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유벤투스(2017~)아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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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5일 01시 21분

I. 프롤로그

juventus triest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2020년을 맞이해서 그간 새로오신 분들의 간접 경험을 위해, 직접 목격하신 분들의 추억을 되살려보기 위해 유벤투스의 정상 복귀를 알린 첫 시즌인 2011-12시즌의 주요 이슈를 정리해보는 글을 써보고자합니다. 평범한 중위권 팀으로 추락해가던 팀을 다시 일으키는데 어떤 과정과 인물이 있었는지 유용한 정보를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장문의 글을 쓰는 건 처음이라 읽기 편한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II. 시즌 시작 전

juventus 2010-11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 참혹했던 이전 시즌과 와신상담
    7위. 유벤투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랭크입니다만1) 2009-10, 2010-11시즌을 연달아 이런 저조한 순위로 마쳤습니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회자하는 페짜델2) 시기는 클럽의 미래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시대였습니다. 기대를 갖고 영입했던 많은 선수들이 부진하거나 시즌 중 부상으로 기량이 크게 저하되는 등, 클럽 내외적 환경에서 한숨만 나오던 시기입니다. 이때 품고 있던 유일한 희망은 보드진 교체와 건설 중인 새 스타디움이었습니다. 2010년 새로 선출된 회장 안드레아 아넬리는 2020년 현재까지 10년동안 과감하고 진보적인 일처리로 클럽을 재건해 나가고 있습니다.


     

  2. 안토니오 콘테 선임
    2011년 5월 31일 콘테 선임 소식이 들리자 유베 팬들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첫째, 페라라의 경우처럼 클럽 레전드라고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과 둘째, 콘테는 세리에 A에 초임이라는 것 때문이었죠. 콘테는 세리에 B에서 바리와 시에나를 승격시킨 경력이 있었고, 주로 쓰는 전술은 지금 알려진 3-5-2 장인의 이미지와는 달리 꽤나 공격적인 4-2-4였습니다.

    "아직 안 끝났으니 잘 들어라.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다는 목표에 집중해라. 이 팀의 역사 속에 있던 자리다. 이번 시즌 3위안에 못 든다면 죄악이야." -안토니오 콘테3)

    콘테가 갖고 있던 강점은 명확했습니다. 말 한마디로 모든 선수를 군말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카리스마와 클럽의 황금기에 주장 완장을 차고 있었다는 근본.4) 또한 선수단 내 최고참이자 주장 콘테 아래서 함께 뛰었고 현역 주장을 역임 중이었던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와 지안루이지 부폰이 묵묵히 감독의 지시에 따라주며 무게중심을 잡아준 것도 콘테의 전술 실현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3. 이적 시장
    피를로 자유계약 영입은 정말이지 서프라이즈 그 자체였습니다. 피를로와 알레그리 사이에 불화가 있다, 밀란이 세대교체를 단행한다는 이야기가 숱하게 들려왔기에 어디로든 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행선지가 수 십년간 머리 맞대고 우승을 겨뤘던 유베였으니까요. 오자마자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MVP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유베가 30대를 넘긴 클래스 있는 선수를 영입해 신통하게 써먹었던 이적시장 전략의 첫 케이스로 봐도 될 것 같네요. 

    아르투로 비달이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활약한 후, 바이에른 뮌헨 이적이 거피셜 급으로 나돌던 중 급선회되어 단돈 10.5m 유로에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습니다. 분데스리가까지 챙겨보는 헤비팬이 아닌 한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신예는 이 시즌부터 유벤투스의 엔진으로 활약하며 전투적이면서도 정교한 스킬을 가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칩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쓸만한 풀백은 워낙 귀한 자원인데다, 특히 유벤투스의 오른쪽 풀백은 마르코 ‘더 헬’ 모따로 대표되는 잔혹사가 참담했습니다. 이에 3시즌을 라치오에서 보내며 주전으로 활약했던 리히슈타이너를 유벤투스가 10m 유로에 손에 쥐었습니다. 지금도 올드 팬들이 언제나 가장 걱정하고 있는 곳인 풀백 포지션을 정말 잘 해결해준 자원이었습니다. 우월한 체력과 활동량으로 콘테의 3-5-2에 큰 보탬이 돼줬습니다.

    그 외 유베의 땜지스타 시모네 파도인이 이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합류했습니다. 공격 쪽에선 마트리, 콸리아렐라를 완전영입하고 부치니치를 로마에서 데려왔으나 무게감이 떨어지는 건 여전했습니다. 그리하여 겨울에 공격력 보강을 위해 무려 보리엘로를 임대해옵니다. 네덜란드의 흑로벤으로 불리던 윙어 엘리야를 시즌 초에 영입했으나 전혀 적응을 못한 건지 콘테에 눈에 들지 못하며 4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적했습니다.

    또한 방출 면에서는 그야말로 스쿼드 대정리가 있었습니다. 살리하미지치, 티아구, 멜루, 시소코, 알빈 엑달, 알미론, 마르티네즈, 그리게라, 토니, 모따 등 리빌딩을 위해서 대대적인 가지치기를 단행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오빈코, 란자파메, 파스콰토, 임모빌레 등 자국 유스 선수들을 중소 클럽에 임대 보내 출전 경험을 쌓게 했습니다. 저 이름들 중 반만 성공했어도 아주리 입장에선 큰 힘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4. 유벤투스 스타디움 개장
    2009년 첫 삽을 펐던 이탈리아 최초의 구단 소유5) 경기장인 유벤투스 스타디움이 완공됐습니다. 이전 홈구장이었던 델레 알피 부지에 건설했으며 그동안 유베는 스타디오 올림피코 디 토리노를 빌려 쓰고 있었죠. 델레 알피의 문제점으로 꼽혔던 것이 육상 트랙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02-03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레알 마드리드 전 같은 빅 매치에서조차 시야 문제로 맨 앞 몇 줄은 텅텅 비워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6) 어쨌든 새 경기장은 EPL의 여러 스타디움과 유사하게 관중석이 피치와 맞닿아있어 열광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고 당연히 모든 시설이 최신식이라 호평을 받았습니다. 경기장 최초의 골은 노츠 카운티와의 친선전에서 루카 토니가 넣었으며, 공식전 첫 골은 후술할 개막전에서 리히슈타이너가 넣었습니다. 경기장 규모는 41,000석으로 종전에 비해 20,000여 석이 축소되어 이에 대한 불만도 꽤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설계 당시 클럽은 ‘경기장 안에 10,000석이 비어있는 것보다 경기장 밖에 티켓을 못 구한 팬 2000명이 있는 것이 낫다‘는 뜻으로 최적 규모를 정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증축 가능성에 대해선 설계 담당자가 최대 20,000석이 가능하다고 언급했으나7), 수차례 이런 질문을 받았던 아넬리 회장의 답변을 들어보면 그럴 생각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유벤투스 스타디움에 자극받은 로마, 피오렌티나, 밀라노 두 클럽들도 새 경기장을 꿈꾸고 있지만 지금까지 착공에 들어간 클럽은 전무합니다. 


     

    del piero 2011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5. 델피에로의 마지막 시즌
    팀의 아이콘이자 신앙과도 같던 선수인 알레산드로 델피에로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날 것임을 발표했습니다. 93년 19살의 그가 유벤투스로 오는 모습을 보신 팬분들은 극히 드물 것 같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유베와 이 선수를 처음 알게 된 팬들은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것조차 상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시즌 내내 이별이 다가온다는 사실과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더불어 그와 아넬리 회장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명백히 주전이 아닌 상황이었음에도 묵묵히 최선임의 역할을 다하며 경기에 나올 땐 델피에로 다운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줬습니다.


     

II. 팀 특징

juventus 2011 squa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  4-2-4에서 3-5-2로
    앞서 말씀드렸듯이 세리에 B에서 초석을 다지던 감독 콘테의 주전술은 4-2-4였습니다. 리그 개막전만 해도 페페와 쟈케리니를 측면에 배치한 4-2-4를 그대로 들고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시즌을 진행하며 센터백 3명의 가공할 수비력과 다재다능함의 집합체였던 3명의 미드필더를 모두 쓸 수 있는 3-5-2 포메이션을 적용했고, 그 결과 리그 최저 실점으로 무패 우승을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비노보에서의 연습경기는 보통 우리의 승리로 끝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대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상대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11대0 경기를 시키며 45분동안 같은 움직임을 반복해서 시키며, 감독이 전술이 잘 맞는갑다 할 때쯤에 우린 토할 지경이다. -안드레아 피를로8)

    다만 콘테 역시 본인 전술에 대한 고집이 상당한 인물이었습니다. 주간 훈련에는 상대팀 없이 같은 플레이를 반복시켜 자신이 구상한 전술을 선수들이 완벽히 습득시키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자신의 전술을 가장 잘 실현시켜줄 선발 11명을 경기에 올린 만큼 퍼포먼스가 저조하더라도 이른 타이밍에 교체를 감행하는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27라운드 제노아 원정은 16개의 코너킥을 차고, 30여 개의 크로스를 올렸음에도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빈약한 공격력에 대한 지적과 맞물려 콘테의 옹고집과 교체자원 활용에 대한 지적이 팬들 사이에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맞춤형 4-3-3 전술도 가동시킬 줄 알았던 걸 보면, 제가 생각하기엔 콘테는 세리에 내에서는 본인의 전술만 잘 활용하면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bonucci 2011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2. 보누치의 성장과 BBBC 완성
    보누치는 전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 바리에서 공들여 모셔온 신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콘테가 쓰리백을 처음 경기에 올렸을 때는 미숙한 패싱과 포지셔닝에 불운까지 겹쳐 유달리 패스 미스로 턴오버를 제공하거나 상대 슛이 보누치를 맞고 들어가는 ‘굴절형 실점’이 잦았습니다. 팬들은 바리에서 그와 함께 뛰어난 활약을 보이다 인테르로 향한 수비수인 라노키아와 비교하며 장기적인 부진으로 실망스런 선수의 상징인 대괄호를 붙여 [보]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콘테는 수비수를 성장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었습니다. 자신의 위치와 빌드업 플레이에 익숙해진 보누치는 이 시즌 급성장하며 현재는 라노키아와는 비교를 거부하는 큰 선수가 되었습니다.  맨시티의 펩 과르디올라가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낼 정도죠. 2010년 겨울 푼돈 0.3m 유로에 데려왔던 바르잘리 또한 수비력과 체력 모두 각성해 당당한 주전으로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불세출의 골키퍼 부폰과 함께 이들을 BBBC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주전 수비수 세 명이 모두 리그 30경기 이상을 출전했습니다. 


     

    vidal marchisio 2011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3. 화려한 미드진과 빈약한 공격진
    수비력도 수비력이었습니다만 이 시절 유베의 가장 큰 강점은 중원에 있었습니다. 피를로가 그 정교한 패스 능력으로 경기에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더 이상 증명이 불필요한 수준이었고, 그런 그의 능력을 상대팀이 막고자 할 때는 활동량과 테크닉 모두 수준급이었던 두 파트너 비달과 마르키시오가 활로를 뚫어주고 득점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마르키시오와 비달이 리그에서 각각 9골, 7골을 넣은 것이 마냥 자랑일 수만은 없었는데요, 팀의 주전 투톱으로 기용됐던 마트리와 부치니치가 공격수치곤 적은 10골, 9골을 수확하는데 그쳤기 때문입니다. 부치니치는 공격진 중 꽤 좋은 선수였습니다만 여전히 알레제게 듀오 이후 아마우리 사태까지 겪은 유베 팬들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기엔 한계가 있는 선수였습니다. 마트리는 라인브레이킹에 특화된 선수였는데, 콘테 3-5-2에선 공격진 또한 빌드업 연계를 위해 내려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서 빛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시절 유베당사에서 마트리라는 이름은 기대를 걸 수 없는 유베 공격진을 묘사하는 고유명사처럼 쓰였습니다.


     

III. 주요 경기

  1. 11R 나폴리 3-3 유벤투스 : 저력을 보여주다
    개막 후 11경기9) 동안 7승 4무를 거두며 항상 선제골을 넣어왔던 유베에게 처음 위기가 닥쳤던 경기입니다. 전반 13분 피를로가 박스 안에서 라베찌에게 파울을 하며 나폴리의 PK가 선언됐지만, 함식이 처음 차 넣은 골은 킥 규정 위반으로 재시행, 다시 찬 공은 골대 위를 넘기며 유베의 첫 위기가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함식은 기어코 세트피스를 통해 선제골을 만들어냈고, 이어 판데프에게 추가 실점해 전반에만 2-0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후반전 빈 공간을 침투해 들어간 마트리가 추격골을 넣었으나 20분 만에 보누치의 서툰 클리어링 시도로 프리가 된 판데프가 3-1을 만들며 달아났습니다.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실점을 경험한 팬들은 좌절했습니다. 순항하고 있다지만 아직 정상을 도전하기엔 갈 길이 멀구나하구요. 하지만 가리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에스티가리비아가 유베 커리어 유일의 골을 이 경기에서 넣으며 곧바로 3-2로 따라붙었습니다. 그리고 하프라인에서 공을 탈취한 페페가 페널티 박스 안까지 단독 돌파 후 마무리까지 성공시키며 이 드라마틱한 무승부의 피날레를 장식합니다.10) 이 경기를 직접 본 팬들은 선수들의 투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수들에게도 분명 이번 시즌 해낼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된 경기였을 겁니다.



     

  2. 25R-35R 4연속 무승부 후 8연승 
    25라운드 밀란과의 무승부는 썩 괜찮은 결과였습니다. 당시 밀란은 선두를 달리던 전 시즌 챔피언이었던 데다, 문타리가 넣은 추가골이 오심으로 취소되는 사건도 있었고, 평상시보다 안 좋았던 경기력에도 무려 마트리가 89분에 원더골을 넣어 비기고 왔으니까요. 선두팀과 승점 차가 벌어지지 않았고 원정에서 승점을 챙겨온 것만으로 충분히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키에보, 볼로냐, 제노아와 연속해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맙니다. 선두 밀란과 승점차가 4점까지 벌어지고 뒤이어 강팀과의 경기가 연달아 예정되어 있던 상황이라 팬들은 무패 준우승을 진지하게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축구 모른다‘는 말은 이때를 위해 존재했던 말이었는지, 피오렌티나-인테르-나폴리로 이어지는 강팀 3연전을 10득점 무실점으로 완승하면서 유베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놨습니다. 특히 이 8연승 상대 중엔 위 3팀 뿐 아니라 로마, 라치오11)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소위 7공주라고 일컫는 팀들 대부분을 모두 우월한 경기력으로 쳐부수며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좀처럼 골문을 열지 못하던 약체 체세나전에서는 형편없는 기량으로 천대받던 보리엘로가 천금같은 결승골을 성공시키기도 헀습니다. 한편 이 경기 몇 주 후엔 피오렌티나에 가있던 전 유베 선수 아마우리가 밀란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꽃아 넣으며 유베를 선두에 올립니다. 이 사건을 유베당사 회원들은  보리엘로와 아마우리의 보은으로 명명했습니다.


     

    juventus lecce buff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3. 36R 유벤투스 1-1 레체 : 부폰의 실수
    하지만 이 승승장구는 다소 어이없고 불안하게 끝을 내립니다. 36라운드에서 만난 레체를 1:0으로 앞선 채 경기 막바지를 맞이했는데, 백패스를 받은 부폰의 트래핑이 이상하리만치 길었고 결국 최전방에 있던 공격수에게 골을 헌납하며 무승부를 기록하고 맙니다. 당시 골을 넣은 베르톨라찌 또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부폰의 실수를 위로할 정도로 부폰답지 않은 실수이자, 유베답지 않은 실점이었습니다. 3점이란 평행선을 달리던 밀란과의 승점 차는 이 한 순간 사고로 인해 1점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팬들은 가장 믿었던 선수가 시즌 말미에 저지른 실수에 의해 그토록 고대하던 리그 탈환의 꿈이 물거품이 될까 전전긍긍했습니다.  


     

  4. 37R 칼리아리 0-2 유벤투스 : 트리에스테의 밤
    그렇게 1점 뒤에 밀란을 두고 37라운드를 맞았습니다. 유베는 최종 성적 15위를 기록한 칼리아리를 상대했고, 전반 6분 만에 보누치의 정확한 패스를 받은 부치니치가 센스 있는 골을 뽑아내며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갑니다. 그리고 동시간에 밀라노에선 AC밀란 대 인테르의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밀라노에선 전반전을 1-1로 마친 뒤, 후반전에도 한 골씩을 주고받으며 2-2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유베는 74분 칼리아리의 자책골12)마저 터져 여유롭게 2대0으로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어 밀라노 소식에 눈과 귀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79분 밀리토가 두 번째 페널티킥으로 본인의 해트트릭을 완성시키며 3-2로 인테르가 역전했다는 뉴스에 트리에스테의 유벤티노가 환호했고, 정규시간 종료 3분 전 마이콘이 쐐기골을 넣어 4-2로 인테르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침착함을 유지하려던 유베 벤치도 눈에 띄게 설렌 모습이었습니다. 저녁 8시 45분 같은 시각 열렸던 두 경기, 90분이 모두 지나자 유베는 이기고 밀란은 졌으며, 이것은 곧 1경기를 남긴 채 4점 차, 즉 유베의 자력 우승이 확정됐다는 뜻이었습니다. 칼치오폴리로 박탈된 우승을 빼고 무려 9년 만에 유벤투스가 올드 레이디의 컴백을 알렸습니다. 콘테와 마로타가 얼싸안고 기뻐했고, 경기가 끝난 트리에스테 구장 잔디엔 광란의 관중 난입이 있었습니다.


     

IV. 결과

juventus campione d'italia 2012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 왕의 귀환
    이 시즌을 시작할 시점에 판단해본 유베는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우승권 전력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콘테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당시 스쿼드가 딱 7위 팀 수준이라고 느꼈고, 바쁘게 교통정리를 했음에도 콘테 스스로 이번 시즌 챔스권 진입, 3년 내 우승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콘테의 축구철학과 유벤투스 멘탈리티의 재건, 기민하고 합리적이었던 이적시장 전략, 유럽 대항전에 불참해 리그와 코파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환경, 밀란을 놓아버리기 시작한 베를루스코니와 트레블 이후 방만한 스쿼드를 운영한 인테르의 몰락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유베에게 값진 트로피를 선사했습니다. 또한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에도 결코 패배만은 당하지 않으며 23승 15무로 무패 우승을 달성한 것 또한 대단한 성과로 평가됩니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밀란은 우승에 유의미하게 도전해본 적이 없으며, 인테르는 이번 시즌 바로 이 콘테와 마로타를 데려와 비로소 10년 만에 다시 선두 경쟁에 발을 들였습니다. 한편, 이 시즌 성적을 토대로 진출한 12-13 챔피언스 리그는 콘테, 유베 보드진 모두에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한계를 느끼며 더 큰 꿈을 꾸게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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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쉬웠던 코파 이탈리아
    코파 이탈리아에 대해 콘테는 3시즌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습니다만13), 팬들은 94-95시즌 이룬 9번째 우승 이후 10번째 코카르다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아직 코파 이탈리아에선 누구도 두 자릿수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고 로마와 유벤투스 만이 통산 9회 우승을 기록 중이었으니까요. 아무도 달 수 없었던 은별14)을 다는 최초의 클럽으로 자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열린 코파 이탈리아 결승은 델피에로의 공식전 마지막 경기기도 헀습니다. 무패 더블이란 기록도 상당히 탐나는 것이었구요. 4강에서 밀란을 어렵게 꺾고 올라온 결승전에서 나폴리에게 2-0으로 완패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델피에로의 마지막을 금빛 트로피로 장식해주고 싶었던 소망은 결국 이룰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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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눈물의 시상식
    리그 최종전 아탈란타전 홈경기는 팬들에게 기쁘면서도 슬픈 자리였습니다. 이 경기가 끝나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흑백의 리본이 달린 우승컵을 드는 세레머니가 시작될 것이며, 동시에 이 경기가 끝나면 다시는 흑백의 유니폼을 입은 델피에로를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발로 나선 델피에로는 28분 만에 수려한 골을 넣으며 자신이 이 클럽에서 어떤 즐거움을 선사했던 선수였는지를 다시금 한번 보여줬습니다. 리히슈타이너의 자책골이 있었고, 시즌 내내 골 넣을 일이 없었던 바르잘리가 추가시간에 PK를 양보 받아 차는 재밌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57분 델피에로가 교체되는 순간은 이 시즌의, 또 유벤투스 역사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기립박수를 보내는 4만 관중 앞에서 심판진과 상대팀 선수와도 인사를 나누며 3분간 경기가 중단됐고, 교체로 경기장을 나와 자켓을 입은 후에도 델피에로는 경기장을 한바퀴 돌며 팬들의 선물을 한 아름 받아들고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경기가 종료되고 포디움이 설치되었습니다. 모든 선수와 스태프가 한 명씩 소개되고 각자가 받아마땅한 환호를 열렬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로피를 들 이 팀의 주장,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소개되자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네임콜과 환호, 응원가가 들려왔습니다. 19년 동안 팀에 헌신하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상징적인 이 선수는 팀의 부활을 알리는 트로피를 멋지게 들어 올렸습니다.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은 그의 마지막 리그 홈경기(2012년 5월 13일 아탈란타전)가 끝난 후에 그는 마침내 그때까지 참아오던 감정 앞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팀에 소속되고 싶었던 그의 자존심, 그리고 진정한 유벤투스인을 느끼고 싶었던 열망. 그는 홍수가 난 듯 드레싱룸에서 눈물을 흘렸고, 우리도 울었다. 그와 함께, 그를 위해 -안드레아 피를로15)

    팬들은 그가 받아야 할 정당한 예우로써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달라 요구했지만 델피에로 본인은 유벤투스의 10번은 또다시 누군가가 꿈꿀 수 있는 번호가 되어야 한다며 사양했습니다. 


     

V. 에필로그

juventus campione d'italia 2012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역 직후 다시 챙겨 보기 시작한 시즌이라 매 주 새벽 외국어 중계를 보며 지새웠던 때였습니다. 그때를 저와 함께 경험하신 분들에겐 한 편의 추억여행 같은 글이 되었으면 좋겠고, 기록으로밖에 이 시즌을 알 수밖에 없던 분들께는 당시 팬들이 느꼈던 희로애락을 조금이나마 공감하실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즌 우승으로 인해 재점화된 유베의 우승횟수 논란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끝으로 2012년 6월 30일, 델피에로가 본인의 홈페이지에 남긴 인사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제 끝이야. 나와 유벤투스 간의 계약은 오늘로 끝을 맺는다.

다들 알고있던 뉴스겠지만, ‘공식적’이란 건 또 다른 느낌이네. 내겐 슬픈 순간이 아니고 후회나 향수도 남기지 않았어. 더 이상은. 요즘엔 내 비안코네리로서의 마지막 시즌에 겪었던 모든 일을 되돌아볼 기화를 가졌어. 내가 그렸던 최고의 꿈이 실현됐던 순간으로 되돌아가보는 일이었지.

 

모든 순간, 모든 기쁨과 승리에 더해 심지어 쓰디쓴 순간도 있었지..! 오늘날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던 그런 순간들이 나의 마지막 경기에서 포옹을 나누는동안 침침해지고 사라지는 느낌까지 받았어. 이 사진 한 장이 모두 말해줄거야. 내가 어떤 순간을 살고 싶었는지. 5월 13일에 찍힌 사진은 내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도록 새겨졌어.

얼마 전 휴가를 떠나기 전에, 난 비노보의 내 라커를 비우고 트레이닝 캠프를 나서며 수  개월동안 타들어가는 더위에도 비에도 눈에도 팬 여러분이 나를 기다리며 사인이나 사진, 악수를 바라던 자리에 멈춰섰어...하지만 이번엔 내가 굿바이를 말할 차례이며 여러분이 내게 해줬던 것처럼 나도 여러분께 감사해.

 

선수들은 오고 가지만 유벤투스는 남아있어. 내 동료들이 아직 남아있고 그들에게 최고의 행운을 기원해. 난 언제나 가장 열렬한 팬일거야. 내 팬들이 이곳에 있고 여러분이 곧 유벤투스니까. 이곳에 내가 언제나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유니폼을 남겨뒀어. 난 언제나 그것을 가감없이 사랑하고 존중하길 원했어. 난 내 다음에도 다른 누군가가 언제나 내 이름이 새겨져있었던 10번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내년에 이 번호를 달 선수에게도 행복을 느낀다. 지금도 이탈리아나 세계 어딘가에선 누군가 이 유니폼을 입는 것을 꿈꾸고 있을거란 사실에 행복해. 그리고 내가 다른 챔피언, 모범, 전설들을 좇았던 것처럼 누군가 이곳에서 나의 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정말 영광일거야.

 

내일부터 난 이제 유벤투스 선수가 아니겠지만, 언제나 여러분들 중 하나로 남아있을거야.

 

이제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시기야. 19년 전 여름 그 날처럼 기대가 된다.

 

안녕, 여러분. 고마웠어.

 

알레산드로16)

 


 

1) 칼치오폴리로 인해 강제로 20위로 내려갔던 2005-06시즌을 제외하면, 유베 사상 최악의 성적은 1961-62시즌의 13위입니다. 
 

2) 페라라-자케로니-델네리로 이어진 이 시기의 감독. 의외로 유베는 세리에 승격 직후엔 두 시즌간 3위-2위를 기록하며 빠른 재건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2009-10시즌엔 34살의 나이로 델피에로가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3) http://football-italia.net/47994/pirlo-conte%E2%80%99s-words-assault-you

 

4)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인테르를 감독하고 있다는 것에 아이러니, 혹은 야속하다고 생각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5) 물론 이탈리아 법이 구단의 구장 소유를 허용하지 않아서 형식상으로는 시의회가 소유하고 유베가 99년 임대한다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구장에서 발생한 수익을 구단이 가져가고 임대료도 무상에 가까워 실질적으로 유베가 소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6) 지금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나 나폴리의 산 파올로를 보시면 비슷한 광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7) http://en.calcioefinanza.com/2017/02/08/juventus-stadium-architect-possible-increase-capacity-20000/

 

8) http://football-italia.net/47994/pirlo-conte%E2%80%99s-words-assault-you

 

9) 이 시즌 라운드는 날씨 관계로 연기된 경우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나폴리와의 11라운드는 실제로 13라운드 이후 개최됐습니다.

 

10) 이 과정에서 한 번 막힌 패스가 본인에게 돌아와 상대 수비수와 2대1 패스를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 원더골과 후에 넣은 바이시클 킥 골 덕분에 시모네 페페는 페날두라는 칭호를 획득합니다.

 

11) 이 8연승 중 유일하게 실점을 기록하고 가장 힘들었던 경기가 라치오전(2:1)이었습니다. 당시 라치오의 수문장 마르케티가 경이로운 선방을 보여주며 무승부를 지키나 싶었지만, 교체투입된 델피에로가 82분에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만들어내며 연승을 이어나갑니다. 이 경기 외 7경기에선 모두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12) 당시 보리엘로의 슛이 들어간 것으로 보여 유베팬들은 의아하면서도 기뻐했지만, 이내 자막을 통해 카니니의 자책골임이 밝혀지자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13) 실제로 콘테는 유베 재임 3시즌간 코파 이탈리아를 들어올리지 못했으며, 결승 진출도 이 시즌이 유일합니다. 

 

14) 국내뿐 아니라 해외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코파 이탈리아 10회 우승을 달성하면 은별을 단다‘는 이야기를 계속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3회 우승을 달성한 지금도 유벤투스는 은별을 달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리그 10회 우승당 별 1개를 다는 것도 그저 클럽과 팬들 사이에서 인정한 암묵적인 기호일 뿐, 협회에서는 별을 다는 것에 있어 어떤 공식적인 제한이나 의미는 없다고 밝힌 적 있습니다.

 

15) 안드레아 피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 이성모 역, 한스미디어, 2015, 204~205쪽

 

16) https://en.alessandrodelpiero.com/news/30th-june-2012_281.html

 

Profile
title: 유벤투스(2017~)아케 Lv.49 / 81,758p

Win the 57th match.
제 글은 당사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추천 자제좀ㅠ 알림이 너무 많이와요..

댓글 10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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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붚!
1
아니.. 분량이 하루 이틀 적어서는 안 나올 분량과 퀄리티가....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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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와 대단히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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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매우 잘 봤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전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델피에로의 프리킥이 제일 기억에 남던 시즌이네요 ㅠㅠ 라이브로 보면서 너무나도 울컥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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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선붚 후감상하겠습니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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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마지막 알레의 인사글이 왜 유베팬들이 그를 그렇게 사랑했는지 잘 보여주는것 같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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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그때 그 시절이 , 그 시절에 울고웃던 제가 생각나네요. 명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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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https://www.youtube.com/watch?v=T3Gh0BMsXck 마이콘 골 보며 주저앉았더라는.. ㅋㅋ 캐스터가 골이라고 소리질러서야 골이란걸 인지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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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자 이제 12-13을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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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첫 경기가 파르마전이었나요? 라이브로 봤었는데 리히슈타이너의 첫골과 마르키시오의 마지막 간지골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ㅋㅋ시즌 전에는 많은 분들이 안비보가 감독으로 선임되길 원했고 저도 그랬는데 정말 콘테 아니었다면 지금의 유벤투스가 어땠을지 상상이 안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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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11-12는 정말 지금 되돌아 봐도 눈물이 나는 감동의 시즌.... 이글을 보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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