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H

  • six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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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3일 14시 39분
오늘 나는 전설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평소처럼 퇴근 후 밀라노의 한 공터에서 아이들과 따사로운 오후를 즐기던 중 뜬금없이 알 수 없는 번호로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왔다

"H, 토리노로 속히 와주실 수 있겠소??"

갑자기 무슨 일인지 의아해 아내에게 잠시 아이들의 그네를 대신 밀어달라 부탁한 후 잠시 밖으로 걸어나가 수화기를 계속해 붙들었다.

"우리의 D는 더 이상 토리노에서 볼 수 없게 되었소. 당신이 와서 이 곳의 어수선한 상황을 좀 봐주었으면 하는데."

사실 밀라노에 비해 토리노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동네 사람들의 말은 종종 들어오긴 했다. 옆집으로 얼마전에 이사온 동향 출신 M은 토리노에서 자기가 어찌나 한 가닥 했는지 한껏 뽐내다가도, 이따금씩 화를 내곤 하던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토리노 시절을 그리워할 때에는 나 또한 귀가 솔깃하곤 했으니까.

"H,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소. 이 곳 상황을 고려해서 당장 8/31까지 이 곳에서 서명하고 우리와 함께 일했으면 좋겠소."

회사 상사 만 전무에게 가서 급히 요청이 있어 이직해야겠다 말하며 사직서를 내밀었다. 만 전무는 미소를 숨기는 듯 어색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는 사직서를 수리했다. 흩날리는 회색빛 머리칼. 하얀 듯 잿빛마저 띄는 뭉게구름. 따사롭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던 로마의 햇살. 태양, 독수리, 그리고 하늘색. 콜로세움의 잔디 위를 포효하던 검투사. 그 청초한 하늘을 밀라노에서 검푸른 먹구름이 덮어버린 후 어느덧 한 해가 지났던가.

안방에서 이삿짐을 꾸리다 소파에 잠시 누워있는 틈을 가만 두지 못하는 아내가 문득 손바닥으로 등을 내리치며 물었다.

"안데르송, 당신은 언제나 이렇게 갑작스러워. 아이들이 이제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친해진지 몇 달이나 지났다고."

비행기를 타고 상파올로를 떠나 로마에 도착했던 그 날. 훈련장에서 지쳐 쓰러진 내 뺨을 감싸안던, 부드러우면서 푸르스름한 향이 진동하던 잔디는 두 눈으로부터 흐르던 땀을 머금었다. 전쟁터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올 때 벅차오르던 가슴이 향하던 곳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츄라스코도 아니었고, 향기로운 트러플 스파게티와 와인도 아니었다. 커다란 눈망울을 꿈뻑이는 아이들과 아내를 안아줄 때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로마제국의 풀밭 위에서 나는 최고의 검투사가 되겠다고.



차가운 금속을 몸에 두른 채 가볍게 몇 걸음 뜀박질 한 후 잠시 침대에 누워있다 깜빡 잠들었는지, 나를 톡톡 건드리며 마 사장이 내게 말을 건냈다.

"이제 이곳에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급하게 당신을 호출했는데 이렇게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갑시다."

오늘 전설은 H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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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ic Lv.33 / 17,769p

하하하

댓글 3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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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어떤 의미에선 전설이군요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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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M은 멜루가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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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5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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