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20-21 써드아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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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일 15시 12분

 

현대의 축구에서 간단명료한 축구 선수는 멸종 위기다. 우리의 영웅들이 슈퍼맨처럼 심한 고통 속에서 피흘리며 뛰는 모습이 보이던 시절은 끝났다. 그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프로 스포츠인은 어때야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나아졌거나 나빠졌거나는 판단하기 나름이지만-오늘날의 선수들은 다른 종에 속해있다.

 

축구선수가 셀레브리티처럼 행동하는 요즘 시대에, 선택된 소수만이 오래된 불꽃을 마저 태우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의 인식에 구애받지 않고 명망을 좇지 않는다. 그들에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축구다.

 

걸출한 동료들보다는 훨씬 덜 추앙받지만, 마리오 만주키치가 그런 선수 중 하나다. 그는 당신을 벌떡 일어나게할 정도의 현란한 플레이를 하거나 마술과 기교로 당신의 혼을 빼놓는 선수는 전혀 아니다. 그는 수비수를 마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제치지도 못하고, 개인적인 성취를 과시할 사람도 아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축구를 하고 이기는 것 뿐이다.

 

비안코네리가 로마를 1-0으로 이긴 후,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이 만주키치를 '비범한 선수'라고 언급한 것은 전세계의 유벤투스 팬에겐 새로울 것 없을 일이었다. 그들은 최고의 남자, 왕년의 레전드가 즐비한 팀에서 투쟁하는 만주키치를 봐왔다.

 

그가 다수의 인터뷰에서 쓰는 "노 굿"이란 말이 그의 성격을 아주 잘 설명해준다. 동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 남자에겐 어떤 것도 충분치 않다. 그는 언제나 전진하고 거세게 밀어붙이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쏟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때에도 그를 최고에 있게 한 건, 정상에서 또다른 정상으로 향하며 더 많은 것을 이루려는 이런 그의 채울 수 없는 갈증이다.

 

이번 시즌 유벤투스에서의 모습이 만주키치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모습인 듯 하다. 드디어 그의 재능이 다방면으로 인정받게 된 곳이 바로 토리노다. 그는 3번의 스쿠데토를 거머쥐었으며 또 다른 우승을 향해 가고 있다.

 

유벤투스에서는 그가 중요한 골을 넣는 것이 트레이드마크화되고 있다. 라치오, 인테르, 밀란, 나폴리, 로마에게 골을 넣은 그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저평가된 빅 게임 플레이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의 가족 독일로 이주한 1991년, 자신의 축구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잡으며 시작되었다.

 

보스니아 국경 지대에 위치한 그의 고향 슬라본스키 브로트가 독립 전쟁의 영향으로 공격받았고, 독일의 디칭엔이라는 마을이 만주키치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어린 만주키치는 전쟁으로 파괴된 고국을 떠나온 아픔을 달래줄 방법을 찾았다.

 

그는 아버지가 수비수로 활동하던 지역팀 디칭엔의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 팀에서 플레이한지 5년이 지나고. 만주키치의 가족은 더이상 독일에 체류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 독립이 비준된 크로아티아로 돌아가야만했다.

 

고향에 돌아온 만주키치는 역경과 싸우고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은 훗날 자신의 커리어를 정의하는 특징이 된다. 복귀 후 6년간은 슬라본스키 브로트에 연고를 둔 마르소니아에서 뛰었다. 작은 클럽인 젤레즈니차르에서 다음 시즌을 보내고 돌아와선 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퍼스트 팀의 선발로서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그는 평균 2경기마다 한 골을 기록했고 이것은 NK 자그레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수도에서 덜 알려진 이 팀(주: 크로아티아에선 디나모 자그레브가 유명합니다)인 NK 자그레브가 크로아티아의 전통적인 파워하우스는 아니었지만, 선발도 아니었던 만주키치는 두 시즌만에 임팩트를 남겼다. 2006/07시즌 리그에서 11골을 기록한 그의 모습은 더 큰 클럽의 관심을 불러왔고, 실제로 슬라벤 블리치 감독은 유로 2008 이후 크로아티아 대표팀에 그를 소집하기도 했었다.

 

2007년 에두아르도 다 실바를 아스날로 보낸 후, 크로아티아 최대의 클럽인 디나모 자그레브는 대체자로 만주키치를 낙점했다. 크로아티아 최대의 클럽은 겨우 130만 유로를 지불하고 루카 모드리치가 존재하던 스쿼드에  만주키치를 더했다.

 

디나모에서의 첫 시즌, 만주키치는 두 가지 장점을 보여줬다. 득점과 열정. 스타디온 막시미르에서의 첫 시즌에 22살 그의 모습은 앞으로 유망한 장래를 예견했다. 그는 득점을 올리며 모드리치 같은 선수가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경고를 자주 받는다는 문제가 약간 있긴 했지만, 승리를 향한 그의 의지와 프로 정신으로 팬들의 사랑을 즉시 차지했다.

 

그의 경기 방식은 과거 그의 투쟁을 보여준다. 만주키치 가족은 그 시기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너무나 작은 것을 위해 너무나 큰 희생을 해야했다. 이 스트라이커의 눈에는 적응이냐 실패냐의 문제였으며, 선택은 분명했다.

 

그는 디나모 데뷔 시즌에 12골 11도움을 기록했고, 자그레브가 종종 배출해내는 여느 명망있는 젊은 공격수처럼 만주키치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었다. 국제 무대에서도 그는 이름을 얻고 있었다. 만주키치는 2008년 9월 잉글랜드에게 4-1로 진 경기에서 대표팀 첫 골을 넣었고, 이후 대표팀의 선발 9번이자 자국 리그의 탑 스코어러가 되었다.

 

2009년 여름 가장 먼저 그에게 접근한 것은 베르더 브레멘이었다. 디나모에게 약 1,200만 유로를 제시했다고 알려져있다. 비록 이 이적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 스트라이커가 조만간 고국을 떠날 것은 분명해보였다.

 

얼마되지않아 디나모는 유로파리그에서 안더레흐트에게 2-0으로 패배했고, 만주키치는 경기에서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10만 유로의 벌금을 받았다. 그 시즌에 만주키치는 24경기에서 14골을 넣었고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에서도 2골을 넣었기에, 이 일로 독일행은 더욱 분명해졌다.

 

2010년 볼프스부르크의 감독인 스티브 맥클라렌은 네덜란드 트벤테 부임 시절부터 만주키치를 원했었다. 전 시즌 챔피언으로서 분데스리가 정상에 복귀하고 공격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그는 만주키치를 헐값인 700만 유로에 데려왔다. 같은 시기 영입한 브라질리언 플레이메이커 디에구와 시몬 키예르와 함께, 6,000만 유로의 이적시장으로 바이에른 뮌헨을 추격할 준비가 된 걸로 보였다.

 

하지만 맥클라렌은 만주키치를 중앙보단 측면에 기용하는 걸 선호했고, 아직 클럽에서 자리를 잡기 전 시기에 8득점으로 보답한 것은 상당한 성적이었다.

 

실망스럽게도 볼프스부르크는 그 시즌을 15위로 마쳤고 맥클라렌은 겨울에 경질됐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에서 스트라이커 만주키치의 등장의 발단은 에딘 2011년 제코의 맨체스터 시티 이적이었다. 피에르 리트바르스키가 소방수로 부임했고 그는 만주키치를 원톱으로 기용하는 걸 선호했다. 그 후에 시즌을 마칠 때까지 감독으로 있었던 펠릭스 마가트도 그러했다.

 

그 다음 시즌 분데스리가에 그의 존재감이 알려졌다. 그는 12골로 볼프스부르크 내 최다득점을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선발 자리를 꿰찼다. 그는 10개의 도움도 기록하며 제코와 그 이전 그라피테의 그림자를 지우며 팬들의 사랑을 차지했다.

 

유로 2012 이후 그의 주가는 더욱 상승했다. 이제는 볼프스부르크 외에서도 그러했다. 그는 대회에서 3골을 넣어 마리오 고메즈와 함께 공동 득점왕이 되었다. 이것은 가장 높은 레벨의 축구를 향한 그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준다.

 

이 때 바이에른 뮌헨은 위르겐 클롭이 이끄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등장으로 그 빛을 다소간 잃은 상태였다. 2시즌 연속 도르트문트에게 분데스리가 우승을 내준 뒤, 디어 호튼(뮌헨의 애칭)은 2011/12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첼시에게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그들이 3번의 실패를 참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만주키치를 영입함으로서 바이언은 마리오 고메즈의 부담을 덜어주어 더 많은 득점 보장을 노렸다. 고메즈는 2011/12시즌 바이언의 최다득점자였지만 클롭의 도르트문트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무언가가 더 필요했다. 1,300만 유로의 이적료는 바이언에게 좋은 딜이었으며, 만주키치는 커리어 세 번째로 염가에 이적하게 됐다. 이 시기에도 그가 현저히 저평가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 시즌 바이언에서 만주키치는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도르트문트가 맨유로 떠난 카가와 신지의공백을 느끼는 동안, 디어 호튼은 단 한 경기에서만 패하며 25승을 거두고 승점 91점을 달성했다. 도르트문트의 우선순위는 챔피언스 리그로 변경되어 그 대회에 결승에 올랐고, 그들의 앞에는 다시 바이에른 뮌헨이 서 있었다.

 

대망의 무대에서 만주키치는 두 골을 넣었고, 막판 아리엔 로벤의 골로 그들이 영광을 차지했다. 바이언은 그 시즌 결승전에서 슈투트가르트를 꺾으며 DFB 포칼컵마저도 들어올렸다. 골도 골이었지만, 만주키치가 가장 고무적이었던 것은 이제 알리안츠 아레나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여긴다는 점이었다. 그의 열정, 노력과 프로 의식은 바이언에 알맞는 것이었으며, 여러 독일의 레전드들이 넌지시 언급한 바 있다.

 

기묘하고 비정통적인 만주키치는 전통적인 윙어에서 전형적인 타겟맨까지 공격진의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는 드리블도 개인기도 할 수 있었으며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였다. 비정통적이란 수식어는 보통 토마스 뮐러가 가져갔지만, 만주키치는 여전히 유연하고 영리하고 유니크했다. 그저 그의 기록이 항상 그걸 보여주는 건 아니었을 뿐.

 

2013년 펩 과르디올라가 바이에른 뮌헨에 부임했을 때, 만주키치의 날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아마 이 스페인 감독이 팀에 채우고 싶었던 유연함과 스타일이 부족했을수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30경기에서 18골을 넣고 있었고 그를 지키려는 생각은 안했겠지만 과르디올라의 존중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스포르츠케 노보츠키와의 솔직한 인터뷰에서 만주키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솔직하게는, 과르디올라의 스타일 아래선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강점을 발휘하기 힘들다."

 

과르디올라는 DFB 포칼컵 결승에 그를 제외시키기로 결정했고 메세지는 분명했다: 넌 필요없다. 만주키치는 집에 머물렀다. 당시 그의 고향 주변 지대는 역대 최악의 홍수로 신음하고 있었다. 바이언 생각에서 벗어나, 이 스트라이커는 수재민을 도와줄 물품을 실은 밴 세 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동물을 구조하고 생계가 무너진 사람들을 도왔다.

 

독일에 있을 날이 줄어드는 동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에게 옳은 행선지로 보였다. 낮은 방어율과 단단한 미드필더에 의존하는 팀이었다. 로지블랑코스는 만주키치를 디에구 코스타와 팔카오와 같이 여겼다. 그의 갈망, 지성과 열정은 디에고 시메오네의 머신에 완벽히 맞는 것이었다.

 

그는 그 시즌 모든 대회 43경기에서 20골을 넣었고,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를 4-0으로 꺾을 때는 센터 포워드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비센테 칼데론에선 예상만큼 뛰지 못했는데, 훈련에서의 태도 문제와 시메오네와의 의견 차이가 마드리드에서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클럽과 선수 모두에게 안좋은 기억으로 남고 말았다.

 

2015년 유벤투스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근접했지만, 꾸준히 골을 넣어줄 월드클래스 9번이 결여되어 있었다. 알바로 모라타와 카를로스 테베즈가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까지 팀을 인도했지만, 필요할 때 골을 넣어줄 골스코어러는 부족했다. 1,900만 유로로 이적해온 만주키치가 바로 그 역할을 부여받았다.

 

현재로선 만주키치는 비안코네리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토리노에서 그의 모습은 알레그리의 팀 내에서 그의 잠재력을 만개한 것으로 보이며, 유베의 공격력을 완성시켜주는 실질 우선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적응력은 2016년 클럽 레코드로 곤살로 이과인을 영입했을 때 잘 드러났다. 이과인은 전방에 단독 스트라이커로 뛰었고, 만주키치는 왼쪽 측면의 완벽한 외피가 되어 풀백을 보호하며 극도로 중요한 골을 득점하기 위해 사이드에서 축구에서 가장 지능적인 침투를 수행했다.

 

2018년 월드컵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 만주키치의 운동량, 볼 탈취 능력, 압박은 중원에서 모드리치의 기여도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는 16강전에서 골을 넣었고, 잉글랜드와의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었으며, 결승전에선 프랑스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절정을 기록했다. 바야흐로 그는 전부터 받아 마땅했던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 거의 100경기를 뛰었고 유벤투스에서 파워 포지션을 맡은 32살의 만주키치는, 여전히 축구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https://thesefootballtimes.co/2018/12/30/the-grit-and-the-big-game-goals-of-mario-mandzukic-one-of-the-footballs-most-underrated-for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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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20-21 써드아케 Lv.52 / 87,162p

Win the 57th match.
제 글은 당사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추천 자제좀ㅠ 알림이 너무 많이와요..

댓글 5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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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항상 번역 감사드립니다 ㅠㅠ

생각해보니 만주키치는 정말 헐값에 왔네요... 흑흑 평생가요 미스터 노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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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2
진짜 고맙고 멋있는 선수 vs바이언 에서 레반돕과의 신경전에서 보여준 짐승같은 모습은 아직도 못 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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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18-19 홈 만주키치
2019-01-02

이형 너무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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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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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솔직히 날두 오기전까지 에이스는 만두라고 생각햇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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