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6일 22시 51분

 

리그 : 세리에 A

팀 : 유벤투스

주전 수비수 : 지오르지오 키엘리니, 레오나르도 보누치, 안드레아 바르잘리

15/16 성적 : 세리에 A 우승, 코파 이탈리아 우승,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15/16시즌이 끝나고, 유벤투스는 세리에 최초 2년 연속 더블을 기록한다.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는 뮌헨에게 아쉽게 패배하면서 또 한번 고개를 떨구었다. 14/15시즌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에게 아쉽게 패배했고, 다음시즌을 기약하며 팀을 재정비 했지만 결승전은 커녕 준결승전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거함 뮌헨을 너무 빨리 만난것이 컸다. 

 

지금에서야 16강 떨어진게 아쉽다고 이야기 하고있지만, 당시 챔피언스리그를 16강 전까지 만 해도 유벤투스는 리그에서 강등권은 아니었지만 강등권보다 조금 높은 순위에 있었다. 유래없는 유벤투스의 암흑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개막전 2연패를 비롯해서 유벤투스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비달, 테베즈, 피를로등의 이탈과 포그바의 부진 등으로 유벤투스의 몰락을 분석하고 있었다. 반면 라이벌팀 인테르는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1위를 찍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 두팀은 만났고, 누가 이긴것 없이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지만 유벤투스는 이 경기를 시작으로 토리노 더비에서 2대1로 이기더니 볼로냐전 무승부 전까지 15연승을 거둔다. 

 

연승 도중에 1위로 치고 올라갔던 나폴리전이 제일 중요했고, 그 경기에서 자자의 극적골로 유벤투스는 1위탈환은 물론 연승까지 이어간다. 나폴리 역시 연승행진을 가고 있던 팀이었기 때문에 이 빅매치의 결과에 따라 우승의 향방이 가려질수 도 있었다. 그래서 일까? 이 경기를 이긴 유벤투스는 6R 순위15위에서 25R 1위자리에 올라섰다. 

 

이 이후로 유벤투스는 1위자리를 절대 내주지 않았고,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거기에 빅이어는 획득하지 못했지만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면서 2년 연속 더블을 기록하는 최초의 팀으로 만들었다. 시즌 초반 미드진 줄부상에 에르나네스의 부진등이 겹치면서 나락으로 빠졌지만 케디라가 복귀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원이 회복되기 시작 하더니 결국 올라갈팀은 올라간다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세리에 5연패의 원동력, 철의 3백

시즌 초반 유벤투스 몰락의 주 원인은 미드필더의 줄부상과 그 자리를 메꾸던 선수들의 부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부폰을 필두로한 3백은 16강 뮌헨전을 빼곤 거의 매경기 선발출전했고, 그래서 였는지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맨시티를 2대1로 이기고 세비야를 2대0으로 이기는 등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도 했었다. 그 예로 유벤투스가 시즌 초반 부진에 빠져있을때 아무리 많이 실점을 했어도 나폴리전 2실점을 제외하곤 이 이상 실점을 내준적이 없다. 

 

그래서 였을까 부폰을 바탕으로, 수비를 바탕으로 유벤투스는 차근 차근 순위를 올렸고, 나폴리를 이기더니 5연패를 달성했다. 만약 중원의 붕괴가 아니라 수비의 붕괴 였다면 아마 유벤투스는 5연패를 달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전례없는 부진속에서도 부폰은 유벤투스의 골문을 지켰고, 3백은 부폰 앞에 항상 서있었다. 

 

유벤투스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3백의 애칭은 보누치, 바르잘리, 키엘리니의 이름을 따서 만든 BBC다. 축구팬들이 대표적으로 아는 BBC는 레알마드리드의 호날두, 베일, 벤제마겠지만 사실 이 선수들이 결성되기 전보다 더 앞선 2011년 BBC는 이미 존재했다. 유로 2016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더 각광받고 있지만 사실 이 세 선수의 본 면모는 2011년 무패우승 할때 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이 3명이 모였을 때 유벤투스는 암흑기에서 벗어났고, 무패우승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세리에 5연패까지 달성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BBC, 보누치와 바르잘리, 키엘리니에 대해 차근차근 파헤쳐보도록 하겠다.

 

 

 

'B', 레오나르도 보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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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르시절, 바리 시절)

보누치의 첫 커리어는 고향팀 Viterbese라는 팀에서 시작했지만 2005년 인테르로 임대를 갔고, 인테르 프리마베라의 일원이 됐다.05/06시즌 칼리아리와의 마지막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인테르는 보누치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06년 10월 3일 코파이탈리아 메시나와의 경기에서 86분 그로소와 교체되면서 경기에 나섰고, 보누치는 8강전에서 월터 사무엘과 하프타임때 교체되면서 과 삼프도리아와의 4강전 선발출전 등 두 경기를 더 출전했었다.  

 

2007년에는 인테르가 보누치를 프리마베라 시절 팀 동료였던 다니엘 마 붐송을 데려오기 위해 트레비소로 50퍼센트 공동소유권을 넘겼고, 트레비소에서 마 붐송을 50퍼센트 공동소유하면서 영입, 보누치를 트레비소로 이적시킨다. 보누치를 대신해서 들어온 붐송은 7월 30일까지 인테르에서 뛰다가 다시 트레비소로 돌아갔다. 트레비소로 가기 전까진 보누치는 인테르에서 U-20 프리마 베라 최고의 선수상을 받았다. 보누치는 트레비소에서 7월 1일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 세리에 B에서 주전 선수로 27경기를 뛰었고, 이것을 본 인테르는 보누치의 소유권을 다시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인테르는 다시 보누치를 트레비소로 임대를 보낸다.

 

2009년 6월 8일 보누치는 제노아에서 메디컬테스트를 받게 된다. 이유로는 인테르가 제노아에게 로베르토 아콰프레스카, 프란체스코 볼조니와 리카르도 메기오리니와 함께 보누치를 제노아로 보내주는 조건으로 디에고 밀리토와 티아고 모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누치는 7월 2일 제노아가 바리에 공동소유 50퍼센트를 넘기면서 바리로 둥지를 트게 된다. 

 

바리에서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비를 선호하는 지암피에로 벤투라 감독 밑에서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잡게 됐고, 팀 동료 안드레아 라노키아와 함께 2009/2010시즌 강력한 수비진을 형성하면서 시즌 중반에 라노키아가 부상을 당하면서 완벽했던 보누치 라노키아 조합이 깨지긴 했지만 세리에 최소실점 2위를 기록하게 된다. 이를 밑 바탕으로 보누치는 유벤투스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토리노로 둥지를 트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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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시즌 보누치, 11/12시즌 보누치)

2010년 7월에 유벤투스로 입단한 보누치는 4년 계약을 체결했고, 지안루카 잠브로타의 등번호 19번을 달고 경기에 뛰게 됐다. 아주리 팀동료 지오르지오 키엘리니와 함께 수비라인을 형성한 보누치는 개막전부터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유로파리그 슈투름 그라츠와의 경기에서 유벤투스에서의 첫번쨰 골을 성공시킨다.

 

하지만 2010년 유벤투스의 순위는 7위었고, 암흑기를 달리고 있었다. 또한 바리에서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보누치는 매우 불안정한 수비를 선보였다. 15m 이라는 적지 않은 이적료로 유벤투스에 입단했지만 팀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고, 보누치 자신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볼프스부르크에서 안드레아 바르잘리를 데려오면서 더욱더 험난해졌던 보누치 였다. 

 

그러는 와중에 안토니오 콘테가 새로운 유벤투스 감독으로 등장했고, 주 전술이 4-4-2였던 콘테 감독이었고, 2006 월드컵 위너 바르잘리와 키엘리니가 있었기 때문에 시즌 시작하기전 보누치는 주전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주 전술을 깨고 이 세 선수를 모두 공존시킬 방법으로 윙백을 사용하는 3백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키엘리니 바르잘리와 함께 시즌을 치루기 시작한다. 

 

이 세 선수의 환상적인 경기력으로 붙혀진 애칭 BBC는 이때 탄생했다. 이 유벤투스 3인방은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2011/12시즌 무패우승을 달성하면서 자신의 커리어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보누치는 유벤투스와 5년 재계약을 체결했고, 당시 유벤투스의 수비력은 유럽 리그 최고의 수비라고 평가받았었고, 좋은 폼을 유지하던 보누치는 유로 2012 아주리 군단에 키엘리니와 바르잘리와 함께 승선하게 된다. 

 

유로 2012에서 결승까지 갔지만 스페인에게 완패를 당하면서 아쉽게 눈물을 흘렸지만, 그 아픔을 보누치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승리하면서 두번쨰 우승컵을 들게 된다. 12/13시즌 챔피언스리그에도 진출한 유벤투스는 첼시, 샤흐타르, 노르셀란과 한 조가 됐고, 첫 상대는 샤흐타르 도네츠크 였다. 이 경기에서 보누치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1대1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첼시와도 무승부, 노르셀란과도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4차전부터 6차전까지 내리 3연승을 기록하면서 3승3무 조 1위로 셀틱과 16강전을 맞붙게 된다. 

 

셀틱과의 16강전에서도 승리하면서 8강에 진출한 유벤투스는 당시 우승팀 뮌헨과 만났고, 도합 4대0으로 패배했지만 08/09 이후 복귀한 챔피언스리그에서 8강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유벤투스는 12/13시즌 세리에도 우승하면서 세리에 2연패를 달성한다. 13/14시즌 에도 승점 102점은 물론 세리에 3연패를 달성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선 조별예선 탈락을 하면서 별다른 성적을 내진 못했고 유로파리그도 4강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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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시즌 보누치, 주장 보누치)

14/15시즌 안토니오 콘테가 사임을 하고 새로운 감독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오면서 유벤투스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본격적으로 보누치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때가 바로 14/15시즌이다. 알레그리가 오기전까지만 해도 보누치는 빌드업과 롱패스 담당, 안정적이지 못한 수비가 특징이었다. 또한 4백에서는 불안한 선수라고 선입견도 있었을 정도로 3백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수지만 4백에서는 불안한 선수다 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바르잘리의 장기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뛰지 못하고 있던 때에 알레그리는 4백으로 바꾸면서 보누치와 키엘리니로 수비라인을 가동했고, 보누치는 이러한 평가들이 무색할정도로 깔끔한 수비는 물론 위협적인 롱패스도 선보이면서 최고의 수비수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보누치를 필두로 유벤투스는 14/15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코파 이탈리아 우승,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한해를 보낸다. 

 

15/16시즌에는 초반 15위까지 떨어지는 엄청난 부진이 있었지만 차차 순위를 올려가며 우승 경쟁을 이어갔고, 결국 세리에 5연패와 코파이탈리아 2연패를 거머쥐게 된다. 14/15시즌부터 급속도로 성장한 보누치를 보고 펩 과르디올라가 뮌헨시절부터 매우 탐냈었고, 맨시티로 간 지금도 노리고 있지만 본인은 유벤투스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는것 같다. 콘테시절에는 무분별한 롱패스로 점유율은 물론 공격 템포를 끊는 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알레그리 시절부터 롱패스를 줄이기 시작하더니 필요한 때에 정확한 롱패스를 장착하게 되면서 유벤투스 역대 최고의 수비수 가에타노 시레아를 닮아간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15/16 시즌 코파이탈리아 4강전에서 부폰과 키엘리니의 부재로 주장 완장을 차면서 출전할 정도로 리더쉽도 있을 뿐더러 유벤투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키엘리니와 바르잘리가 언제 폼이 떨어질지 모르는 지금, 유벤투스는 보누치를 중심으로 수비를 개편해나가고 있다. 이제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보누치, 그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을날이 머지 않았으면 좋겠다.

 

 

 

'B', 안드레아 바르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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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 시절, 볼프스 시절)

바르잘리는 98/99시즌 세미프로 팀인 론디넬라 칼치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A.C. Pistoiese가 세리에B로 가기전에 론디넬라와 공동소유권을 체결하면서 바르잘리는 A.C. Pistoiese로 가게되었고, 몇년 후에 바르잘리는 다시 론디넬라에 합류하게 된다. 그 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세리에 A에 있던 피아첸자와 계약을 맺었지만 세리에 B 에있던 아스콜리로 임대를 가게 되면서 바르잘리는 아스콜리로 둥지를 옮기게 된다. 바르잘리는 아스콜리에서 뛰면서 세리에 A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피아첸자는 키에보와 공동소유권을 체결하면서 바르잘리를 키에보로 보낸다. 그 후 키에보로 또 다시 이적하면서 29경기를 뛰다가 시칠리아클럽 팔레르모로 입단하게 된다. 바르잘리는 2004년에 입단하여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기전까지 142경기를 뛰었고, 07/08시즌 에우제니오 코리니가 팔레르모와 불화로 인해 이적하면서 주장완장까지 찬다. 

 

2008년 바르잘리는 볼프스부르크가 아닌 피오렌티나와 협상테이블에 앉았었다. 그리고 모든 언론들은 물론 사람들까지 바르잘리는 피오렌티나에 갈것이라고 예상했다. 피오렌티나에서 태어난 바르잘리가 비올라로 입성하는건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바르잘리측이 요구하는 경기당 지급하는 돈에 관련되서 피오렌티나와 갈등이 생긴 것이다. 에이전트는 £100,000을 요구했지만 피오렌티나 측에서 거절했다고 언론에 이야기했고, 바르잘리는 이탈리아 동료 자카르도가 있던 독일 클럽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기로 결정했다. 볼프스 부르크 측이 제시한 금액은 3년 £2.5, 피오렌티나는 5년 £1,2를 제시했고, 바르잘리는 볼프스부르크를 선택했다. 

 

13m의 가격으로 이적한 바르잘리는 08/09시즌 볼프스부르크가 챔피언쉽리그에서 우승했던 당시 모든 경기를 풀타임 뛰었고, 후에 자신을 한층 더 성장시켜준 펠릭스 마가트 감독과 함께 한다. 2009년 9월 15일 챔피언스리그 CSKA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 유럽무대를 처음 밟게 된다. 또한 2010년 4월 4대0으로 이긴  호펜하임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분데스리가 첫 골을 기록한다. 유로파리그도 밟아본 바르잘리는 볼프스부르크를 떠나게 된 3번쨰 시즌떄도 17경기를 소화한다. 

 

2011년 6월 30일날 볼프스부르크와의 계약이 끝나게 되는 바르잘리는 새 둥지를 찾기 시작했고, 그러는 와중에 1월26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바르잘리에게 러브콜을 한다. 바르잘리는 2013년까지 함께하자는 유벤투스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볼프스부르크를 떠나 정든 이탈리아 무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시 유벤투스는 순위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친정팀 팔레르모에게 2대1로 지는 경험을 했고, 23경기를 뛰었지만 팀은 결국 7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이후 감독이었던 루이지 델 네리 감독을 해고하고 새로운 감독 안토니오 콘테를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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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입단, 12/13시즌 바르잘리)

안토니오 콘테와 함께 키엘리니, 보누치와 함께 3백으로 출전하면서 38경기 20실점을 기록한 유벤투스는 무패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바르잘리는 38R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이탈리아 무대 복귀골을 기록했고, 2012/13시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컵도 거머쥐게 된다. 

 

12/13시즌 유벤투스에서 총 45경기를 소화하면서 자신의 커리어중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안토니오 콘테가 3-5-2를 주 전술로 사용하면서 바르잘리는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볼프스부르크 이후 오랜만에 출전한 챔피언스리그에서 8강전까지 진출했고, 세리에 2연패도 달성하면서 유벤투스 이적한지 약 두번째 시즌만에 승승장구 하게 됐다. 이러한 결과 때문인지 유럽에선 키엘리니, 보누치, 바르잘리 트리오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수비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12/13시즌 바르잘리는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AS로마를 4대1로 이긴 경기에서 세바스티안 지오빈코의 골을 어시스트한 적이 있다. 

 

13/14시즌에는 새로운 동료 요렌테와 테베즈를 얻게 되면서 12/13시즌 달성했던 8강보다 더 높은자리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조별예선 탈락을 했고, 유로파리그 결승진출 실패 등으로 유럽대회에서는 많이 부진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그래도 리그는 놓치지 않았고 승점 102점과 리그 3연패를 달성하면서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긴 했다. 

 

아주리 군단 역시 2014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면서 2년연속 월드컵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는다. 이 월드컵 기간동안 부상을 앉고 뛰었던 바르잘리는 월드컵이 끝난 후 약 3달동안 경기에 뛸수 없게 됐다.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부상기간이 길어졌고, 바르잘리는 14/15시즌 전반기동안 볼 수 없었다. 그가 모습을 보인건 코파이탈리아 피오렌티나와의 준결승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8개월동안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경기를 마쳤다. 물론 유벤투스는 피오렌티나에게 2대1로 졌다. 

 

또한 사수올로와의 경기나 팔레르모와의 경기에서도 나오는 등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면서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기 시작 했다. 2015년 5월 2일 스쿠데토를 확정지을 수 있는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도 바르잘리는 모습을 드러냈고, 결국 유벤투스는 1대0으로 승리하면서 4연속 세리에 우승을 결정지었다. 또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전에서 1차전 2차전 모두 교체 출전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파상공세를 봉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결국 12년만에 결승진출을 하는데에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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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테시절, 알레그리 시절)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는 키엘리니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보누치와 함께 선발출전 했지만, 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로 이어지는 강력한 3톱을 막기에는 버거웠다. 결국 3대1로 패배하면서 유벤투스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15/16시즌을 앞두고 테베즈, 피를로, 비달등을 떠나보내고 디발라, 산드로등의 새로운 선수들과 만났다. 15/16시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를 앞두고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유벤투스는 만주키치의 골을 앞세워 라치오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15/16시즌 바르잘리는 오른쪽 풀백으로 뛰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챔피언스리그 세비야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나섰는데, 이 경기에서 모라타의 골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바르잘리는 커리어동안 단 두골만을 기록했다. 분데스리가에서 한골 11/12시즌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한골이 전부였다. 10/11 후반기부터 합류한 바르잘리는 2대1로 패배한 헬라스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유벤투스에서만 150경기째를 달성한다. 

 

이후 유벤투스는 5연패를 달성했고, 바르잘리와의 계약도 2018년 까지 연장했다. 사실 바르잘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었냐면, 14/15시즌 초 알레그리가 4백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바르잘리가 아직 복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었고, 4백에서 3백으로 바꾸고 경기를 잠구려 할때 항상 바르잘리가 투입됐다는 것이다. 사실 적은나이도 아니라 풀타임을 소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알레그리가 이런 묘수를 강구해낸 것이다. 마로타가 영입한 선수들중 최고의 선수중에 하나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르잘리는 중앙수비수로써 침착성, 위치선정, 공중볼 경합등의 능력이 매우 좋다. 또한 4백에서 풀백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겉보기 와는 다르게 속도도 느리지 않다. 팬들은 이 단단한 수비수에게 로키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C', 지오르지오 키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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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르노시절, 피오렌티나 시절)

6세의 나이로 리보르노 유스팀에 입단한 키엘리니의 포지션은 수비수가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였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포지션은 윙어로 바꼈고, 마지막으로 왼쪽 풀백으로 바꾸면서 자신에게 알맞은 포지션을 찾았다. 키엘리니는 00/01시즌 콜업되기전까지 90년도부터 00년까지 리보르노 유스에서 뛰었다. 그의 프로 첫번째 팀과 함께 첫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그 후 02년 6월 공동소유 계약으로 인해 로마로 둥지를 옮겼지만 다시 리보르노로 임대를 가게 됐다. 

 

02/03시즌에 리보르노는 세리에 B로 승격을 한 이후였다. 그의 첫번째 세리에 B 생활에서 코파이탈리아 경기로 세리에 B 데뷔전을 가지게 됐고, 다음시즌에는 왼쪽 풀백으로 42경기 4골을 기록하게 된다. 04년 6월 리보르노는 키엘리니에 대한 소유를 모두 가져왔고, 완전영입하게 된다. 리보르노에서만 총 4시즌을 뛴 키엘리니는 총 57경기에 4골을 기록하며 리보르노 생활을 마감한다.

 

리보르노의 이 어린 선수를 눈여겨본건 유벤투스였고, 유벤투스는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잠브로타, 튀랑, 칸나바로, 제비나로 이어지는 이 환상적인 수비라인을 어린 선수가 경쟁하기엔 너무나 버거웠고, 유벤투스가 생각한 것은 공동소유 계약을 이용하여 타 팀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키엘리니는 피오렌티나로 둥지를 옮긴다. 키엘리니가 옮기는 과정은 매우 복잡했다. 유벤투스는 로마에게서 절반을 사왔고, 피오렌티나는 리보르노에게서 절반을 사왔다. 뭐 어찌저찌해서 피오렌티나로 팀을 옮긴 키엘리니는 42경기를 뛰면서 3골을 기록하게 된다. 

 

피오렌티나에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키엘리니는 유벤투스에 마음에 들었고, 유벤투스는 그의 소유권을 모두 가져온다. 카펠로의 눈에 들은 키엘리니는 05/06시즌 유벤투스에서 23경기를 뛰면서 나쁘지 않은 경기 수를 소화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칼치오폴리 스캔들이 터지면서 유벤투스는 세리에 B로 강등됐다. 많은 스타선수들이 떠났고, 키엘리니 역시 떠날려 했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그를 적극적으로 설득했고, 키엘리니는 세리에 B에서 뛰기로 했다. 세리에 B에 있는 동안 키엘리니는 중앙 수비수로써 레그로탈리에, 붐송, 코바치와 함께 수비라인을 형성했고, 유벤투스는 42경기 80득점 32실점을 기록하여 세리에 B 최고기록을 남기고 1년만에 세리에 A로 복귀했다. 

 

승격후 키엘리니는 다시 왼쪽으로 돌아갈려했으나 안드라데와 크리시토의 부상으로 다시 중앙수비수로 돌아갔지만 레그로탈리에와 함께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이며 08/09 시즌 실점 2위를 기록한다. 굉장히 놀라운건 시즌 시작하기전 센터백은 레그로탈리에와 안드라데 였고, 이 둘이 라인업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키엘리니가 안드라데를 밀어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인테르전에서 팀동료였던 스웨덴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완벽하게 봉쇄했다는 것이다. 키엘리니는 2008년 4월 라치오를 5대2로 이긴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기도 했고, 2008년 6월 26일에는 2013년까지 재계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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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B시절, 밀란전)

08/09시즌에도 주전 수비수는 키엘리니와 레그로탈리에였다. 키엘리니는 챔피언스리그 3차예선 1차전에서 페트로츠카에게 4대0으로 승리한 이 경기에서 키엘리니는 유럽무대 첫 득점을 기록한다. 하지만 4일뒤에 베를루스코니 트로피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9월까지 경기에 뛰지 못했고, 이로 인해 세리에 개막전을 놓치고 만다. 연말에는 오스카 델 칼치오를 수상했고, 2008년 세리에 올해의 수비수로 선정됐다. 2009년 3월 10일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2차전에서는 경고누적 퇴장을 당하기도 했고, 팀은 도합 3대2로 패배했다. 

 

유벤투스는 3월 6일 피오렌티나 전 승리 이후 중요한 경기에서 키엘리니의 부재로 인해 4경기에서 9실점을 기록했다. 나폴리 전에서 복귀하여 선제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팀의 3대1 패배를 막을수는 없었다. 이해에 키엘리니는 주급을 인상받은 계약을 제시받았고 2015년까지 재계약을 체결한다. 10/11시즌 시작하기 전 새로운 파트너로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영입되면서 키엘리니와 수비라인을 형성했고, 겨울 이적시장엔 안드레아 바르잘리가 영입 되면서 바르잘리와 출전하거나, 때로는 종종 왼쪽 풀백으로도 뛰면서 보누치와 바르잘리가 중앙 수비에 출전한적도 있었다.  

 

11/12시즌 새로운 감독인 안토니오 콘테와 함께 새 시즌을 치루게 됀 키엘리니는 다시 원래 포지션인 왼쪽으로 갔다. 데첼리에는 벤치로 밀렸고 키엘리니는 자신의 주 포지션의 감각을 끌어올리기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콘테는 후반기부터 키엘리니, 보누치, 바르잘리 이 세 선수를 공존시킬 방법을 모색했고, 3백이라는 전술을 사용하여 결국 세리에 최고의 수비라인을 형성한다. 유벤투스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나폴리에게 패배했지만 2012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승리하며 복수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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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시즌, 13/14시즌)

12/13시즌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었던 키엘리니는 9월 22일 키에보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뤘고, 2대0으로 승리는 물론 유벤투스에서만 총 250경기 출전을 달성한다. 하지만 2013년 3월부터 12월 중순까지 장기 부상을 당했고, 부상 복귀한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동점 헤딩골을 기록한다. 유벤투스는 수페르코파와 세리에 우승을 달성했고, 키엘리니는 UEFA 올해의 팀에 뽑힌 유일한 이탈리아 선수가 되었다. 

 

13/14시즌 역시 키엘리니는 3백에 왼쪽 수비수로 경기에 출전했고, 전 시즌에 부상으로 폼이 하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유벤투스 수비의 중심이었다. 10월 6일 AC밀란과의 경기에서 3대2로 승리했는데 여기서 키엘리니는 골을 기록했었다. 또한 우승 경쟁팀 AS로마와의 경기에서 출전하면서 통산 300경기 출전을 달성했고, 유벤투스는 3대0으로 이겼다. 또 유벤투스는 키엘리니와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2017년까지 그 기간을 늘린다. 이 해에 유벤투스는 승점102점을 달성하고 홈 19전 19승을 달성하는 등 리그에서 최강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탈락, 유로파 결승진출 실패 등 유럽 대회에서의 경쟁력이 문제로 남았다. 

 

콘테가 떠나고 알레그리가 온 14/15시즌에는 시즌 초반 3백으로 출전하다가 4백으로 변환하면서 보누치와 함께 수비라인을 형성했고, 전 시즌과 다를 거 없이 리그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에서 나폴리와의 승부차기 끝에 패배한 아픈 기억이 있고, 이 경기에서 키엘리니가 승부차기를 실패하기도 했다. 

 

물론 2015년 5월 20일 코파이탈리아 결승전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는 등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종아리 근육 파열로 인해 결승전 라인업에서 제외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5년 7월에 열린 친선경기에서 다친 부상으로 키엘리니는 라치오와 수페르코파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2대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키엘리니는 2015 UEFA 올해의 팀에 뽑히기도 했다.

 

15/16시즌 키엘리니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항상 부상을 당했다. 스쿠데토 결정전이어도 무방한 나폴리와의 리그경기를 앞두고 부상을 당했고, 이 부상여파로 챔피언스리그 16강 뮌헨전도 불참했다. 다행히 나폴리전은 승리했지만 뮌헨전은 결국 패배를 했다. 라이벌 인테르 전에서 복귀하긴 했지만 35분을 소화하고 들것에 실려 나갔다. 키엘리니의 불행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코파 이탈리아 4강전 인테르와의 2차전에서도 키엘리니는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또 엠폴리와의 1대0승리한 경기에서도 54분을 소화하고 부상으로 교체 됐었다. 20일동안 아웃될 것으로 보였고, 그는 2대1로 패배한 헬라스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부상복귀를 한다. 유벤투스는 15/16시즌까지 리그우승을 달성하면서 5연패를 달성했고, 키엘리니는 5대0으로 이긴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 400경기 출전을 달성한다. 그리고 코파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주장완장을 차며 팀의 1대0승리를 이끌고 유벤투스는 2년연속 더블을 기록한다. 팀 역사상 11번째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이었다. 

 

자신들을 모두 출전시키기 위해 3백을 전술을 바꿨던 콘테 덕분에 무패우승, 승점 102점 등을 달성할 수 있었고, 3백과 4백을 유연하게 쓰던 알레그리 덕분에 트레블 도전은 물론 2년연속 더블을 달성했다. 세 선수 모두 이탈리아 국적에 유벤투스에서 뛰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뿐이고, 대외컵과 유로 에서 엄청난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평가가 올라갔다는 것이 뿌듯할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왜 통곡의 벽인지 정점을 찍어주는 선수가 있다. 그게 바로 아주리와 유벤투스의 전설 부폰이 버티고 있었다. 

 

 

 

이들이 빛나기 시작한 건 알레그리와 만났을 때

BBC가 만난건 2010/11시즌 후반기부터 였다. 바르잘리가 겨울이적시장 부터 영입 되면서 이 트리오가 형성 됐는데 당시 키엘리니는 왼쪽 풀백에서 뛰거나 4백에서의 수비수였다. 하지만 이 세명이 동시에 수비수로 뛰기 시작한 건 안토니오 콘테가 오고 난 후 였고, 진정한 철의 3백이 되던 때는 알레그리와 만난 2014/15시즌 이었다. 롱패스와 빌드업에만 능하고 안정감은 없었던 보누치가 14/15시즌 부터 두 단계 이상 성장하면서 진정한 BBC가 완성이 된 것이다. 또한 3백이 주가 아닌 상대의 공격을 봉쇄하기 위해 바르잘리를 교체 투입하면서 3백으로 전환하는 전술을 보인 알레그리의 유연성으로 콘테 때 보다 더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 3백의 환상적인 수비력 덕분에 14/15시즌 트레블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거고, 15/16시즌 최악의 부진을 겪었던 팀이 파죽지세로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BBC는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로 2016에서 다시 안토니오 콘테와 만나면서 서로서로 한단계 더 성숙해진 상태로 대회를 치뤘고, 16강 진출도 어렵다는 평가들을 무색하게 8강에서 우승후보 독일을 탈락의 위기까지 몰아 붙혔었다. 

 

이들의 후계자중 바르잘리의 후계자는 다니엘레 루가니로 정해졌다. 이미 루가니는 본인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BBC 중 한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유벤투스 보드진은 확신을 가졌다. 보드진은 항상 그러 했듯이 새로운 선수를 데려와 또 엄청난 선수로 만들 것이다. 유벤투스가 항상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누굴 데려오건 그는 팬들이 기대하는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16/17시즌 유벤투스가 왕좌를 차지하기를 기대해본다. 

 

 

 

BBC를 뚫고나니 부폰이 버티고 있더라

힘들게 키엘리니, 보누치, 바르잘리를 뚫어도 뒤에는 지안루이지 부폰이 버티고 있다. 부폰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BBC가 더욱 무서운 것이고, 더 뚫기가 힘든 것이다. 반사신경은 전보다 떨어졌어도 페널티 박스 장악력, 수비라인 조율 등은 아직도 넘버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사신경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번뜩이는 슈퍼세이브 덕분에 실점이 적은 것이고 뚫기 어려운 것이다. 01년부터 파르마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지금까지 뛰고 있는 부폰의 유무는 굉장히 차이가 날 것이다. 

 

대다수 축구팬들은 말한다. 유벤투스가 만약 부진에 겪거나 우승을 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그건 부폰이 은퇴한 뒤라고. 필자 역시 BBC보다 부폰의 은퇴후가 제일 걱정이다. BBC는 오랫동안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지금의 수비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수비수를 데려오더라도 BBC 만큼의 기간을 준다면 제 2의 BBC는 나온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약 15년간 유벤투스의 골문을 지켜온 부폰의 부재는 정말 클 것이다. 유벤투스가 진정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들고 싶다면 부폰이 건재할 때 드는 것이 가장 최선일 것이다. 

 

폰이 은퇴한 후 도전? 부폰이 은퇴하는 순간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더 멀어질 것이다. 무수히 바뀐 유벤투스의 10번과 수비진, 중원이 바뀌어도 부폰은 항상 그 자리에 지켰다. 부폰에 다가서려 했던 골키퍼는 무수히 많았지만 아무도 그를 넘지는 못했다. 야신, 조프 이후 최고의 골키퍼라 해도 과인이 아닌 이 남자가 유벤투스의 골문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항상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이고, 아주리 군단의 순항을 기대하는 것이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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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남자가 있는한 유벤투스의 세리에 독주는 계속 될 것이다.)

 

"25년전에 나는 맹세했다. 나는 너를 지켜낼것이다, 너를 돌봐줄것이고, 너를 둘러싼 모든 적들로부터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항상 내자신 보다 너의 안녕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골대에 등을돌리고 선것은 12살때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내 두다리, 내 머리, 그리고 내 가슴이 허용할때까지 멈추지 않을것이다."  

-지안루이지 부폰-

 

 

PS: 아따 글 하나 쓰는데 약 14시간 걸렸습니다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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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베의심장부폰 Lv.31 / 13,025p
댓글 20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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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결국엔 콩테 성님이 레전드 ㅇㄱㄹㅇ ㅂㅂㅂㄱ ㅇㅈ ㅇㅇ?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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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키야 오랜만이라그런지 더 잘읽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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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선추천 후정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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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정성글 감사히 잘봤습니다 !! 칼럼쓰셔도 될만한데요 ? 필력이ㄷㄷ
그리고 언제나 부폰 저 말은 정말 멋지네요
실례지만 출저남기고 퍼가도 될까요 ?

출처만 남겨주신다면 어디로든 퍼가셔도 상관없습니당~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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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황금같은 휴가를 14시간씩이나..ㄷㄷ 선추천하고 읽으러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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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9박 10일 휴가의 힘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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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와 이건 선 추천 후 감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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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와ㅋㅋ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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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와ㅋㅋ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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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잘 읽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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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한 선수 한 선수 다 참 파란만장 했군요. 이 자리에 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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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멋있네요 ㅜㅜㅡ

그나저나 니코형 이름 무지 오랜만에 듣네요. 방탕한 생활에 찌들다가 신앙심으로 극복하고 승격후 무너진 유베의 센터백라인을 키엘리니와 굳건히 버텨준 니코형 ㅜㅜㅜ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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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추천 5일때 추천눌렀더니 11이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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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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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이야 고생하셨네요.. 이렇게 긴 축구글 정독한지도 간만인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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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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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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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18-19 홈 만주키치
2016-07-26
반가운 분석실이라 선추천 누르고 읽겟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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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고퀄글이네유 ㅎㅎㅎㅎ

마지막 사진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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