지키고 있다. 아베테의 표심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판세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

 

6월 22일, 1차 투표에서는 75%를 득표해야 당선이다. 2차에선 3분의 2, 3차에서야 과반으로 낮아진다. 어느 쪽도 지금 당장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여러 차례 투표에도 과반이 나오지 않으면 — 그때 비로소 임시 관리자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 정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 교착 상태다.

 

구조가 문제다

 

이 모든 혼란의 근원에는 '동의권(diritto d'intesa)'이라는 제도가 있다. 각 구성 단체 — 세리에A, 세리에B, 레가 프로, 아마추어 리그, 선수협회, 심판협회 — 가 사실상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누구 하나가 반대하면 개혁은 막힌다.

 

그라비나도 이 벽을 넘지 못했다. 전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로베르토 바조가 900페이지짜리 이탈리아 축구 개혁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조용히 서랍 속으로 사라졌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 보고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일한 진짜 개혁은 CONI가 이 동의권 제도 자체를 없애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또 다른 싸움이다.

 

이탈리아 축구의 봄은 언제 오나

 

4번의 월드컵 우승, 수십 명의 세계 최고 선수들, 아름다운 전술의 나라. 이탈리아 축구의 유산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이탈리아는 월드컵도 없고, 회장도 없고, 개혁도 없는 상태다.

 

6월 22일 선거는 답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혼란의 서막이 될 수도 있다. 말라고가 당선된다면 스포츠 자율성은 지킬 수 있겠지만 개혁의 동력이 약할 수 있다. 임시 관리자가 오면 개혁을 시도할 수 있겠지만 UEFA의 제재라는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분명한 건 하나다. 누가 오든, 이탈리아 축구의 진짜 문제는 회장실의 이름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보스니아의 밤은 이탈리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탈리아 축구는 아직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다.

추천해주신 분들

COMMENTS  (2)
  • title: 18-19 홈 호날두줄무늬하이에나 26. 04. 11 03:59

    내 나라의 축협 때문에도 신경이 쓰이는 판국에 이 나라 축협도 이 모양이니...

    다르게 느껴지는 점음 한국은 독재? 때문에 문제고 

    여기는 민주주의?(동의권) 때문에 문제인 듯 싶네요. 

     

     

  • title: 02-03 어웨이 네드베드아드레날린 19시간 전

    뭐든지 너무 극단이 안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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