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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4일 23시 44분

원문 : 『月刊ワールドサッカーキング』2015年9月号

   「STORY マリオ・マンジュキッチ クロアチアの”野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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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FACE STORY Mario MANDZUKIC

크로아티아의 “야수”

 

마리오 만주키치(유벤투스/크로아티아 대표)

베를린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으로부터 약 2주 후, 크로아티아출신의 다부진 스트라이커가 토리노에 도착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의 폭발력과 압도적인 공중전의 강자.

유벤투스의 최전방은 강렬한 개성을 지닌 “야수”에게 맡겨졌다.

 

글=크리스티안 조르다노(Cristian GIORDANO)

번역=다카야마 미나토(Minato TAKAYAMA)

 

 마리오 만주키치는 크로아티아에서 “Gilkosu”라고 불린다. “살인 청부업자”를 의미하는 이 별명을 붙여준 사람은, 1998년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를 3위에 올려놓은 영웅,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다. 원래 “Gilkosu”는, 후안무치하고, 거만하며, 상스러운 뉘앙스의 단어이지만, 블라제비치는 에이리어 내에서 굵직하게 플레이하며 술수에 능한 남자라는 의미로 만주키치에게 붙여주었다.

 만주키치의 몸을 휘감고 있는 수많은 문신은, 주위로부터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트럼프 카드의 에이스가 4장, 주사위가 2개, 별, 꽃, 공, 수호천사를 향한 기도를 크로아티아어로 새겨넣은 부분, “강함, 행운, 가족, 신앙”을 의미하는 한자, 왼쪽 어깨에 커다란 십자가, 거기에 허리쪽에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인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 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문신에만 시선을 두어선 안 될 것이다. 야수와 같은 몸 안에는,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다. 피치 위에서는 사자와 같으나, 여동생과 조카, 연인 이바나 앞에서 그가 가진 “야성”은 모습을 감춘다. 만주키치는 일정이 없을 때 언제나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테니스를 치거나 레스토랑에서 사이좋게 식사를 하기도 한다. 시즌이 끝나면, 모두 여행을 가기도 하는데, 그들 옆에는 애견인 렌니가 함께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분명 그를 ”살인 청부업자”라고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별명은 만주키치의 플레이 스타일, 그의 성격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2006년에 NK자그레브에서 만주키치를 지도했던 블라제비치의 눈은 정확했다. 테크닉과 전술에 관해서는, 세련된 선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바이에른 시절에 이르러서는 “살인 청부업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2년간 88경기 48골은, 충분히 평가받을만한 성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만주키치는 카를로스 테베스와 같은 전술적인 유연성을 가진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디에고 코스타를 대신할 선수로서 기대를 받았으나, 디에고 코스타가 될 리가 없었다. 시메오네 감독은 두사람의 차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리오는 어디까지나 골대 앞에서만 플레이하는 타입의 스트라이커다. 패스를 공급해주는 선수가 없으면,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반면에, 디에고는 내려와서 공을 받고, 골대 앞까지 직접 공을 몰고 오는 플레이가 가능했다. 두사람의 플레이 스타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마리오가 아틀레티코에서 활약할 수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여기서 기록한 20골은 이전 시즌에 바이에른에서 기록한 26골보다 가치가 있다고 본다.”

 

모국에서 실적을 쌓아 “제2의 고향” 독일로

 만주키치가 공을 차기 시작한 것은 6살 때부터. 장소는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디팅겐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만주키치 가문은, 보스니아 분쟁의 불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독일로 이주했다.  아버지인 마토 만주키치는 디팅겐에 있는 팀에서 플레이를 했으나, 얼마 후 내전이 끝나자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리오는 크로아티아 동부 슬라본스키 브로드의 지역 팀인 NK마르소니아에서 플레이하게 되었다. 11살 때의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소니아의 하부 팀에서 플레이하고, 제리에즈니차르(사라예보에 있는 팀과는 별개의 팀)로의 임대를 거쳐, 04-05시즌에는 1부팀으로 승격. 데뷔 1년차부터 23경기에 출장, 14골을 기록하며 이 활약으로 인해 NK자그레브의 주목을 끈다. 만주키치는 187센치, 84킬로라는 당당한 체격을 활용하는 법을 “살아있는 전설” 블라제비치로부터 배워나가며, NK자그레브에서 2년간 17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한층 더 높은 수준의 팀인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07년 7월, 만주키치는 아스날로 이적한 에두아르도 다 실바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디나모 자그레브에 입단, 그로부터 4개월 후인 11월에는 대표팀에 승선하게 된다. 07년 11월에 유로2008 예선 마케도니아전에서 대표팀 데뷔를 하며, 08년 9월 월드컵 예선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대표팀 첫 골을 기록한다. 참고로, 만주키치는 현재까지 크로아티아 대표로서 60경기 출장에 19골을 기록하고 있다.

 만주키치는 대표팀에서 활약하기 전부터, 유럽의 컵 대항전에서도 그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07년 10월에 UEFA컵(현 유로파 리그) 1회전에서 아약스와 맞붙었는데,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2차전에서 PK를 얻어냈을 뿐만 아니라, 추가시간 2분간 2골을 기록하는 등, 대담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팀을 3대2 역전승으로 이끌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이 시합에서 활약한 만주키치에게 평점 10점을 부여하는 신문도 있을 정도였다.

 이 시즌에는, 각 팀의 주장단 투표에 의해서 결정되는 리그MVP를 수상했다. 이듬해 08-09시즌에서는 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는 동시에, 스포츠지 “스포르츠케 노보스티” 가 선정하는 리그 MVP를 수상했다.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플레이한 3년간의 성적은 128경기 63골, 크로아티아 리그 우승 3회, 크로아티아 컵 우승 2회에 달하는 등, 팀 타이틀도 다수 획득했다.

 이 활약 덕택에, 그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 플레이할 기회가 생겼다. 새로운 도전을 할 팀은 1년 전, 클럽 역사상 최초의 분데스리가 제패를 달성한 볼프스부르크. 다만, 클럽에서 리그 타이틀을 따낸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 이미 샬케로 떠난 후로, 새롭게 팀을 지휘하고 있던 사람은 그 유명한 스티브 맥클라렌이었다. 맥클라렌은 크로아팅와 잉글랜드가 유로08본선 출전을 걸고 맞붙었던 07년의 플레이오프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며, 비가 내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우산을 쓴 채로 유로 출전권을 놓쳤다. 그로 인해, 데일리 메일 로부터 “A wally with a brolly(우산을 쓴 멍청이)” 라고 혹평을 받은 감독이었다. 볼프스부르크 입단 당시의 만주키치는, 주로 교체출장을 하며, 때로는 낯선 위치인 사이드에서 플레이 하도록 강요받았다. 당시 센터포워드에는 에딘 제코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 이적시장에서 제코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함에 따라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또한,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2월에는 맥클라렌이 경질되며, 3월 뉘른베르크전에서 대망의 분데스리가 첫 골을 기록하게 된다. 그 다음 주에는 마가트가 다시한 번 팀을 맡게 되면서, 만주키치가 각성하게 된다. 특히 시즌 후반에는 7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는 등, 팀의 분데스리가 잔류에 공헌했다.

 그 후, 유로2012에서는 3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등극, 만주키치는 한층 더 높은 레벨에서 플레이하게 된다. 1300만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바이에른에 가게 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바이에른을 이끌던 명장 유프 하인케스. 그가 만주키치를 완벽하게 조련을 했다고는 단정지을 수 없지만, 적어도 만주키치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감독 중 한명임에는 틀림없다. 하인케스는 새로운 스트라이커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그의 뛰어난 신체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 만주키치를 원톱으로 놓는 4-2-3-1은 훌륭하게 가동되었으며, 분데스리가, DFB포칼,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제패하는 성과를 냈다. 만주키치는 도르트문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기록, 그 존재감을 강하게 과시했다. 이 후에 바이에른에 입단하며 만주키치를 밀어낸 레반도프스키가 상대팀에서 플레이했다는 점은, 불가사의한 인연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골 에이리어 내에서 보여주는 압도적인 존재감

 유벤투스의 선수 획득 리스트를 보면, 무엇보다도 스트라이커의 이름이 많다고 할 수가 있겠다. 스피드가 빠른 FW, 젊고 장래성 있는 FW, 테크닉이 좋은 FW…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보강도 이루어졌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드진은 어째서 만주키치를 데려온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유베는 그의 “골 에이리어 안에서 보여주는 강력함” 특히 “공중전의 강자” 라는 점에 큰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주키치는 분데스리가에서 4년간 110경기 53골, 프리메라리가에서 1년간 27경기 12골을 기록했지만, 놀라운 점이 5시즌간 기록한 65골 중에서 4할에 가까운 28골을 헤딩으로 얻어냈다는 사실이다. 반면, 에이리어 밖에서 기록한 골을 찾고자 한다면, 볼프스부르크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가 어느정도로 골 에이리어 내에서, 특히 공중전에 강한 선수인가를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기록한 11골이 전부 에이리어 내에서의 슛팅에 의한 것으로, 그 중 7골은 머리로 따낸 것이다.

 유벤투스는 이전부터 골 에이리어 내에서 강력함을 발휘하는 스트라이커를 찾고자 했다. 즉, 만주키치의 이적은, 안드레아 아넬리 회장을 시작으로, 쥐세페 마로타 GM, 파비오 파라티치SD의 의향에 따른 보강이었을 것이다. 에이리어 내에서의 스페셜리스트라는 점에서, “이미 페르난도 요렌테가 있지 않은가요?” 라는 질문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에 대한 보드진의 의견은 다르다. 요렌테는 장신에 볼 테크닉도 좋지만, 의외로 헤딩을 통해서 골을 결정짓는 강력함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 골문 앞에서 제공권을 따내는데 익숙한 유벤투스에 있어서, 남은 과제는, 이 새로운 선수가 알바로 모라타, 혹은 파울로 디발라와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 라는 점이다. 테베스가 빠진 공백은 보드진의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포워드로서도, 세컨드 탑으로서도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준 테베스의 공백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막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시즌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 한다.

 하지만, 만주키치의 입단에 의해서 유베의 득점력은 향상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는 이때까지 팀이 안고 있던 공격면에서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해결해 줄 재능이다. 다만, 만일 그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경우, 알레그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만주키치가 주전이 아닌 벤치멤버로서 경기를 시작하는 것을 성숙하게 받아들일 유형의 선수가 아니라는 것은, 감독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팀에 대한 헌신과 강렬한 개성

 또 하나, 만주키치의 장점으로써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있다. 득점만으로 본다면, 그 이외에도 훌륭한 스트라이커는 얼마든지 있으나, 스태미너와 희생정신이라는 점에서 그와 어깨를 견줄만한 선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일찍이 펩 과르디올라가 말했듯이, 만주키치는 레반도프스키와 같은 위치선정 능력은 없다. 디에코 코스타처럼 혼자서 골문 앞으로 공을 운반하는 선수도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광폭할 수준의 투쟁심이 있다. 더불어 팀을 위해서 궃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마음도 지니고 있다. 동료를 위해서 골문 앞에서 공을 키핑하며, 상대 수비수에게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면서 빌드업을 방해하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볼프스부르크에서 그를 지도했던 마가트는, “만주키치는 2경기 연속으로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의 스태미너를 가지고 있다”라고 크게 칭찬했다. 가혹한 피지컬 트레이닝을 부과하는 것으로 유명한 마가트가 인정할 정도의 선수인 것이다.

 다만, 그런 마가트조차도 만주키치를 다루는 일에는 굉장히 곤란해 한 듯 하다. “그를 다룰 수 있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과르디올라도 바이에른의 감독으로 취임한 직후, 한 차례 만주키치에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 2013년 UEFA 수퍼컵 첼시전에서 그를 사이드에서 잡아둔 것이다. 하지만, 그 지시가 빛을 발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펩과 만주키치의 관계는 끝났다. 아니,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조차 한 적이 없다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2013년 여름에 과르디올라가 온 시점에서, 만주키치를 둘러싼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고 말았다. 펩은 처음부터 그와 연을 끊을 듯 했다. 펩이 움직임 측면에서 규율을 지키지 않은 일로 화를 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만주키치가 펩의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하는 “가짜 9번”의 이미지와 동떨어진 것도 치명적이었다. 바르셀로나 시절, 그 훌륭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조차도 펩의 눈에 들지 못했을 정도인데, 만주키치가 펩을 납득 시킬 수 있을리가 없었다.

 만주키치는 “스포르츠케 노보스티” 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인케스 시절에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2배, 3배 즐거웠어요. 그런데 과르디올라가 감독으로 취임한 시점에서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펩은 저를 낙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한 마디의 경의도 표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그런 사람은 함께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와는 함께 커피조차도 마시고 싶지 않아요. 저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바이에른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과르디올라의 축구 철학에도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서로간에 이해가 없는데, 모든 것이 잘 풀릴 리가 없지요.”

 알레그리는 이 “Gilkosu” 를 조련해 볼 생각일까, 아니면 그가 마음먹은대로 플레이 할 수 있게 놔둘 것인가. 유벤티노에게 있어서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일 것이다. 만주키치는 감독에 의해서 좋고 싫음이 확실히 나뉘는 유형의 선수다. 과연 알레그리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유형의 선수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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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20-21 홈저노 Lv.31 / 12,207p
댓글 14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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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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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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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저번 시즌 경기력이 좋지 못할때 테베즈가 크랙노릇을 하며 우걱우걱 승리를 따냈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만주키치가 박스 내에서 어떻게든 골을 넣어 줄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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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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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자료 접했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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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고생하셨습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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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선추천 후정독합니다!

팀에 대한 헌신과 강렬한 개성 - 2번째 문단 도입부 '다만, 그런 마가트로' >> '다만, 그런 마가트도' 로 수정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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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수정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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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잘 봤습니다!

만주키치가 최고의 플레이를 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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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감사합니다!! 만주키치 이번시즌 가장 기대하는선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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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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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만주키치 잘 몰랐는데 자세히 알수있었네요..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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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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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1

매력적인 만주키치..

 

잘봤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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