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댓글
최신 글
- 아드레날린
- 조회 수 1254
- 댓글 수 2
- 추천 수 6
이탈리아의 보배로 칭송 받던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로베르토 바지오의 존재는 21세기가 된 오늘날에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피오렌티나에서 유벤투스로 이적. 유벤투스 시절의 빛과 그림자. 미국 월드컵과 이후의 경력. 모두 드라마틱한 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이탈리아 언론 <La Gazzetta dello Sport>는 13일 바지오와 긴 인터뷰를 감행한다.
현재에도 피오렌티나와 유벤투스는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보배를 유벤투스로 이적 시킨 일 때문이다.
그때에 대해 "20년간, 비올라(피오렌티나의 애칭)와의 이별한 것에는 강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피렌체에서는 폭동이 일어났었거든. 부상자도 나왔다"
"그때 만큼의 죄책감을 인생에서 맛 본 적은 없다. 현재도 가끔 자기 전에 그때의 일을 떠올려...." 라고 회고했다.
이적한 유벤투스에선 스쿠데토 1회, 코파 이탈리아 1회, UEFA컵(현 UEFA 유로파리그) 획득에 기여했다.
UEFA컵 획득의 공을 인정 받아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유벤투스 시절에 대해서는 "멋진 경험이었다"
"리피나 트라파토니 같은 명장과도 다시 만났고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들과는 사소한 일 때문에 관계가 끝나게 됐다. 그것이 대표팀에까지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라고 회고했다.
대표팀에서는 이탈리아 대표 "얼굴" 샛별로 나선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에이스로서 출전한 1994년 미국 대회.
고참으로 출전한 1998년 프랑스 대회. 모두 올드팬들에게는 추억의 대회일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많은 팬들이 바지오가 선출되길 원했다.
실제로 월드컵이 다가온 이탈리아 대표 경기에선 관중석에서 "로비 콜"이 쏟아졌다.
그러나 트라파토니는 선출하지 않았다. 그 때에 대해서 "충격이었다. 나는 월드컵 출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퍼포먼스도 나무랄 데 없었다"
"만반의 준비가 된 컨디션이었다. 연령적으로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전까지 출전한 어떤 대회에서도 우승에 바짝 다가서긴 했지만 우승 후보에 머물렀다"
"그래서 리벤지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트랍(트라파토니 감독의 애칭)는 나를 소집하지 않았다"
"실망이었다. 축구계를 떠날 생각도 했다. 분명히 칼쵸에 대한 열정을 잃었었다" 라고 실의에 빠졌었던 사실을 밝혔다.
바지오는 2004년에 현역을 은퇴. 마지막 피치가 된 산 시로에서 교체 아웃되면서 기립 박수를 받았다.
기자로부터 현재 유벤투스의 등번호 10번을 맡고 있는 FW 파울로 디발라에 대해서 묻자 "그는 믿을 수 없는 퀄리티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벤투스의 10번을 짊어지는 선수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자주 어려운 상황을 겪는다" 라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에게 성원을 보냈다.
계속해서 "(마우리찌오)사리는 어디서든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전술이 팀에 녹아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라고 분석했다.
유벤투스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