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20-21 써드아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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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8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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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경기 도중에 카메라에 잡히곤 하는데, 항상 그렇게 긴장하시나요?

여기 이탈리아에선 모두가 너무나 감성적이야. 유벤투스는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지. 난 선수로서도, 클럽 운영진으로서도 유베를 알게되었으니 유베에서 살고 숨쉰 셈이야. 선수시절 난 대단히 감성적이었고, 지금 관중석에서도 마찬가지야. 참기가 매우 힘들지.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지 않나요? 벌써 은퇴한 지 6년이 지났는데요.

아니. 오히려 더이상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고 할게. 자주 우리 선수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에 힘들어해. 뭐 그 사실에 익숙해져야겠지만 꽤 힘들어. 필드에서 어떤 움직임이 나와야하는지 알고 있는데 내가 직접 뛸 수가 없지. 예를 들자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그랬어. 2003년에는 직접 결승에 올랐지만 뛸 수 없었지. 올해(지난 시즌)는 관중석에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경기 결과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간 꼭 우승해서 편히 눈감을 수 있고 싶다. 내 커리어 상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해. 내가 팀을 도울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지. 이제는 다른 곳에서 다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왜 감독을 맡지 않았나요? 그 쪽이라면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요..

급하게 감독 자리를 맡고 싶진 않았어. 어떤 것이 필요한 지를 알고 있으며 요새 감독은 재미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잖아. 모든 면에서 준비가 되있어야해. 전술만으론 부족하고 좋은 심리학자 수준이 되어야하지. 내가 감독에 적합할 지는 모르겠어. 난 지금 하는 일이 좋아. 내게 맞아.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난 콘실리오 디 암미니스트라지오네(consiglio di amministrazione), 즉 매니징 보드 멤버야. 16명으로 구성되어있다가 12명으로 줄였고 다시 3년 임기를 두고 11월에 선거를 하지. 그렇긴 하지만 난 내 역할은 고문이나 어드바이저라고 하고 싶어. 아넬리 회장이 날 데려왔고 스포츠적인 문제에 대해 돕고 있어.

실무적인 측면을 설명해주신다면?

예를 들어 어떤 선수를 사야하는가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논의할 때 아넬리, 나, 마로타, 파라티치 이렇게 4명이 모여. 나와 파라티치는 언제나 이상적인 얘기를 하고 회장이랑 마로타는 'No'라고 하지(웃음). 올해는 잘 되가고 있어. 6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여름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지.

본인의 사무실이 있나요?

아니 없어. 난 컨퍼런스 룸을 써.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 앉아있지를 못하겠어. 그러고 있는 것도 말이 안되고. 난 스포츠 분야와 사무 분야 사이의 중개인이야. 그 분야에서 나는 유용하지. 난 일 단위로 팀과 함께해. 팀이 훈련하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은 못 보는 걸 볼 수 잇어. 클럽의 HQ에는 주에 두, 세 번정도,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나 스폰서가 방문할 때 가지.

아넬리가 중요한 미팅마다 당신을 참석시키는데, 그럼 당신의 주장으로 '중요한 선수'의 이름을 추천할 수도 있나요?

아넬리는 그런 게 필요없는 사람이야. 유베가 관심있는 선수들과 대화하러 갈 때 그와 내가 함께 간다. 반페르시나 테베즈와 협상할 때도 그랬어. 전(前) 선수로서 많은 것을 이뤄낸 사람이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효과가 있지.

당신이 체코인으로서 유일하게 탑 클럽 경영진에서 일하고 된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봐봐, 나는 2001년부터 유벤투스에서 뛰었어. 14년 동안 외국의 단일 팀에서 뛰는 건, 특히 외국인에겐 굉장히 긴 시간이야. 진중하게 기억되면서도 감사받을만한 뭔가 특별한 일을 해내야만 해. 그리고 계속해서 그걸 증명해내야하지. 아마 내게 이 기회를 준 것은 그저 운명과 우연일지도.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은퇴한 지 1년이 지났고, 아넬리가 유베를 맡았어. 그는 제일 먼저 내게 와서 함께하길 요청했어. 서로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지냈어. 그의 부친인 움베르토(아넬리)가 나를 유베로 데려왔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하긴 힘들었지. 심지어 난 복귀하기도 싫었었어. 1년을 쉬었지만 2주처럼 느껴졌거든.

아넬리가 아니었다면 오늘 유벤투스에서 보긴 힘들었겠군요.

그렇지. 아넬리였기 때문에 승낙한거야. 은퇴를 하자마자 내게 운영진을 하라고 맡긴 셈이지만, 오직 아넬리가 클럽을 맡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승낙한거야. 유벤투스와 아넬리는 90년이 넘게 함께하고 있으니까. 잘 될거라 믿었고 내 생각은 맞았어. 우린 5년간 4번의 리그 우승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았지. 나쁘지 않잖아.

이탈리아에선 아넬리 가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언제나 이탈리아인에서 최고의 가문이었어. 아마 베를루스코니가 좀 따라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넬리 가는 그루포 피아트(피아트 그룹)를 소유하고 있고, 마세라티, 피아트, 페라리 같은 차를 만들어내는 공장을 거느리고 있지.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이탈리아와 아넬리가 함께한다고 말해도 되겠다.

유벤투스는 피아트의 자금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나요?

피아트의 사업 성공도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우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낸 것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아넬리가 유베에 왔을 당시 우리의 손실은 95m이었지. 그의 가문에서 자본을 120m으로 끌어올렸고 거기서부터 시작된거야. 우린 계속해서 부채를 낮춰가고 있고 지난 시즌엔 드디어 2.3m의 이익을 기록했어.

그리고 100m 이상을 투자해 새 구장을 건설하기도 했죠..

새 구장 덕분에 매치데이 수익이 3배로 뛰었어. 클럽은 성장해나가야하니 경기장이 곧 머니 머신이 되어야하지. 이탈리아에선 사람들이 축구에 미쳐있어. 삶이 완전히 망가지고 끼니를 해결할 돈이 없더라도 축구보러 갈 티켓은 어떻게든 마련할 사람들이야. 정말로 믿을 수가 없지. 아넬리가 비지니스를 잘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해.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패밀리의 일원이란 느낌은 어떤 건가요?

안드레아의 아버지는 우리집 근처에 살았었어. 일요일마다 부부가 애완견들을 데리고 우리를 방문했지. 이적 후 첫 한 달 동안 나는 썩 잘 하지 못했는데 이런 게 큰 도움이 되었어. 안드레아와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축구를 같이 했지. 조그마한 팀을 꾸렸고 한번은 내 고향 Skalná(체코의 소도시)에 데려가기도 했지.

유벤투스 회장이 스칼나에요..?

응, 그에게 내가 자란 곳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래서 3년 전에 지역 팀과 우리 팀의 친선경기를 잡았어. 스칼나는 인구 1500명의 작은 도시고 그 때 거의 모두가 우릴 보려고 경기장에 왔어. 거기선 큰 이벤트였지. 명망있는 아넬리 가 사람이 우리 작은 시골 마을에 왔다는 것에 행복했어.

아넬리가 마을을 보고 뭐라고 했나요?

정말 좋아했어! 아넬리는 꾸밈없는 사람이야. 그는 토리노의 구질구질한 바를 좋아해서 목요일마다 함께 맥주를 마시지. 스칼나의 펍에서도 함께했었어. 거기를 제일 좋아했지! 매우 좋은 경험이었어.

유베엔 많은 유명 선수가 있었는데, 당신이 가장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내 플레이스타일 덕분이겠지. 언제나 100%를 다하고 사람들이 그걸 알아줬어. 직접 볼 수 있었으니까. 또한 유베가 세리에 B로 강등됐을 때 내가 잔류했던 것도 도움이 됐지. 그랬던 선수가 5명(부폰, 네드베드, 카모라네시, 트레제게, 델피에로)이 있었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오퍼도 왔었지만 우린 남기로 했지. 그렇게 우린 팬들의 눈에 불멸의 신이 되었어.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 클럽이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었고 우린 무언가 보답을 했어야했지. 바로 다음 시즌 세리에A에 복귀해서 기뻤어.

그 때 커리어를 망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 거잖아요. 그렇죠?

가끔은, 커리어에 어떤 위험을 감수하느냐가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결정을 따라야해. 난 언제나 유벤투스에 모든 걸 두었고 놓친 것은 없어. 세리에 B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의 의무였어. 머릿속에 박혀있는 계산기만 생각해선 안돼. 마음을 따른다면 잘못되는 법은 없어. 그러다 전부를 잃는다해도 나 자신에 대한 좋은 생각만 든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아마 이게 내가 지금 유벤투스 경영진을 맡고 있는 이유일거야.

축구 덕에 교황과도 이야기를 나눠봤죠?

그렇지, 축구 덕분에 정말 말그대로 모든 일을 다해봤어. 9월에 체코 대통령과 중국에 함께 갔던 것도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지. 우린 상하이에 축구 교실을 열었고 중국 대통령을 만났지. 그런 게 흔한 일은 아니야.

체코 사절단의 일원이 된 기분은 어땠어요?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긴장이 너무 됐었어. 스칼나 출신 소년이 정부 전용기를 타고 대통령과 함께 다른 나라 대통령을 만나러 가다니. 난 지금도 꿈에서 살고 있어.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이 아직도 많아.

체코 대통령이 국가 최고 훈장을 타게 될거라고 얘기해줬나요?

비행기에 탔을 때 나한테 10월 28일엔 어떤 일정도 잡지 말라고 하고 자리에 앉았어. 그래서 무슨 뜻인지 알았지...(웃음) 그 날 사쑤올로와의 경기가 있어서 경기를 관람해야했지만, 당연히 시간을 내서 체코로 갔어.

국가 최고 훈장 수여... 이것은 스칼라 출신 소년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고 유벤투스의 보드진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욱 동화같은 건데요. 그렇죠?

단연 그렇지. 내 생각에 그건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야. 그 상은 국가의 대통령이 수여하며, 그것은 내가 모국을 위해 정말 특별한 일을 했다는 뜻이야. 내가 그걸 탈 정도로 큰 일을 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언제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체코에 누가 되지 않고 좋은 이미지를 꾸려나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모두가 나와 체코를 관련지었으니, 만약 내가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좋지 않았을거야.

당신이 세계 최고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론 타고난 재능이 있었어. 하지만 의지와 노력 덕분이야. 그것 없인 이룰 수 없어. 10% 정도가 재능, 나머지가 근면함이다. 내게는 그랬어. 꿈을 쫓는 사람에게 분에 넘친 목표라는 건 없어. 하지만 그걸 위해 노력해야하지.

그건 언제 깨달은 건가요?

내가 13살 때였어. 그 때 감독이셨던 Žaloudek 선생님이 내게 말해줬어. "노력 없인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따랐지. 훈련은 두시간 일정이었지만 우린 아침부터 저녁까지 축구를 했어. 이 방법으로 커리어 내내 살아왔어. 훈련이 끝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훈련했다.

13살 소년에겐  꽤 힘든 일이었을텐데요. 보통 그 또래 소년은 파티 같은 데 가기 좋아하잖아요.

내게 축구보다 좋은 것은 없었어. 훈련은 내게 짐이 아니었어. 가장 힘들었던 15~17세 때에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

훈련에 투입될 때 자신에게 하는 말 같은 게 혹시 있나요?

난 언제나 즐겁게 뛰고 있기 때문에 큰 위기는 없어. 하지만 학교를 한 주 쉴 때도 늘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행같은 건 가지 못하는 날도 가끔 있었지. 종종 내 자신에게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냐고 말해본 적이 있어. 경기장 밖에서도 좋은 경험이 있긴 하지만 많진 않아. 후회했을 때가 있긴 하지만 돌아보면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 요만큼도.

축구 때문에 많이 힘들었나요?

그럼. 축구는 힘든 일이야. 가끔 질려버리고 나가떨어져. 집에 가까스로 걸어왔어. 하지만 축구를 하고 싶다면 그렇게 힘들어야해. 제만의 라치오시절 훈련이 굉장히 힘들었던 게 기억이 나네.

어렸을 때 앞으로 축구로 먹고 살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나요?

어떤 직업이 돈이 된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어. 그건 나쁜 거지. 요새는 축구를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또한 많은 희생도 필요해. 요즘 많은 선수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잘못된거야. 예를 들어 4~5일의 휴식이 주어지면, 난 첫 3일만 쉬고 훈련에 복귀해. 선수의 몸은 언제나 준비되어있어여 해. 긴 휴식은 좋지 않다.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유벤투스는 꽤 큰 돈을 들여 당신을 영입했고 이건 그 어떤 체코 선수도 그 이후로 깨지 못한 기록이에요. 이것에 영향을 받았나요?

그래. 그것 때문에 다리가 무거웠어. 내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했어. 내게 그 정도 돈이 투자됐다면 그걸 어떻게든 갚아내야 해. 한편으론 그 투자가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도 보여줘여하지.

그 때문에 휴가를 줄이고 더욱 훈련에 매진한 건가요?

음, 그 전에 그보다 더 노력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하고 싶네. 난 29세였고 더욱더 많은 노력을 했어. 선발 명단에 들고 팀의 엔진이 되기까지도 굉장히 힘들었지.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없어.

훈련장(gym)에서 나만의 훈련법 같은게 있나요?

피지컬 컨디션은 그저 부가적인 거야. Žaloudek 선생님의 특별한 훈련 덕분에 잘할 수 있었어. 모두가 나의 슛이 좋고 어느 발이든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지. 그게 다 Žaloudek 선생님 덕분이야. 그는 언제나 타겟을 골대에 세워놓고 그걸 맞추라고 했어. 양발로 하루종일 계속해서. 체코에 있을 땐 (2달간 경기가 없는)윈터브레이크에는 모두 쉬어야한다고 말했지만 난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지. "아니,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나중에 쉬어도 된다."

축구 외적인 것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조언인가요?

난 그렇게 생각해. 우리나라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성공 뒤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알아본다면 그건 언제나 고된 노력과 결단력이야. 내가 원하던 무언가를 제대로 해낸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 100%를 다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아.

혹시 동기부여사(motivational speaker)로 요청받은 적도 있나요?

있지. 언젠가 초대를 받은 적이 있어.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고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 지를 몰랐어. 하지만 우리가 지금 나누는 이야기가 삶 전반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지.

정상에 있을 때 커리어를 마치는 게 어렵진 않았나요? 적어도 2년은 더 수월하게 뛸 수 있었을 텐데요.

 

난 내가 정해놓은 레벨에서 뛰고 싶었고 더이상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때 다른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 난 더이상 엔진이 아니었고 내가 유베에 해줄 수 있는 건 없었지. 그리고 돈을 위해 다른 곳에서 2년 정도 더 뛰는 건 내 스타일에 맞지 않았어. 끝내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 오랜 커리어 끝에 나는 지쳐있었고 만족한 채로 필드를 떠난거야. 난 내 모든 걸 쏟아부었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어.

솔직하게, 그립지 않나요?

솔직하게 아니야. 이제 나는 다른 역할을 맡았지만 여전히 팀과 접촉하고 있어. 아넬리와 가끔 축구를 하러가면 그저 지기 싫다는 이유 때문에 그와 싸우기도 해. 이게 바뀌진 않을거야.

길에 나가면 수많은 팬들이 사진 찍자고 달려들텐데, 그런 삶을 사는 건 어떻나요?

커리어를 마친 후 1~2년이 지나면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솔직히 더 안좋아졌어. 이제 팬들에게 나는 덜 눈에 띄니 더욱 희소해져버렸어. 하지만 여전히 기뻐. 외출을 할 땐 그런 상황을 대비해야 하지. 매일 기분이 좋을 순 없으니 그게 팬들의 잘못은 아니야. 우린 팬들을 위해 축구를 하며, 팬없는 축구란 아무런 의미도 없어. 따라서 팬들이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면 해주는 게 내 의무야. 내게 소요되는 비용은 아무것도 없고 팬들은 만족하겠지. 난 그 점에 집중하고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말해줘. 그건 우리가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이야.

시내에 산책이나 하려고 나갈 수도 없을 거에요. 그렇죠

주중에는 좀 낫지만 토요일엔 절대 불가능해. 예전엔 사인만 계속 했는데 이제는 전부 셀카찍자고 그러더라. 망할 핸드폰...

그런 거에 힘들진 않나요?

내가 선수로 뛰던 때 몬테 카를로에서 정말로 불쾌했던 적이 있었어. 난 가족과 휴가를 즐기러 갔었지. 다 괜찮았지만 이탈리아인들을 만나자 광장이 전부 사람으로 가득차서 경찰이 우리가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줬지. 내 아이들이 정말로 어렸던 때라 쉽지 않았어.

당신이 이렇게 유명한데 아이들에게 평범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가능한가요?

그럴 수 있었어. 하지만 애들도 그 사실에 짜증냈었지. 내가 쉬는 날이면 가족과 바람을 쐬러 나갈 수도 있었지만 애들이 싫어했어. 곧 산책은 끝나버릴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어디에나 팬들이 있어. 아이들은 아내의 손을 잡고 따로 걸어가야했어. 내게 왜 계속 싸인을 해주는거냐고 물어봤었지. 가족과도 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고, 이런 것이 좀 안좋기도 했어.

그럼에도 은퇴 후에도 이탈리아에서 살기로 결정했네요.

여기서 일하지 않았더라도 계속 살았을거야. 여기 학교를 다니는 애들을 위해서. 하지만 곧 바뀌겠지. 내 딸이 곧 18살이 되니 스위스나 잉글랜드에 있는 대학에 보내려하고, 아들도 3년내에 그럴거야.

아이들은 체코인보단 이탈리아인에 가깝나요?

맞아 그래. 여기서 태어났고, 서로 이야기할 때 이탈리아어를 써. 집에선 체코어를 쓰니까 엄마아빠랑 얘기할 땐 체코어로 말하지만 그것 뿐이지. 하지만 문제는 아니야. 언어가 다양하면 다른 걸 배우는데도 도움이 되겠지.

당신의 아들도 축구를 하고 있나요?

아니, 전혀 안해. 어렸을 땐 축구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제 15살이 되었고 축구를 즐기지만 어떤 클럽에서도 뛰지 않고 있어. 보통은 농구를 하고, 수영도 했었고, 어떤 스포츠도 할 수 있지만 프로로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난 그걸로 만족이야.

아들이 축구를 하지 않아서 더 행복한가요?

나는 그래. 내 아들이 이 이름을 달고 이탈리아에서 축구를 할 순 없었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을 거야. 체코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난 목요일 밤에 아넬리와 축구를 할 때 아들을 데려갔고 그도 좋아했어. 하지만 그가 압박감 없이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 모르겠어.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나서도 이탈리아에서 살건가요?

아내에게 다음은 어디로 갈 지 이야기하는 것은 내게 큰 이정표가 될거야. 솔직히 말하면 내가 여기서 계속 살 지는 모르겠어. 축구는 매우 요구하는 바가 많은 운동이고 아내는 여기를 떠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 같아. 어쨌든 그건 운명에 맡겨야지.

이탈리아에서 19년 넘게 살고 있어요. 체코로 돌아가는 건 두렵지 않나요?

아냐. 아내와 나는 거기서 자랐어.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체코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들에겐 무서울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정확히 어디로 갈 지는 말할 수가 없네..

알겠어요. 플로리다도 꽤 좋은 곳이죠?

그렇지. 플로리다에도 집이 있어서 매 여름을 거기서 보내. 거기선 아무도 우리를 모르지. 슬리퍼를 신고 어디든 갈 수 있어. 미국에서 축구는 25번째로 인기있는 스포츠 쯤 된다.

만약 떠난다면 이탈리아의 어떤 것이 그리울까요?

날씨, 음식, 체코사람들보다 더 많이 웃고 더 긍정적인 사람들. 체코에 가면 느낄 수 있어. 이탈리아 사람들은 언제나 웃고 있고 삶을 즐기려고 해. 기분이 나빠질 수가 없어.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여기 사람들은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아. 아마 우리는 좀 더 일에 집중하는 것 같아.

카를로 카팔보(체코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인, 크로스 컨트리 레이스를 개발함)와 친구죠?

응, 난 그를 매우 좋아해. 그는 체코에 '이탈리아 스타일'을 전해줬어. 그는 노력가야.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언제나 웃고 있으며 활기가 넘치지. 그래서 그가 그렇게 잘 나가는거야. 나도 이것에 대해서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내가 조금 냉정하대.

이탈리아가 당신의 패션 센스도 바꿔줬죠. 맞나요?

맞아. 요새는 축구선수를 모델처럼 알고 있어. 옷과 차가 축구의 일부가 되었지. 그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어떤 경계선이 필요하긴 해. 예를 들면 난 절대로 문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 유베에서 문신이 없는 선수는 나뿐이었지.

여전히 몸 관리를 하고 있나요?

그렇지. 하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어. 노력은 하고 있지. 달리기를 하고 gym에 다녀. 때때로 골프도 하지. 돌아가서 하프 마라톤을 하고 싶어. 프라하에서 해본 적이 있고 다른 도시에서도 해보고 싶어.

마라토너는 어때요?

마라톤은 싫어. 더 이상은.. 내 기록은 3시간 49분이었어. 꽤 좋은 기록이지만 이제 내게는 너무 먼 거리야. 그럴만한 체력이 없어. 이제 엉덩이도 커졌고 무거워져서 무릎을 다칠거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돈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인 것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축구야. 아내가 반대했지만 뭐 어쩌겠어? ​축구는 내 삶이야. 약과도 같지. 하지만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며칠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가족들과 어딘가로 여행을 가. 여름엔 플로리다로, 겨울엔 알프스 어딘가로 가지. 가족과 함께하는 매일매일을 즐겨야 해. 내 위에 있는 사람은 회장 뿐이니 내 업무도 조정할 수 있겠지. 하지만 모든 게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어.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소원이 있었는데 그건 천천히 가는 거야. '느린 삶'을 사는 거지. 하지만 이루기가 너무 힘들어.. 하지만 말이지, 난 여전히 매일이 행복해.

http://www.juvefc.com/pavel-nedved-forbes-magazine-interview/

Profile
title: 20-21 써드아케☆ Lv.52 / 87,162p

Win the 57th match.
제 글은 당사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추천 자제좀ㅠ 알림이 너무 많이와요..

댓글 4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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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8
ㅜㅜ 네디옹 멋쟁이!! 추천박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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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8
으헝헝 네디옹 사랑해요 ㅠㅠㅠ 절 발닦개로 써주세요 ㅠㅠㅠㅠㅠ

그리고 이 글을 번역해주신 아케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5-10-28

느린 삶이라..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하네요ㅠ 정말 좋은글 잘봤습니다.감사합니다

너무 멋진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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