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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네드베드와 유벤투스의 전설... 과거, 현재, 그리고 장래에도 변치않을것 ...
GOAL 1/12(木) 20:05配信
지금현재도 네드베드는 유베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 (C)Getty Images
파벨 네드베드와 유벤투스. 이 양자의 전설은 2001년 여름에 시작되었다.
네드베드는 MF 지네딘 지단의 후부로써, 당시 이적료 700억 리라 (약 4000만 유로)로 라치오로부터 토리노로 이적했다. 그러나 이적후 수개월간은 팀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힘든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터닝포인트가 된것은 마르첼로 리피가 네드베드에게 있어서 경험한적이 없은 공격형 미들필더역할을 맡긴것이었다.
네드베드는 이 포지션으로 이동함으로 인해, 유벤투스의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귀중한 존재가 되어갔다. 이적후 1년째인 2001-02시즌에, 중심선수로써, 벌써 팀을 리그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1위였던 인테르가 (최종전에) 패함으로써 얻은 우승이긴했지만, 분명히 팀에 행운도 따르게 했다고 보여질수도 있다.
2002-03시즌에는 네드베드에게 있어서 더욱더 비약하는 시즌이 되었다. 2년 연속 리그우승을 차지한것 뿐만아니라, 이탈리아 슈퍼컵을 제패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유베를 견인했다.
결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것은 아니었다.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CL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전 세컨드 레그에서 엘로우 카드를 받은것일것이다. 경고누적으로 인해 결승전에 출전정지처분을 받아, AC밀란과의 결승전에 결장할수밖에 없었다. 본인자신에 있어서도 크나큰 유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네드베드가 훌륭한 활약을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해당년도의발롱도르를 수상했고, 커리어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기때문이다.
그이후에도, 네드베드의 기세는 멈출줄을 몰랐다. 감독이 파비오 카펠로씨로 바뀌었지만, 팀의 핵심선수로 활약했고, 그 이후 추가로 2회의 리그우승을 더했다.
하지만, 비극은 돌연 찾아왔다.
2006년 여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탈리아 축구계의 승부조작문제, 「칼쵸 스캔들(칼치오 폴리)」에 관여되어서, 유벤투스는 세리아B로의 강등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강등처분이 네드베드의 유벤투스에의 애정을 증명하는 형태가 되었다. 최단기간에 세리아 A로 복귀하는것을 목표로, 네드베드는 팀을 떠나지 않고 (세리아B에서) 재 출발하는것을 결단했다. 결과적으로 유벤투스는 1년만에 세리아 A무대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년도인 2008년에는 챔피언스리그 무대로의 복귀를 달성했다.
2009년 2월 26일, 36세의 네드베드는 시즌종료후 현역으로부터 은퇴할 의향이 있음을 발표했다. 유벤투스에서는 팀에 재적한 외국인 선수로써는 최고기록인 327경기를 출장했고, 통산 65골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은퇴함으로써 네드베드와 유벤투스의 관계가 종료되는일은 없었다. 유벤투스의 회장, 안드레아 아넬리씨에 의해서 유벤투스의 임원에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임원에 취임한 네드베드가, 그 역할을 기대이상으로 해낸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15년,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클럽의 부회장에 임명된 것으로 미루어볼때, 이는 명확하다.
선수시대와 현재와는, 변화한것이 몇가지 있다. 복장이 유니폼에서 정장으로 바뀌었고, 스파이크는 구두로 바뀌었다. 종횡무진 활약하는 장소는 피치위에서 클럽내부 및 관계자들이 모이는 회의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변치않는것이 있다. 그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아마 지금부터 미래에도, 유벤투스에 크나큰 애정을 쏟을것이라는것이다 라는 사실이다.
네드베드는 이미 유벤투스의 일부분이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탈리아 왕자를 견인하고, 그 역사를 쌓아올릴것이다.
文=Goal편집부 (이탈리아)
GOAL
*기사원문: http://headlines.yahoo.co.jp/hl?a=20170112-00000015-goal-socc
유벤투스 응원하면서 제일 좋아했던 선수가 네디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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