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5일 21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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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름 : 파울루 소사
영문이름 : Paulo Sousa
국적 : 포르투갈
생년월일 : 1970/08/30
포지션 :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 감독
키 : 177cm
몸무게 : 76kg


파울루 소사는 다재다능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일원이었다.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압박과 커버링은 물론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패싱력까지 갖춘 9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조기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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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95 시즌 유벤투스 시절

포르투갈의 라이징 스타, 유벤투스에서 영광을 누리다

1986년부터 벤피카 유스팀에 있었던 파울루 소사는 1989년 벤피카 성인팀 데뷔를 한다. 빠르게 주전자리를 꿰찬 파울루 소사는 골든 제너레이션의 일원이었던 후이 코스타, 조앙 핀투 등과 함께 1990/91 시즌 벤피카의 리그 우승을 이끌고, 2년 후에는 컵 대회 우승도 맛본다. 1993년 여름, 파울루 소사는 또다른 골든제너레이션 멤버인 루이스 피구가 소속된 스포르팅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1994/95 시즌 새롭게 유벤투스 감독으로 취임한 마르첼로 리피는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중원에서의 압박을 중요시했고 파울루 소사는 데샹, 콘테, 디 리비오, 유고비치 등과 함께 강력한 중원을 구성하며 스쿠데토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5년, 파울루 소사는 이탈리아 스포츠 매거진인 'Guerin Sportivo'에서 선정하는 이탈리아 리그 최우수 선수(MVP)로 뽑힌다. 1995/96 시즌에도 변함없는 활약으로 유벤투스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기여한다. 3번째 시즌을 맞이한 리피 감독은 대대적인 선수개편을 통해서 팀을 리빌딩하는데 이 과정에서 파울루 소사는 유벤투스를 떠나 독일의 도르트문트로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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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7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의 모습

도르트문트 이적, 부상 그리고 복수

히츠펠트 감독의 지휘하에 새로운 강호로 발돋움하던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파울루 소사는 시즌 초반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려버린다. 1997년 2월에 복귀한 파울루 소사는 도르트문트를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시킨다. 결승 상대는 자신을 떠나보낸 유벤투스였다. 1996/97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파울루 소사는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했고 도르트문트는 3-1로 유벤투스를 꺾으며 첫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뤄낸다. 리빌딩 과정에서 자신을 버린 유벤투스에게 강력한 한 방을 먹인 것이다. 파울루 소사는 마르셀 드사이에 이어 2시즌 연속 다른 팀으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룬 선수로 기록된다. 1997년 12월, 크루제이루와의 인터컨티넨탈 컵에 선발 출장하며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인테르로 이적하며 세리에 A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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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 시즌 호나우두와 함께

세리에 A 복귀, 발목을 잡는 부상과 은퇴

무릎 부상은 한창 전성기를 누려야 할 파울루 소사의 발목을 잡는다. 파울루 소사는 인테르 이적 후 반 시즌을 소화하지만 그 이후 부상으로 인해 점차 출전 시간이 줄어들고 2000년 파르마로 임대되어 돌파구를 찾으려했지만 종종 교체 아웃되곤 했다. 2000/01 시즌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 후 한시즌 반, 2002년 에스파뇰에서 반 시즌을 뛰지만 결국 부상으로 30대 초반에 현역에서 은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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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국가대표 시절

국가대표팀

파울루 소사는 1989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뤄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1년 1월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 포르투갈 대표팀 데뷔전을 치룬다. 1994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지만 아쉽게 이탈리아와 스위스에 밀려 탈락한다. 하지만 2년 후 포르투갈은 황금세대가 주축이되어 유로 96 본선에 진출한다.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의 핵심선수는 유벤투스에서 뛰는 파울루 소사와 피오렌티나 소속의 후이 코스타였다. 덴마크, 터키, 크로아티아와 같은 조에 속한 포르투갈은 환상적인 경기력으로 2승 1무를 기록하며 8강에 진출한다. 크로아티아와의 8강에서 파울루 소사는 좋은 활약을 펼치지만 포르투갈은 포보르스키의 감각적인 결승골에 무너지고 만다. 유로 96은 파울루 소사가 유일하게 주역으로 활약한 대회였다.
파울루 소사와 황금세대는 1998 월드컵 진출을 노리지만 실패한다. 황금세대가 이끌던 포르투갈의 문제점은 빈곤한 득점력이었는데 이는 1989년과 1991년 20세 이하 월드컵을 2연패 할 때부터 지적된 약점이었다. 월드컵 진출 실패를 뒤로하고 포르투갈은 유로 2000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예전같지 않았던 파울루 소사는 팀의 주역이 아니었다. 파울루 소사는 8강 진출이 확정된 독일 전을 풀타임으로 뛰고 터키와의 8강전에서 교체로 투입되었을 뿐이었다.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는 2002 월드컵 진출을 이뤄내며 갈망하던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다. 파울루 소사는 최종 엔트리에 포함이 되었지만 월드컵 직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벤치에서 팀의 탈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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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비 텔 아비브 감독으로 취임한 파울루 소사

은퇴 이 후 감독 생활

2002 월드컵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파울루 소사는 16세 이하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었고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었던 케이로스를 보좌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2008년 11월, 잉글랜드 챔피언십에 있던 QPR의 감독으로 취임하지만 2009년 4월 경질당한다.
2009년 6월, 스완지 시티 감독직에 취임한다. 스완지 시티를 리그 7위로 올려놓고 구단과의 합의를 통해 레스터 시티로 떠나지만 10월에 해임당한다.
2011년 5월, 헝가리 리그의 비데오톤 감독으로 취임했고 첫 시즌에 수퍼컵과 리그 우승을 이뤄낸다. 2번째 시즌 수퍼컵 우승을 이뤄내지만 2013년 1월, 가족 문제를 사유로 구단과의 합의를 통해 계약을 해지했다.
잠시의 공백기를 가진 파울루 소사는 2013년 6월, 이스라엘 리그의 마카비 텔 아비브 팀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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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어를 들어올리는 파울루 소사

우승 경력 - 선수

Primeira Divisao(현 Primeira Liga) : 1990/91
Taca de Portugal : 1992/93
Supertaca : 1989
Serie-A : 1994/95
Coppa Italia : 1994/95
Supercoppa Italiana : 1995
DFL-Supercup : 1996
UEFA Champions League : 1995/96, 1996/97
Intercontinental Cup : 1997

준우승 경력 - 선수

Primeira Divisao(현 Primeira Liga) : 1989/90, 1991/92, 1992/93
Taca de Portugal : 1993/94
Supertaca : 1991
Serie-A : 1995/96, 1997/98
UEFA Cup : 1994/95

우승 경력 - 감독

Ligakupa : 2011/12
Szuperkupa : 2011, 2012

국가대표 경력

1991~2002 포르투갈 51경기 0골 / 유로 96, 유로 2000, 2002 월드컵 대표
1989 FIFA U-20 World Cup 우승
Euro 2000 4강

개인수상

Guerin d'Oro : 1995



작성자 - 델☆피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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