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7일 22시 20분


이름: Edgar Steven Davids
생년월일: 1973년 3월 13일
국적: 네덜란드
출생지: 파라마리보, 수리남
포지션: MF
키/몸무게: 169cm/68kg
유스클럽: 아약스
현소속클럽: 아약스
A매치 데뷔전: 94/4/20 vs Ireland
월드컵 출장/득점: 1998년 프랑스(6/1)
A매치 출장/득점: 74/6


진정한 '앙팡 테러블'




1991년 9월 6일, 네덜란드의 명문 구단 아약스와 RKC 발베이크와의 경기에서 마치
황소처럼 경기장을 누빈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드가 다비즈 였다.

고작 18세 밖에 안된 이 선수는 정말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험한 미드필드
지역에서 성인 선수들을 거뜬히 잠식 시켜버리는 놀라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활약 또한 만들어냈다.

사실상, 70년대 초반 크라이프의 아약스라는 꼬리표를 달고다녔던 아약스에는 이미
준비되어있던 신진 세력들이 존재했다. 그 중에 한 명이 170cm가 체 되지못하는 다비
즈였고, 그는 보란듯이 아약스를 유럽무대의 Top으로 끌어올렸다.

세번의 에레디비지에 리그 타이틀을 비롯해서 92년에는 웨파컵 우승, 95년에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클럽의 역사를 그의 발로 일궈냈던 것이다.



그가 아약스 미드필더 진영에서 담당하고있던 역할은 단순했다.
'몸으로 부딪혀서 상대선수를 쓰러뜨리고, 공간을 잡아내라.' 그의 스승인 루이스 반 할이
압박맨으로써의 그의 엄청난 재능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는 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다비즈에게 'Pit bull(황소)'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을 봐서는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어찌됐던 그는 자신이 해내야 할 적합한 역할을 아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이해
하고 적응해 나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가 조심하지 못했던 것은 자기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후에 이러한 단점아닌 단점은 그에게 있어서 '트러블 메이커'라는 별명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Pit Bull in SerieA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다비즈는 아약스에서 이뤄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뤄놓고, 새로운 목표로의 도전을 시작했다. 그가 첫 발을 내디딘 장소는 바로 이탈리아의 밀라노.

하지만 그 도전은 어린나이에 '빅 이어'까지 들어올린 그의 자신감을 아작아작 씹어 먹어버렸다. 밀라노에서의 시스템은 자유로운 훈련,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암스테르담에서와는 완전히 정 반대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특히나, 이 이탈리아라고 하는 축구의 나라에선 그 만큼 하는 선수가 사방에서 슈퍼스타로 거듭나기위해 항시 대기중인 상태였고, 다비즈 또한 그러한 절차를 밟아나가야 하는 일종의 예상치못한 '벽'에 부딪히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무대에서 확고한 선발 출장의 기회조차 잡아내지 못한 그는 결국에 팀내에서 동료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가장 꺼려하는 인물로 낙인이 찍혀버려, 말그대로 '계륵'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게 된다.



97년 그는 정신없었던 두 시즌을 힘겹게 끝내고, 새로운 팀을 찾아나섰다.
사실상, 팔려버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적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국 그는 97/98시즌 도중 유베와 계약을 맺게 되었고, 낯설은 등번호 26번을 받아들고 토리노에 입성하게 된다.

97/98시즌 유베는 그들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전술과 극단적인 게임을 치뤄나가며, 리그 우승에 한 발자국 다가선 상태였다. 그런 유베에게 전술적으로 가장 보강이 이뤄져야 했던 부분이 바로 '압박 자원'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생활적인 면이나 성격적인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다비즈를 선뜻 영입하겠다고 손을 내민 리피 감독의 생각은 아주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는 지도 모른다.

그는 팀의 흔들리는 수비를 중원에서부터 잡아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살림꾼'역할을 80% 이상 발휘하면서 서서히 클럽의 레귤러로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그리고 또한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에도 익숙해져 갔다. 98/99시즌 리피 감독이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팀의 살림꾼으로써 남아있게 된다. 과거 밀란의 미드필더 선수 출신이었던 안첼로티 감독의 구상에도 그는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었다.



유베가 아닌 유베에게 근 3년간 타이틀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단한 역량을 발휘하며 점점 아약스 시절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러 선수들의 미진한 점들이 감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판단한 유베의 보드진은 2001년 다시한번 리피에게 감독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여태껏 반 할 감독이후에 다비즈를 가장 잘 다뤘던 감독인 리피의 새로운 프로젝트 속에도 '다비즈'라는 한 자리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001년 5월 17일. 다비즈는 FIFA에 명시되어있는 불법 금지 약물을 복용한 혐의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약물 검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FIFA는 그에게 16개월 출장 정지라는 엄벌을 내리기로 결정하였고, 그 또한 처벌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베에서의 그의 입지는 그가 빠져있던 순간에나 다시 돌아온 순간에나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사실, 그 만한 실력과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지를 지닌 선수를 찾아보기란 쉽지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2002/03시즌 완전히 혐의를 벗어나, 다시금 부활한 그로부터 시작된 유베는 97/98시즌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함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리그 우승은 물론이거니와,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파죽지세의 성적을 이끌어 낸 유베는 그 해 유럽무대에서 가장 공격 균형이 잘 들어맞는 축구를 했던 단일팀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나 Key라고 명명할 수 있는 다비즈가 존재했다.


Espana(Shit!), England(Yes!)

2004년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수많은 축구팬들의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었던 토리노에서의 생활에 문제를 일으킨 그는 클럽 유벤투스와의 관계를 청산하려고 준비중에 있었다. 물론, 어떤 방향이던 그와 유베가 다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재결합 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03/04시즌 클럽의 부진을 자가책임으로 인정하며 물러나는 것을 인정한 리피의 결정은, 그의 마음을 더욱 뒤숭숭하게 만들어 놓았다.

결국, 그는 클럽과 재계약 문제로 논쟁을 벌이던 중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바르샤로의 임대에 최종 싸인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에 비춰지는 것과는 반대로, 아주 최악의 상황으로 다시금 치우치는 것을 연출해낸다.

빅 클럽에서 빅 클럽으로의 임대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칠 수 없었던 그는 8년전 밀라노에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만큼의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그러한 그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던 유베의 보드진들 또한 더 이상 그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임대된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원 소속팀에게도 떠나라는 최종 통보를 받게 되었다.





근 반년간의 까딸루냐 생활을 접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정말 8년전의 악몽을 다시금 역반전 시키려는 듯이 밀라노의 또 다른 클럽인 인테르와 새로운 계약을 맺게된다. 그러나 그것 마져도 1년만에 다시금 쓰디쓴 실패로 돌아가 버렸고,'낙동강 오리알'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어느 덧 30줄에 들어선 그를 원하는 클럽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 클럽은 다름아닌 북런던을 연고로 하고있는 토트넘 핫스퍼 였다. '도전'과 '싸움'을 좋아하는 그에게 북유럽에서 뛰는 기회는 색다른 과일의 맛과도 같았다. 93/94시즌 이후에 별 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던 토트넘이었지만, 그것은 이제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그에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거의 시즌의 모든 경기를 소화하며, 아직까지도 '황소'는 살아있다라는 것을 증명해낸 그는 마틴 욜에게 가장 안정된 믿음을 주는 선수가 되었고, 여전히 자신만의 특수 고글을 착용하고 그라운드를 쉴새없이 휘졌고 다녔다.


Come Back, Home



96년 특수 고글없이 암스테르담을 떠났던 그는 11년이 지난 07년, 특수 고글을 착용한 모습으로 다시금 아약스 암스테르담 홈 경기장에 섰다. 하지만 현재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투지의 '몸싸움'을 보여주다 결국은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게되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매번, 그리고 매년마다 그라운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골칫 덩어리로 화두가 되었던 그의 모습을 좀 처럼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따름이다.




                                                                                                                       Written by 춤추는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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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알레 Lv.0 / 0p
댓글 30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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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7
프레데터라는 별명을 가졌던 다비즈~~
참 좋아하던 선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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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8
안경간지 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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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8
좋아하는 선수에요!! 몸싸움 정말 끝나죠~

가축소보다 강한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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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신
2007-09-21
최고의 선수~

싸움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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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1
아 나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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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캬.. 다비즈.....

그립습니다..

좋아하는 선수중 한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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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el_Ghost
2007-09-27
괜히 싸움닭이 아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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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7
가장 좋아하는 선수중 한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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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정말 그립다.... 과거의 선수들.... 특히 맞짱 스킬 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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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알레
2007-10-01
유일하게 리노와 1대 1 몸싸움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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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1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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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2
군계
"키컸으면" 감히 넘볼자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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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6
ㄷㄷ.. 물안경같은걸 쓰고다녀서 인상깊었던 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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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i1
2007-10-10
다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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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2
다크가 섞여 있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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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8
파워풀 축구의본좌..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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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0
위에 소개된 것과는 바르셀로나에서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03/04 바르셀로나의 후반기 성적을 보면 다비즈 효과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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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좀 과장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지금 바르셀로나의 위치를 만들어준게 다비즈
바르셀로나에 다비즈 가면서 후반기에 제대로 탄력받고 그 기세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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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5
제가 유베팬이 되는데 이분이 큰 몫을 하셨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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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정말 싸움닭 맞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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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고글벋으면....순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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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V&ITA
2008-02-02
쌈닭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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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4
최고의 프리스타일 소유자중 하나........
2002-2003 때 챔피언스우승했어야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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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5
키컸으면 그만의 기동력과 짧은 선회반경이 없어지므로 평범한 선수가 될수도 있기에... 단신의 그가 좋음..
투계.. 말그대로임. 뭐 머리풀면 프레데터...
근성하면 다비즈였고.. 외모에 어울리는 기가막힌 프리스타일러였음..
볼란치는 역시 키핑력이 좋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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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캬..요즘 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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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8
역대최고에 원보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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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0
가운데 검별은 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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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3
간지 다비즈
정말 유베의 보물이자 자랑이였던 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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