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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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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니 머통령 커엽다’, ‘박ᄅ혜 보니 괴꺼솟’ 등,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위 야민정음이 널리 사용되고있다. 두 개의 글자 A, B가 모양이 비슷하여 글자 크기가 작을 때 혼동될 수 있는 경우, 옳은 글자 A 대신 B를 쓰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한글 파괴’라거나 ‘세종대왕이 격노하여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언어나 문자뿐 아니라 문화현상, 사회현상 전반에 대해 변화와 혁신을 자유롭게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과 기성의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떤 태도나 견해를 섣부르게 가지기보다는,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사회, 문화적 배경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다른 나라나 다른 시기의 비슷한 사례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면, 이 현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있게 될 수도 있고, 이 현상을 즐길수 있게 될 수도 있다.
야민정음과 약간 비슷한 현상이 한글이 창제된 직후에도 있었다. 야민정음의 사례 중 글자의 90도 또는 180도 회전에 바탕을 둔 것들이 있다. ‘비버~뜨또’, ‘육군~곤뇽’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글이창제된 직후에 한글로 된 책을 펴내기 위해 한글 활자를 만들었고, 이 활자를 가지고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같은 책을 찍어내기도 했다. 활자는 한 페이지를 인쇄하고 나면 활판을 해체하여 활자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렇지만 한 페이지 안에서 같은 글자가 여러 번 쓰일 수도 있으므로, 자주 쓰이는 글자는 활자를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 반면에 드물게 쓰이는 글자는 활자를 한두 개만 만들면 된다. 드물게 쓰일 거라고 생각되어 활자를 한 개만 만들었는데, 의외로 한 페이지에서 이 글자가 두 번 이상 나오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예컨대 ‘곰’이라는 글자의 활자를 1개만 만들었는데 한 페이지에 ‘곰’이두 번 나온다고 치자. 이 때 활판 인쇄를 담당했던 사람이 기지를 발휘하여, 둘 중 한군데는 ‘문’ 활자를 180도 돌려서 사용한 것이다. ‘곰’ 활자를 새로 1개 더 주조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경제적인 해결책이었다. 오늘날 자금 부족으로 쪼달리는 작은 회사에서 어느 사원이 이런 식의 해결책을 내서 회사 돈을 절약하게 됐다면 사장으로서는 이 사원을 업어 주고 싶을 것이다. ‘곰’과 ‘문’의 이런 관계를 이용한 수수께끼도 있다. 산길을 가다가 곰을 만났는데 어떻게 피했을까?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곰이 문이 되어 그 문으로 빠져나왔다는 식이다.
(중략)
그러고 보면 요즘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야민정음 같은 것도 우리 문화를 더 다채롭고 발랄하게 해주는 고마운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야민정음 식의 사용을 염두에 두었을 것 같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야민정음을 보고 꼭 분노했을 것 같지도 않다. ‘아니,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방식으로 한글을 쓰다니. 요즘 녀석들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데.’ 하며 껄껄 웃으실지도 모르겠다. 세종이야민정음에 대해 마음 불편하게 여긴다고 해도 뭐 어떤가? 모든 문화적 창조물은 창조자의 손을 떠나면 창조자의 의도와 다르게 사용되고 향유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 창조물의 용도를 창조자의 생각의 한계에 가둬둘 이유가 있겠는가? 게다가 젊은이들은 야민정음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게 많다. 기성세대꼰대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니 꼰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즐겁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부러우면 지는거고, 아니꼬우면 출세하라고 했다. 젊은이들끼리 이러는 게 배 아프면, 꼰대들끼리도 그런 발랄한 소통 수단을 만들면 된다. 나이와 계층을 넘어서 한글이 자유롭고 발랄하게 활용되고 변형되어 의사소통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를 바란다.
출처: 서울대저널 http://www.snujn.com/index.php?mid=news&document_srl=33973
추천해주신 분들
언어야 항상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파괴되기도 하고 변경도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맞춤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태도를 취하는 건 혐오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실제로 인정되기 전에는 비표준어인데 말이죠...
사실 그것도 그건데 한국어(국어), 한글 구분 못하는 것도 꽤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_- (한글은 표기수단일 뿐이고 한국어가 단어든 문법이든 포함하는 건데). 당장 몇 년 전에 산이가 노래불렀던 공익광고조차도 한국어랑 한글을 구분 못 하고 '한글을 잘 사용하자'는 병크를 터뜨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