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lla JU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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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6일 21시 05분


이름: Paolo Rossi
생년월일: 1956.9.23.
출생지: Santa Lucia,Italia
키: 171cm
몸무게: 69kg
거쳤던 클럽: Como, Vicenza, Perugia, Juventus, AC Milan, and Verona
포지션: 포워드
세리에A 데뷔 경기: 1975.10
세리에A 득점왕: 1977/78시즌(24골)
Honors
2 Scudetto 1982, 84
1 Coppa Italia 1983
1 Cup-Winners’ Cup 1984
1 Supercup 1984
1 European Cup 1985
1 World Cup 1982
유럽 올해의 선수상 1982
월드컵 득점왕 1982(6골)


파올로 로씨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이는 80년대 이탈리아 축구의 불세출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의 플레이 스타일 특성이 파워풀한 스트라이커가 아니였던 점이나 무엇보다 그의 전성기가 너무나도 아쉽게 짧았던 덕분이라 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분명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위대한 선수중 한명이였고, 이탈리아가 마지막으로 월드 트로피를 차지한 1982년 월드컵의 일등공신이였다.
그리고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경기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지코, 소크라테스가 포진한 당대 최고의 팀으로 인정받았던 브라질과의 경기에서의 주인공이자, 82년 축구사에서 최고의 키워드였다.

유로2000년 이탈리아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감독던 디노 조프가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다.
"지금의 이탈리아 대표팀은 20년전과 비교했을때 분명 한단계 아래의 수준이다."
그 20년전의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었던 선수가 바로 파올로 로씨인 것이다.

파올로 로씨가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것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그는 사실 그라지아니를 대체할 백업요원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프레월드컵에서의 무서운 활약을 바탕으로 21세 이하 대표팀의 포워드였던 로씨를 Bearzot이 월드컵 멤버에 포함 시키면서 그라지아니를 벤치로 밀어내고 로씨는 베테가와 호흡을 맞추며 이탈리아의 78년 월드컵 첫골을 뽑아내는 등 3골을 기록, 아쉽게 이탈리아는 4강에 만족해야 했지만 로씨라는 보석을 얻은채 월드컵을 마감하였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이미 이 젊은 포워드에게 맞춰졌고 그를 8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책임질 구세주로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가 세계 축구팬들에게 확실한 임팩트를 주었던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팀들은 펠레시절 이후 최고의 팀으로 인정받았던 지코, 소크라테스가 이끄는 브라질, 78년 월드컵의 우승팀이자 마라도나가 새롭게 떠오르던 아르헨티나, 그리고 플라티니가 이끌던 프랑스, 그리고 80년 유로의 우승국 독일이었다. 이탈리아는 그들보다 한수 아래의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이탈리아의 감독을 맡았던 Bearzot가 82년 이탈리아의 월드컵 도전에 있어서 빼든 무기가 바로 파올로 로씨였다. 1980년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3년 출장정지를 선고받아서 비록 2년으로 줄었지만 월드컵 두달전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파올로 로씨를 선발한 Bearzot에 대한 독설은 끊이지 않았다. 적어도 월드컵이 진행되어 첫 4경기를 치르기 전까진...

Bearzot曰
"난 로씨가 만약 스페인에 가지 못했을때 벌어졌을 상황을 잘 알았다. 나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그만한 기회를 가질 능력을 갖춘 선수를 보지 못했다. 그곳에서 그는 최고였고, 재빨랐으며 항상 페인팅 동작과 함께 달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공격에 있어서 빠른 스트라이커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키가 클 필요가 전혀 없다. 카운터어택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빠른 몸동작만이 요구될 뿐, 그것이 바로 로씨이다."

월드컵이 시작되고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서 한수 아래로 평가받던 폴란드, 카메룬, 페루와의 경기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하고 3무의 초라한 성적을 거둔채 간신히 2차 조별리그에 진출한다. 그리고 파올로 로씨의 득점포도 침묵했다. 특히 페루와의 경기에선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채 전반만 마친 후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되었다. 2년간 경기에 뛰지 못하여 아직 경기감각을 찾지 못한 로씨에겐 연일 가혹한 질책이 쏟아져 나왔다. 로씨 본인도 피지컬 적인 컨디션은 충분했지만 아직 골에대한 멘탈리티나 심리적 요인 때문에 잘 경기에 임할수 없었음을 인정했다.

2차 조별리그에 진출한 이탈리아의 상황은 더욱 암울했다. 4강에 진출하려면 조1위를 차지해야 하는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함께 같은조에 속하게 된것. 하지만 이는 기우였을까, 로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득점포는 침묵했지만 경기력이 살아나면서 첫경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를 꺽은 브라질과의 경기, 브라질은 비기기만 해도 4강에 진출할수 있는 상황이였고 이탈리아는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하자 마자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그것이 마치 오래 묵혀둔 한을 풀듯이 터져나왔다. 로씨의 머리를 떠난 공이 브라질의 골문을 가른 것..

이는 로씨가 자신의 기록한 골중 가장 인상적이고 중요한 골로 뽑았다.

"그것은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정신적인 압박을 벗겨내기에 충분했었고, 나의 모티베이션을 증가시켜 주었다. 그리고 모든 스트라이커와 마찬가지로 한골을 기록하면 가능한 추가골을 뽑고싶은 그런 마음 뿐이였다."

브라질의 반격은 무서웠다. 소크라테스가 이내 동점골을 뽑아낸것
하지만 이탈리아엔 그 동안의 침묵을 깬 로시가 있었다. 브라질의 수비실수를 틈타 재빨리 공을 가로챈 로씨는 브라질의 골문을 흔들면서 이탈리아가 역전하는데 성공시킨다. 더 이상 그의 골은 놀라울 것이 없었다. 다시 2:2로 동점을 만든 브라질은 비기기만 해도 되는 상황에 안주하려 했으나 브라질의 기쁨이 경기장의 아주리 지중해의 푸른빛으로 침수된 것은 불과 15분 만의 일이였다. 감각적인 각도만 바꾸는 골로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훗날 아주리의 가장 역사적인 경기로 평가받는 이 경기의 대미를 장식한 것..



오랜 침묵을 깬 로씨의 득점포는 폴란드와의 4강전에서도 어김없이 두골을 기록하며 이어졌고, 결승전 0-0으로 팽팽한 접전이 벌어지던 순간 이 균형을 깬 것이 바로 천부적인 로씨의 그것이였다. 그리고 아주리는 독일을 3:1로 물리치며 월드컵 트로피의 주인공이 된다.

월드컵이 끝나고 그는 2년간 필드위에서 뛸수 없었던 오랜 한을 풀어내는데 성공하며 올해의 유럽 선수상을 수상하고, 세계 축구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재거리로 떠오르게 된다.



그가 유벤투스와의 인연을 맺게되었을 때는 무릎 연골파열 이란 위험성을 갖고 있던 어린나이였다. 코모로 임대된 그는 코모에서 Serie-A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된것은 유벤투스가 그의 소유권 50%를 피아첸자에 넘기면서 Serie-B 피아첸자에서 뛰면서이다. 피아첸자에서 첫시즌인 76-77시즌 그는 21골을 기록하며 피아첸자의 승격에 일등공신이 된다. 그리고 이듬시즌 그는 Serie-A무대에서 24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이 됨과 동시에 피아첸자가 유벤투스에 이어 2위를 마크하는 기적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벨기에와의 경기에 A매치 데뷔도 이루어 졌다. 78-79시즌 15을 기록하며 조금은 실망스런 성적을 거두면서 피아첸자가 다시 강등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서 그는 페루지아로 임대를 가게 된다. 그리고 페루지아에서 28경기에 출전 13골을 넣지만 Avellino와의 2-2 무승부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2년간 출장정지 처분을 받는다.

그가 유벤투스 컴백하는 것은 이 출장정지 처분이 내려지기 바로 직전, 2년간 비록 벤치에서 선수들이 뛰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지만 그의 출장정지 처분이 끝나자 유벤투스는 싼 가격에 82년 최고의 스타를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유벤투스가 전성기를 달리던 80년대 초, 플라티니, 보니에크와 함께 공격을 이끌면서 수 많은 트로피를 얻게된다. 그리고 85-86시즌 그는 밀란으로 이적과 동시에 그의 선수생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퍼지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고질적으로 그를 괴롭혀 오던 부상과 2년간의 공백은 커다란 짐이였고 밀란에서 그는 겨우 2골만을 성공시켰으며 86년 월드컵에 참가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스타가 아닌 평범한 선수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베로나로 이적하게 되며 서서히 잊혀지게 된다. 그때가 그의 나이가 축구선수의 최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 스물 아홉..

그는 베로나에서 몸담으며 1987년 4월 마라도나가 버티는 나폴리와의 3-0으로 승리하는 경기를 끝으로 필드를 떠나게 된다.


그는 발재간이 뛰어나거나 파워풀한 스트라이커가 아닌 천부적인 감각으로 위치선정에 능한 스트라이커였다. 보이지 않다가도 어느새 나타나 골을 넣고 스트라이커로 수비가담이 거의 없었던 그의 특성때문에 훗날 많은 이들의 로씨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82년 월드컵을 우승하지 못했다는 의견에는 많은이들이 동의한다.
플라티니와 보니에크나 리암브래디, 베테가 등에 비하면 레젼드로써 80년 유벤투스 전성기의 조연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파올로 로씨는 위대한 선수임에 틀림없다.

90년 스킬라치나 94년 바죠의 활약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제 2의 로씨신화를 기대한 것 처럼, 그의 센세이션은 대단했고, 전성기가 매우 짧은 조로현상이라고 해야 하나요? 암튼 이른 나이에 잊혀져 간 점은 정말 아쉬움으로 남는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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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la JUVE Lv.5 / 521p
댓글 14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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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7
어린나이의 짧은 전성기... 로비 파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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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알레
2007-05-28
위치선정면에서 전성기때의 이 선수 따라올 선수가..
현역에는 인자기나 반니정도? 과거로 따지면 비르디스나 반 바스텐정도..

제 블로그 이웃인 비타주리님은 로시를 이렇게 평합니다..

'핵폭탄 속에서도 살아남을 위치선정' and..

'앞으로 월드컵 본선, 브라질과의 대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할 선수는 다신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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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Panda
2007-06-16
버섯따다 골 넣었네 정도의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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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1
쥐구멍 선점 정도의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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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5
진짜 브라질에게 해트트릭을 먹인 분은 이 분 밖에 -_-
이분이 그 전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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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8
사실 유벤투스에서는 그의 엄청난 능력이 많이 발휘되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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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알레
2007-09-16
예전에 이탈리아 현지에서 아주리니 관련 칼럼쓰시는 분이
로시옹을 평가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파올로는 몸체가 없는 것 같다. 그는 수비수 몰래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해 득점하는 것 같다. 정말 놀라울 정도의 선점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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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i1
200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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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luja
2007-11-11
11 짱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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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알레
2007-11-20
본좌 뜨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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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본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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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V&ITA
2008-02-02
자랑스러운 로시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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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아.. 파올로 로시 좀 들어본선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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