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4일 20시 45분

선수 정보 : 지안루이지 부폰

소속팀 : 유벤투스

국적 : 이탈리아

생년월일 : 1978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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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루이지 부폰은 1978 년 1 월 28 일 투스카니 카라라에서 운동선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 스텔라 마소코는 원반던지기와 투포환으로 이탈리아 챔피언을 3번이나 했으며, 아버지인 아드리아노 부폰도 투포환 국가대표 선수였다. 또한 삼촌인 단테 안젤로 마소코도 이탈리아 프로농구와 국가대표팀을 넘나드는 훌륭한 선수였다. 거기다가 아버지의 남매인 구엔달라나와 베로니카 역시 프로배구 선수였다. 또 부폰 할아버지의 2종사촌이던 로렌조 부폰은 밀란, 제노아, 인테르, 피오렌티나에서 뛰었던 국가대표 골키퍼 였다. 스포츠 집안의 영향을 받게된 부폰은 축구에 관심이 있었고, 본래 제노아의 팬이던 부폰의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 

 

미드필더로써 잠재력이 있었는지, 볼로냐와 밀란이 부폰을 데려올려 했지만 부폰은 가깝다는 이유로 파르마를 선택하여 1991 년 13 세의 나이에 파르마 유스아카데미에 입단해 자신의 축구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앞서말했듯이 미드필더 였고, 유스아카데미에서도 미드필더로 훈련을 소화했었다.

 

그런데 파르마 유스팀의 골키퍼들이 부상을 당하면서 골키퍼를 소화할 선수가 없었고, 그의 큰 키와 피지컬 때문에 골키퍼로 콜업이 됐었고, 이 시기에 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 대표팀의 수문장이었던 토마스 은코노의 플레이에 완전히 빠져들면서 그를 자신의 롤모델로 정한다. 그는 이 포지션에 신속하게 적응을 했고, 2주만에 파르마 유스팀의 주전 골키퍼로 발돋움했다.  유스 아카데미의 골키퍼 였던 에르메스 풀고니는 지안루이지 부폰의 스승이 된다. 

 

1994 년 여름 1군 팀과 훈련을 시작한 후, 부폰은 1995 년 성인 팀에서 콜업됐으며, 17세의 나이로 첫 1군무대 데뷔를 하게된다. 그의 상대는 AC밀란이었고, 11월 19일날 열린 이 경기에서 부폰은 팀의 0대0 무승부를 이끈다. 당시 밀란에는 발롱도르 위너인 로베르토 바죠와 조지 웨아, 마르코 시메오네가 버티고 있었지만 그는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부폰은 코파 이탈리아 2라운드에도 출전했고 팀은 탈락했지만, 이외에 리그에서 7경기를 더 출전했다. 파르마는 리그 6위를 차지하며 유로파리그의 전신인 UEFA 컵 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부폰은 파르마 골키퍼 윌리엄 베치에게 훈련을 받았고, 베치는 부폰의 성공에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다.

 

국가대표에서는 15세이하부터 23세이하까지 모든 단계를 거쳤고 96년 올림픽에도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참전을 했다. 이탈리아는 16세이하 UEFA 유로피언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을 했었고, 일본에서 열린 17세이하 FIFA 세계 선수권 대회, 95년 19세이하 유로피언 대회 결승 진출을 했었다. 이 모든 대회에서 부폰은 모두 참가했었다. 부폰은 96년 21세이하 UEFA 챔피언십 대회에서 이탈리아 대표로 참전하여 우승을 달성했고, 97년 바리에서 열린 지중해 올림픽 축구경기에서도 이탈리아의 금메달 획득에 일조하였

 

96/97시즌에는 파르마 골키퍼 루카 부치와 알레산드로 니스타를 밀어내고 주전 골키퍼로 발탁됐으며, 부폰과 함께 파르마는 1위를 기록한 유벤투스에 이어 2위를 기록,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에 진출한다. 이 시즌에 부폰은27경기를 소화하며 17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고, 이 훌륭한 골키퍼는 이탈리아 언론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르마는 코파이탈리아 2라운드와 UEFA컵에서 비토리아에게 패배하면서 탈락을 한다. 

 

그 다음시즌인 97/98시즌 파르마는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디펜딩 챔피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이은 2위를 기록하여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준결승전에서 탈락한다. 리그에서는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데, 인테르의 공격수 호나우두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그 경기에서 파르마 팬에게 자신의 유니폼 안에 입고있는 슈퍼맨 티셔츠를 보여주면서 얻게 된 별명이다. 물론 이 별명은 그의 운동 능력과 민첩성을 참고하여 지어준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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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도에 부폰은 이탈리아 국가대표 성인팀 감독이던 체사레 말디니에 의해 콜업됐고,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리고 98년 러시아 월드컵 플레이오프 첫번째 경기에서 골키퍼 지안루카 팔류카가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 투입됐고, 부폰은 2차대전 이후 월드컵에 참가한 역대 골키퍼 선수들중 최연소 선수로 기록을 달성하는데 , 후에 2016년 9월 1일 지안루이지 돈나룸마가 이 기록을 깬다. 이 경기에서 부폰의 눈부신 선방이 있었지만 칸나바로의 자책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한 이탈리아는 월드컵 본선진출권을 획득하게 됐다. 이후 98년 월드컵에서는 1군무대에 콜업이 됐고 처음에는 서드 골키퍼였다. 아주리의 주전 골키퍼는 안젤로 페루찌, 새컨드는 지안루카 팔류카였다. 후에 페루찌가 부상을 당하면서 팔류카가 주전, 부폰은 새컨드로 승격, 서드 골키퍼로 프란체스코 톨도로 정해졌지만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우승팀 프랑스에게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를 하며 탈락했다. 

 

파르마에서 네번째 시즌인 98/99 시즌 부폰은 UEFA컵 결승전에서 마르세유를 상대로 클린시트를 기록하여 3대0 승리로 자신의 선수경력에서의 첫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여기에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도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UEFA 컵과 코파 이탈리아 더블을 기록한다. 

 

98/99시즌 4위를 기록하여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레인저스와 조별예선 티켓을 걸고 경기를 펼친 파르마는 패배를 하면서 UEFA컵으로 떨어졌다. 이 시즌 시작하기전에 부폰은 23세이하 골키퍼들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브라보상을 수상했고, IFFHS 선정 베스트 골키퍼 5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발롱도르 후보로 첫 지명이 됐다. 이후 부폰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대회에서 세리에 챔피언 AC밀란을 꺾고, 첫 이탈리아 슈퍼컵 트로피를 차지했다. 이후 파르마는 4위를 기록하여 인테르와 동률을 이루면서 인테르와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티켓을 놓고 대결을 했지만  인테르에게 3대1로 패배하여 UEFA 컵으로 떨어졌다. 이시즌에는 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 모두 조기 탈락을 했다. 

 

역대 유로중 최고의 대회로 평가받는 유로 2000에서 이탈리아 감독이자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골키퍼였던 디노 조프에 의해 부폰은 주전 골키퍼로 대회에 출전을 하게 됐지만, 터키와의 개막전을 앞두고 노르웨이와의 친선경기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면서 주전 자리를 프란체스코 톨도에게 내주었다. 이 대회에서 프란체스코 톨도는 눈부신 선방을 보여주면서 부폰을 밀어낼뻔 했었다.

 

00/01시즌에도 코파 이탈리아에서 피오렌티나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고, UEFA컵에서도 3라운드에서 탈락을했지만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여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 3시즌 연속으로 4위를 기록한다. 이 시즌에 부폰은 세리에 올해의 골키퍼 2위를 기록했고, IFFHS 선정 베스트 골키퍼 3위를 기록한다. 그리고 01년 유벤투스는 부폰을 516억에 영입하였고, 부폰은 비안코네리 유니폼을 입게 된다.

 
 
 
 
발롱도르는 기술과 신체적으로 가장 뛰어났던 선수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클럽에서, 대표팀에서, 유럽에서, 그리고 월드컵이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최상의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것은 지난 시즌 지안루이지 부폰이 보여준 것이다. 내 생각에는, 누구도 그가 보여준 활약을 초월하지는 못했다.
그는 어떠한 실수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부폰을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가 처음 파르마에서 경기에 나올때, 사람들은 내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유벤투스가 그를 노리고 있다고 답을 해 주었고, 그는 골키퍼중의 마라도나라고 설명했었다. 부폰이 골문에 있는것은 시즌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팀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수 있다
- 아리고 사키-
 

 

 

 

 

Chapter - 2 편에 계속

 

 

안녕하세요. 이번엔 연대기로 돌아온 유심부입니다. 명색이 닉네임이 유베의심장부폰인데 부폰성님에 관련되서는 쓴 글이 없더라구요.

첫글이라 굉장히 짧게 느끼실수도 있습니다.  이건 뭐 따지면 서론과도 같은거라 일부러 짧게 썼습니당.

기준은 5편으로 잡고있지만 이것보다 더 줄어들수도 늘어날수도 있습니다. 

95년에 태어난 제가 당연히 부폰에대해 저렇게 자세히 알리는 없고, 당연히 위키피디아에서 번역하고 다른 곳에서도 찾아보면서 쓴 글입니다. 번역하는거 말고는 솔직히 힘든것도 없고, 번역 말곤 한것도 없잖아? 라고 느끼실 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외 글을 번역해서 유벤투스 선수들에대해 더 자세히 알릴수만 있다면 일본어라도 저는 번역할겁니다. 열심히 봐주세욤 

2편은 언제올릴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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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베의심장부폰 Lv.31 / 13,025p
댓글 8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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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잘 읽었습니다. 글의 양은 이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너무 길면 가독성이 떨어지더라구요.
다음편도 이정도 양의 글을 쓴다고는 장담 못하겠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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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감사합니다~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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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1996년이랑 2000년 유로가 제가 생각해도 엄청난 유로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2000년때는 거의 이태리가 우승 문턱이었는데.. 트레게제랑 윌토르,,.,, 종이 한장 차이었죠... 당시 키퍼도 톨도였던걸루... 부폰은 거의 안나왔던걸루 기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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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글 잘보고 갑니다. 앞으로 연재될 내용들이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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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선수들 칼럼쓰시는거 엄청 부럽습니다.... 존경해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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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5
부폰은 2차대전 이후 월드컵에 참가한 최연소 선수로 기록이 된다. 후에 2016년 9월 1일 지안루이지 돈나룸마가 이 기록을 깬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이해가 안가는데, 월드컵인지 월드컵지역예선인지 키퍼한정인지 불명확한것 같네요.

98 월드컵 톨도 부분도 좀더 명확하게 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너무 지적질만 한것같은데 전반적으론 아주 잘봤습니다.
힘내서 나머지 부분도 잘 완성해 주세요
이게 위키피디아 영어를 번역한거라 아마 의역이 많을거에요ㅎ.... 영어실력이 호구라.... 지적하신부분들은 한참 쳐다보고 의역한부분일겁니다 껄껄... 다시한번봐야겠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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