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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cAndR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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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일에 작성된 영문판을 기준으로 합니다.
원문 링크 : http://www.juventus.com/juve/en/news/2luglio2011_aus_rosetta
Juventus.com은 팬들에 의해 선정되어, 그 이름이 새로운 스타디움에 걸릴 50인의 비안코네리 레전드들을 계속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프로 베르첼리로부터 합류한 풀백인 비르지니오 '비리' 로제타는 흑과 백의 줄무늬를 입고 뛴 최초의 거성들 중 하나입니다.
1902년에 태어난 로제타는 그의 커리어를 스트라이커로 시작해, 1908년부터 1913년까지 5연패를 기록한 프로 베르첼리가 다시금 스쿠데토의 자리에 오르도록 도왔습니다. 그의 기여는 팀의 1921년과 1922년의 리그 우승으로 이루어졌죠.
1923년 그가 토리노에 도착했을 때, 그는 21세의 나이에 이미 두 개의 스쿠데토를 가졌고,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에 속했던 선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앞으로 16년이라는 (선수로는 13년) 긴 세월 지속되었고, 또 성공으로 점철된, 길고도 만족스러운 비안코네리와의 유대의 시작점이었죠. 첫번째 성공은 1926년에 유벤투스가 스쿠데토를 다시 획득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1905년의 최초의 스쿠데토 이후 21년 만이었습니다.
스쿠데토의 귀환은 비안코네리에 닥쳐 올 눈부신 미래의 단순한 맛보기에 불과했습니다. 1931년부터 카르카노(역자 주 : Carlo Carcano 1891~1967 / 유벤투스의 5연패 시대 중 앞의 4시즌 동안 감독이었으며 1928년부터 29년까지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의 팀은 다섯번의 연이은 스쿠데토를 획득하게 됩니다. "콤비-로제타-칼리가리스"의 전설적인 트리오가 강력한 수비로 승리를 보장하는, Quinquennio팀의 저명한 믿을맨들이었죠.
피치위에서 수차례 선보인 로제타의 훌륭한 전술 파악력은 클럽이 그를 감독으로 선임하는데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는 선수로 뛰는 와중에도 1935/36시즌부터 감독직을 맡아 세 시즌동안 그 역할을 수행했죠. 그의 선수 경력은 366경기 15골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감독으로서 그는 유벤투스가 1938년 최초의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풀백은 국가대표에서도 가치있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이탈리아를 위해 1920년 (앤트워프), 1924년 (파리),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참가했고, 마지막에는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로제타는 또한, 비록 그가 미국에 7-1로 승리한 16강 경기만 출전하긴 했지만 1934년의 월드컵도 우승했죠. 이 경기는 또한 그의 국가대표팀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비르지니오 '비리' 로제타는 36년전인 1975년 3월 3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까지도 흑과 백의 줄무늬를 입은 최고의 선수들 중 한 명으로써 기억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