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댓글
최신 글
- 아케★
- 조회 수 557
- 댓글 수 4
- 추천 수 7
굴비
프랑스 풋볼 인터뷰 계속 :
"커리어 초반에도 난 절대 부담을 느끼지 않았어."
"우리 아버지는 많은 걸 요구하시는 분이었지만, 그건 내 플레이에 대해서였어.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아버지 덕분이야. 그는 내게 매일 향상되기를 원했지만, 내게 '너 축구 계속 안하면 이거 안사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아버지는 나를 경기나 트레이닝이 열리는 코르도바에 대려가곤 했어. (디발라가 15세 떄)돌아가신 후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게 어려웠어."
"나는 내 소속 클럽, 인스티투토에 6개월만 고향팀과 함께하며 가족과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어. 내 형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동기를 부여해줬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건 힘들었어.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일을 겪게되는 세상 첫사람도 마지막사람도 아니야. 물론 요샌 모든 게 더 쉽다해도."
(부친상을 당한 후 얼마되지 않아 그는 인스티투토에서 데뷔전을 가졌으며 보석이라는 뜻의 별명 '라조야'를 얻었습니다.)
"내가 나의 두 번째 경기에서 첫 골을 넣고 나서 코르도바의 한 기자가 그 별명을 지어줬어.무언가 값진 것이 될 징조로서. 하지만 내 친구들과 가족은 날 그냥 파올로라고 부르지."
(아르헨티나 2부리그에서 단 한 시즌을 보내고, 어린 디발라는 아르헨의 빅클럽으로 가지 않고 곧장 이탈리아의 팔레르모로 왔습니다.)
"나의 선택이 조금 특이했다는 걸 알아."
"아르헨티나의 빅 클럽에 간다면 정신적인 중압감을 알게되고 그 경험이 유럽에 대한 대비도 돼. 인스티투토도 빅 팀이었지만 2부리그였으니까."
"난 모국에 남아서 화려한 클럽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팔레르모가 접촉해왔고 난 스스로 '왜 안돼?'라고 생각했어."
"또한 난 카바니와 파스토레의 길도 생각했어. 가족들에겐 난 진전을 위해 가고싶다고 말했지."
"난 이탈리아 축구는 알았지만, 그곳에서 모든 경기를 뛸 거란 생각은 안해봤었어."
"아르헨 클럽으로 가지 않은 것? 정말로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2부리그에서 뛰던 한 해동안 우리에겐 킬메스(맥주와 해변이 유명한 도시), 로사리오(문화 예술이 유명한 도시), 그리고 리베르 플라테에서 뛰고 있던 트레제게가 있었거든."
"언제나 아르헨티나 빅 클럽을 꿈꿔왔지만, 팔레르모에 가자마자 그 모든 걸 잊게 되었어. 내가 더 오래 머물렀다면 복잡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시칠리아에서의 첫 두 시즌은 디발라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팔레르모는 그의 성장을 위한 큰그림을 그렸습니다.)
"놀라운 시즌이었지. 우린 5경기를 남겨두고 승격을 확정지었고 우리 3위 팀과는 14점차이였어."
"난 칼치오의 또다른 면을 발견했지. 그리고 그건 내가 유베와 계약하기 전이었던 그 다음 시즌에 도움이 됐어."
"팔레르모 강등 후 나는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라는 오퍼도 받았지만 거절했어. 그곳에 돌아가면 다시 유럽을 꿈꾸긴 힘들어져. 첫 도전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갖게 되니까."
"나는 남아서 싸우길 원했고 해냈다."
"난 오자마자 50골을 터뜨리고 떠날 것은 기대하지 않았어. 난 아르헨티나 2부리그에서 막 온 18살짜리였고, 유럽 최고 중 하나의 팀에서 배우고 싶었어. 쉽지 않을 거란 건 이미 알고 있었고."
(2015년 유벤투스에 왔을 때 무엇이 바뀌었는지)
"엄청나게 많은게 바뀌었지. 3개 대회에 출전하고, 경기는 더 어려우며 매일 총력을 다하는 훈련을 해. 모든 것을 얻기 위한 대비가 되어있어야하며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해. 훌륭한 챔피언들은 다 그렇게 하더라."
"부폰을 팀 동료로 둔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야."
"뭐라 표현할 말을 찾기 어렵지. 간단한 사실로 말하자면, 부폰과 함께 어딜 가면 스스로 말하게 돼. 저기 있는게 부폰이다. 내 옆에 전설이 있어."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어디서든 모두가 선망하지. 거의 마흔이 되었는데도 스무살처럼 훈련해. 그는 축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모범 사례야."
-
추천해주신 분들
- 추천
- 3
앞으로도 쭉쭉 성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